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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초마다 한 마리씩 - 미국 도축 현장 잠입 보고서
티머시 패키릿 지음, 이지훈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PD수첩 한 편을 본 듯하다.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가방 어딘가에 감춰진 카메라로 미국에 있는 한 도축장을 구석구석 찍어 보여주는 듯했다. 그 소리와 냄새 또한 전달되는 듯해서 오전에 이 책을 읽고서는 점심을 먹지 못했다.
이 책은 한 정치학자가 도축장에 위장취업을 해서 알게 된 것들을 그대로 적은 글이다. 작가가 도축산업의 일상적 현실을 자세히 묘사하는 까닭은 '시선의 정치학'을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폐쇄된 공간의 문을 열어젖혀 날마다 육류를 소비하면서도 도륙장면앞에서는 눈감아 버리는 사람들,현대 도축산업에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은 불편해할 일이다.
산업화된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끔찍한 비명,유혈이 낭자한 사체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책은 자극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거부감이 든다면 도축장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 애쓰는 저들과 똑같은 부류라고 말한다. 도축작업의 은밀한 부분을 속속들이 파헤치지 않고 추상적인 논의만을 원한다면, 동물을 죽이는 일을 직접 담당하는 사람조차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무리와 다를 게 없다며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강요한다.
암튼 난 이 책을 한 자도 빠짐없이 끝까지 읽었다. 작가가 주장하는 은폐와 격리에 조종당하기도 싫었고 이런 숨겨진 세계에 대한 호기심 또한 있었다.
도축장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 121명이 도축의 과정을 담당한다. 이 작업중 도살은 노커의 바로 '그' 일격뿐이라고 착각한다. 150 미터에 달하는 긴 라인에 걸쳐 서서히 소는 죽었다. 어디에서 의식을 잃는지 아니 의식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며 어느시점에 사망하는지 딱 꼬집어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분업화된 도축장에서 시선은 차단되고 경험은 해체되며, 도살작업의 폭력성은 중화되었다. 이런 분업화가 여기서 일하는 인부들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도살의 도덕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비자인가?
도살에 직접 투입된 121명인가?
그 중에서도 노커인가?
우리가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도축장의 현실이 일반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하며 일반대중은 감시와 관심을 끝없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덮고 나서 그 맛있는 고기를 그만 먹어야하는 고민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누구나 그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그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