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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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이야기꾼들의 완벽한 컬렉션! 

책표지를 장식한 멋진 작가들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편집자인 마이클 셰이븐의 말을 빌어보자면 " 일생일대의 소원은 자기 이름을 건 잡지를 발간하는 것이며, 지금은 잊히고만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라는 소망에 의하여 나오게 된 책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때 만났던 애드거 알렌 포는 정말 멋진 단편소설작가였다. 당시 영어선생님과 포의 단편을 가지고 해석해 가면서 함께 읽던 기억은 지금도 멋진 일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추억중 하나이다. 짧은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위트와 지혜. 당시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단편이 주는 감동은 한 편의 시와 같았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와 단편소설보다는 서사가 강한 장편소설과 실용문에 익숙해지다보니 단편이 주는 그 상큼한 맛을 잊어버리게 된 듯하다. 

  이번에 다시 만난 단편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은 그런 면에서 나를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게도 했고 그리고 새로운 단편의 즐거움을 알게 했다. 물론 이 단편집에 실린 모든 단편이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아니다. 그건 일부 단편이 문학성이 떨어진다거나 부족하다는 평을 내가 감히 할 수 없을뿐아니라 단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환호하는 그저 독자일 뿐이니 이 단편집에서 좋았던 몇 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이 단편집은 귀신,추리,서스펜스,범죄,미스터리,판타지,해양모험,스파이,전쟁,역사,로맨스 등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로 되어있다. 내가 보기에 독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의 단편을 골라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데이브 애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

  데이브 애거스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된 작가이다. 자전적 이야기 <비틀거리는 천재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쓴 작가다. 오로지 탄자니아에 와서 산을 오르게 된 이유가 여동생때문인 그러나 혼자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주인공 리타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낯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킬리만자로를 오른다. 그다지 흥미가 있는 길도 아닌 그 길은 꾸역꾸역 오르는 리타는 어쩌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 또한 우리가 선택하고 즐거이 오르는 산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저 내려가지 못하니 꾸역꾸역 오를 수 밖에 없는 길을 우리는 걷고 있는 지도 모른다. 처음의 평탄한 길은 지루하다. 그래서 속력을 내서 먼저 오른다. 산을 오르면서 점차 머리속은 간결해진다. 오로지 어디를 디딜 것인가하는 판단을 하느라 뇌기능의 대부분을 사용해야 한다. 꾸준하게 강건하게 기운차게 오르는 산길이 고맙다. 산을 오르며 가장 잘 오르고 꼭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은 먼저 내려가버리고 못한다고 했던 사람은 끝까지 오른다.끝없는 갈등, 오를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하는 속에서 정상까지 오르기로 한다. 달을 보면서 그 곳에 갈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일거라 생각한다. 매번 포기하고 그저 열심히 했다는데에 만족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 성공과 실패사이, 성취하고 이룬 목표와 조정된 목표사이의 미묘한 지점에서 위안을 발견했던 것에 대한 반성속에서 어떻게든 해내기로 한다. 드디어 정상, 얼마든지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도중에 하산해버린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과거의 리타의 모습이었을 것이며 지금까지 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산을 품고 내려가는 리타. 


에이미 벤더 '소금후추통 살인사건'

이 작가도 처음이다.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해서인지 이 작품은 눈에 띄었다.두 구의 시체가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차갑게 누워있다. 아내와 남편.나는 이 둘이 왜 죽었는지 조사해 나간다. 그 곳에서 발견되는 많은 소금과 후추통들... 이어 쏟아지는 증언. 둘이 미워했다. 서로 죽인 것이 맞다. 아내는 독약을 먹었고 남편은 칼에 찔렸다. 별개의 방법으로 똑같은 날짜에 똑같은 죽음의 순간을 계획한듯 보인다.아내는 원래 소금을 좋아했고 남편은 후추를 좋아했다.그러다 남편은 후추알레르기가 생기고 아내는 혈압이 높아 소금을 끊어야 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무시하고 서로에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상대방이 제일 좋아하는 양념의 방식대로 서로를 죽임으로써 서로의 개성을 맞바꾼 격이었다. 아내는 칼을 선택해 매운 공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후추다운'방법이었고, 남편이 고른 독약은 혈류속의 염분을 높여 탈수 증세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약이었다. 결혼생활이란 어쩜 서로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증오를 쌓는 과정일 수도 있다.


 너무도 방대한 단편집이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20명의 작가가 쏟아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버라이어티쇼를 한바탕 본 듯하다.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테마의 이야기를 읽다가 혹 다른 이야기가 끌리면 또 읽다보면 이 책이 가진 매력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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