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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왕국
이승현 지음 / 원고지와만년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그냥 웃기기만 하는 책도 있고 어떤 책은 너무 무겁기만 해서 즐겁지 않은 책도 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책도 있다. 책을 다 읽기전에는 그 책이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처음 만나는 작가의 책은 어쩌면 낯선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나에게 낯선 도전이었다. 이승현이라는 작가도 처음이려니와 이 작가의 전작 <마징가 외전>이란 작품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저 초파리 왕국이라는 재미있는 제목과 재미있는 표지그림에 끌렸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낯선 곳을 방문하는 설레임이 있듯이 낯선 작가와 낯선 책을 만나는 데에도 설레임이 존재한다.
여섯개의 서로 다른 이름의 단편과 마징가외전이라는 이름아래의 네개의 단편이 들어있는 작은 소설집이다. 처음으로 나오는 단편이 초파리왕국이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주인공 이충엽(주인공의 이름부터 곤충이 들어간다)은 도서출판샴샴(ㅎㅎ)에서 근무한다. 이 출판사는 사장과 자신밖에 없는 심플한 이인회사이다. 그러니 수습을 마친 뒤 영업에서 부터 수금 매장관리, 편집까지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이충엽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꾸역꾸역 일을 하고 사장이 술 먹자고 하면 또 꾸역꾸역 술을 같이 마시며 사장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인물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삶이 연상되어진다.초파리왕국이 뭘 뜻하는지 대강은 눈치를 채게 되어있지 않을까?) 사장은 유독 막걸리를 좋아하고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막걸리에 초파리 한마리가 빠져 죽는 걸 묵도하게 된다. 이충엽은 무한한 동정심에 (자신의 삶을 예지하고는) 묵념을 한다. 출판사에서 펴낸 "정말로 오래된 소녀"라는 제목의 소설은 팔리지도 않고 무시당하고 책처럼 이충엽도 무시당한다. 집에서 마시는 막걸리와 초파리들을 보면서 이들도 세상에 나온 목적이 있을 것이며 그러기에 술에 빠져도 살고자 버둥대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출판사에서 십몇년전 전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소설로 초대형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김순신을 영입하고 어찌하여 초대박을 치게 된다.
거꾸로 초파리떼들처럼 출판사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 이충엽은 대박이 났으니 연애과 좋은 집으로의 이사를 꿈꾸며 에프킬라로 초파리를 죽인다.
그러면서 희망에 부풀면 좋으련만 심드렁해지며 천년초파리왕국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생각해본다. 당연하다. 초파리는 오래 사는 생물이 아니니 천년왕국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 또한 천년 만년 영화를 누릴 수도 없고 어느 순간 에프킬라에 맞아 세상을 뜨는 초파리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단편과 함께 실린 노트북공장라인의 반장이야기를 다룬 <그러니까,늘 그런>, 장기사냥꾼 도박사이야기인 <부른다>등도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가볍고 어쩌면 상징적인 이야기들이라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또 몰입이 어렵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뭔가 큰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면 뭔가 얻을 것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