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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인간 -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지음, 허경.양진성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머리가 복잡하고 아프다. 작지만 무거운 책이다.들려주는 내용도 무겁고 그 내용을 읽고 있는 내 마음도 무겁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부채를 생각해보니 가슴도 답답하고 미래가 살짝 암담하기까지 하다. 내가 그리고 있는 분홍빛 자유로운 미래가 아닌 빚을 갚아나갈 계획이 내가 아닌 그 무언가에 압력에 그려져 있는 그런 미래였다. 제목이 주는 섬뜩함때문에도 그렇고 채무자를 만들어내는 사회라는 부제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게 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를 억압하고 있는 조건에 대한 철학적 사고라는 무거운 말도 지금 내 상황에서는 어렵더라도 읽어보자고 덤벼들게 했다. 물론 많이 어려운 책이라 읽다 덮다를 무한히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들어봤던 단어들도 다시금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차분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며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그래서 소극적인 통화정책을 지지하고,국제금융의 자유화하고 공공복지제도를 확대하는 것을 반대한다. 공공복지확대는 근로의욕을 감퇴시켜 이른바 "복지병"을 야기시킨다고 주장한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그리고 재산권중시가 그 주요 목적이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다고 주장된 이 이론은 오히려 불황과 실업 그리고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등록금은 예전에 비해 너무 많이 올라서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학자금대출을 받는다. 이들은 취업을 하기도 전에 거액의 부채를 짊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복지예산을 삭감하며 교육보조금을 줄여 개인이 돈을 빌리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부채는 어떻게 갚을 것인가"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돈을 빌릴 때 작성한 계약서대로 빚을 갚기위해 자신의 행위와 선택을 제한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통제수단이며 이런 조건하의 인간이 부채인간인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부채를 지고 태어난다. 이른바 국가부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000조, 국가부채는 1006조라고 한다. 이 국가부채를 일반납세자들이 세금을 내며 갚아가야 하는 것이다.태어나면서 담보로 잡혀진 미래를 우리는 안고 있는 것이다. 이 금융은 우리의 미래를 사전에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실업,낮은 임금 등을 스스로 책임지는 부채인간이 되어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떠올랐다. 우리는 분명히 갚을 수 있다는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고리대금업자(금융권)에게 돈을 빌린다. 그것의 담보로 살을 내놓으면서. 내가 예측할 수 없었던 어떤 이유로 돈을 못 갚게 되자 고리대금업자는 살을 내놓으라고 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포샤라는 현명한 여인이 등장해서 "살은 주되 피는 흘려서는 안된다"는 말로 살려주고 오히려 선량한 시민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다는 죄에 대한 벌로 샤일록의 전재산을 몰수하지만 우리의 현실에는 포샤의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 책에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변혁의 기운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