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 박웅현·최재천에서 홍정욱·차인표까지 나다운 삶을 선택한 열두 남자의 유쾌한 인생 밀담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울 신랑은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한다. 이 남자는 책이 오면 먼저 제목부터 보고 다 아는 것처럼 한마디를 던지곤 한다. 그러고는 별관심을 두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본인의 눈길을 끄는 책이 있으면 주르륵 훑어본다. 그러고는 툭 던져놓으며 '읽고 얘기해줘'라고 말한다. 나는 신랑한테 책읽어주는 여자일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이 오자마자 이 남자, 책을 가지고 가버린다. 제목에 끌렸나? 내가 보기에 위험한지 어떤지 먼저 알아보려하나?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별일이다.  

 우리집에는 방이 세개이고 아들이 하나라 방이 하나 남아있어 책장을 넣고 책상을 두개 넣어 공부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방에서 주로 아들이 공부를 하거나 내가 책을 읽는 공간이었는데 그 날부터 남편이 떡하니 책상하나를 차지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우리 신랑을 바꿔놓은 마법의 지팡이가 되어버렸다.

  

 남자의 서재라는 말에는 남자들의 로망이 들어있다. (물론 여자들도 서재를 가지고 싶어하지만) 결혼해서 남편을 위한 서재를 꾸며주고 싶다는 여자들도 많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삶에서 남자가 서재에 앉아서 책을 보고 사색을 하는 장면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남자들은 회사끝나고 사람들 만나서 전날 마신 술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골프이야기 그리고 정치이야기를 하느라 바쁘시기 때문이다. 그러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악기를 배워서 공연을 해보자고 결심도 하고 시골에 집을 짓고 책읽고 운동하면서 핸드폰없이 사는 삶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다음날이면 또다시 회사가고 술먹고 자는 생활을 되풀이 할 뿐이다. 다들 삶 따로 꿈 따로 인채 살고 있다. 

 

 술집에서의 만남이 대부분이 남자들이 서재에서 만났다. 마치 그의 내밀한  속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그사람이 누굴 만나고 있는지(친구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를 보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이 누굴 만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지만 서재에서 만난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사람의 반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정돈된 일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없으니까 문화 따로 삶 따로인 채로 놉니다. 저는 취미,취향이라는 말 대신 일상 혹은 '삶의 미학'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잡아주는 균형추인데, 그게 없으니 트렌드를 따라가고 남의 문화를 베끼면서 자꾸만 휘둘립니다. 트렌드를 따라 하기보다 이젠 트렌드의 본질을 생각합니다. <장자>를 공부하며 '각득기의 (各得基宜)란 말이 가장 와 닿았던 겁니다. 세상의 사람과 사물은 모두 제각각인데, 마땅한 자기자리가 따로 있다는 뜻이죠. " 

 

  우리는 잘 사는 방법만을 고민하고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과 비슷하게라도 살아야겠고 그러니 겉으로라도 따라해야 맘이 편하다. 그러다보니 내가 없다. 나답게 사는 게 뭔지 모르고 그저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이들은 딴짓을 한다. 모두가 하는 짓이 아닌 자기만의 딴짓이 서재에서 벌어지고 있다. 숨겨진 '자기혁명'이 불씨를 보존하고 키울 수 있는 남자의 일번지가 서재였고, 이들은 여기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책에서 이들의 서재 전체를 다 보여주지 않아서 더 엿보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삶은 너무 부러웠다. 이 책에도 나와있지만 문정희님은 '문학이건 뭐건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거나 삶의 기미를 잡아내는 지적 능력, 즉 통찰력이 우선이고, 테크닉이나 스타일은 그 다음에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했다. 이들은 서재에서 인문학과 철학의 기초체력을 키워 삶의 통찰력을 갖추어가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남자들을 위해 이 책을 한 권 선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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