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서점에 가면 많이 팔리는 책들이 있다. 자기계발서와 힐링이라는 주제를 가진 책들이 그것이다. 나도 이런 책들을 무던히도 많이 사들이고 사들인 것 이상으로 빌려서 더 많이 읽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일에도 감정의 흔들림이 불안감이 미친년 널뛰듯이 했다. 불안감이 밀려오면 일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뭔가 다른 일들로 도망가곤  했다. 무작정 차를 몰고 돌아다닌다거나 친구를 불러내 수다를 떤다거나 술을 한잔 한다거나 하면서 그 불안에서 탈출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 다시 혼자가 되고 나면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고 오히려 허한 기분에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그럼 내가 지금 필요한 책이라고 읽었던 힐링의 책들이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잡아줄 것 같이 자신감있게 외치던 그 자기계발서들이 모두 뭐였다는 말인가하는 허탈함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접하기 시작한 것이 인문학서적들이었다. 

 예전 우리 아버지가 학교다니는 나에게 항상 질문을 하시곤 했다. 그런데 그 질문은 내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의 대답은 " 안 배웠어요. 학교에서 그런 거 안 가르쳐줘요. 아빠는 쓸데없는 걸 묻고 그래."하고 톡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 학교에서 도대체 이런 걸 안 가르치고 뭘 가르치냐?"하면서 학교보내는 게 억울하신 표정이셨다. 나보다 배움이 짧은 평생을 농사만 짓고 시골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버지도 아는 걸 배울만큼 배웠다는 내가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되시는 눈치셨다. 당시에는 그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저 아버지와 내가 서로 대화가 안된다고 생각했을 뿐.

 그때 나는 학교에서 지식을 쌓는 것만 배웠던 것이다. 우리의 어른들이 원했던 삶의 지혜와는 거리가 먼.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되고 세상살이에 방황도 해보고 부대껴본 뒤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지혜를 말씀하시는 거였고 나는 나의 머리에 주입된 지식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세상살이에서 만나는 수많은 질문에 내 지식으로 답하지 못하여 또 책을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 지식을 쌓기에 만족하고 또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럴때 만나게 된 책들이 철학과 역사와 고전이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변화하고 사고의 틀이 잡히게 되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전에는 당황스럽고 불안했던 일들이 조금씩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길이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철학이라는 걸 중년의 나이에 이제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러고보면 알랭 드 보통은 놀라운 작가임에 틀림없다. 나와 같은 나이의 드 보통은 그가 32세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여섯가지의 생의 질문을 들고 철학자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한 이 책은 철학에세이라고 하면 될 듯 싶다.

그 여섯가지의 질문은 인기없음,가난,좌절,부적절함,상심,어려움이다. 이런 주제속에 드 보통이 찾아떠나는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에피쿠로스학파,스토아학파(세네카),몽테뉴,쇼펜하우어,니체 등이다. 그 철학자들이 살았던 곳을 직접 찾아가 살펴보면서 그들의 삶의 흔적까지도 느껴보고자하는 고민하는 청년의 모습이 당시 드 보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청년시절이 이래야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니 우리의 교육을 탓하게 되었다. 우리는 철학을 도덕교과서안에서 배웠고 그 철학은 왠지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로만 들렸었다. 사실 우리의 삶에 제일 필요한 부분이었는데도.... 

 

  몽테뉴가 수상록에서도 말한 것처럼 '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용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 

 '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아는가?' '그 사람은 시와 산문을 쓸 수 있는가?'  보다 정작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야한다.

 '그 사람은 더 선해지고 현명해졌는가?' 

소크라테스가 대중의 인기도 얻지못하고 국가의 유죄판결 앞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은 것은 황소같은 용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철학"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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