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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작가는 김애란 김미월 정도였다. 김애란 작가는 <두근두근 내인생>을 통해서 김미월 작가는 <여덟번째 방>이란 작품을 통해서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작가때문이다. 두 작가가 모두 시골출신에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의 글이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로 되어 있어서이다. 당연한 기대로 보게 된 이 책은 기대이상의 선물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은 사실 꺼려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베스트셀러와 고전을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새로운 작가를 알아간다는 즐거움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설집의 작가들은 나이가 어리다. (물론 나의 기준에서 나보다 어리니까) 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세대라면 이들은 IMF이후 더 악화된 사회구조속에서 학생운동,노동운동의 형식으로 해결한 수없는 사회의 모순을 만난 세대이다. 이런 경험들이 이들의 감성에 녹아들어 삶의 답답함과 불안정한 위치로 인한 불안감이 고스란히 소설속에 들어있다.
소설들속에서 젊은이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사회의 표준에 걸맞는 나름의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결과는 허망하다.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고,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히고 그래서 외롭다.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연민을 가질 수 없겠지만 이들은 타락한 사회에서 정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을 치지만 비정상이 되고 만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눈감아버린 우리의 현실이다.
김애란의 <큐티클>에서 주인공은 결혼식장에 가면서 네일아트를 받아본다. 처음으로. 성공한 자신만만한 여성이라면 옷과 악세사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듯이 요즘시대에 네일아트는 보편적인 자신의 상징이 되고 있으니까. 조금은 부끄럽고 없었으면 하는 손톱의 큐티클을 제거하고 메니큐어로 이쁘게 칠해진 손톱. 이것은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의 상징이고 남이 보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더운 날 결혼식장에 가다보니 겨드랑이에 땀이 났다. 이 겨드랑이의 땀은 내가 보여주기 싫은 나의 모습이고 남이 안 보았으면 하는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내보이지 못하고 남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옷과 악세사리와 네일아트는 교육수준과 가치와 사회의 여러가지 지표를 반영하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얽매여 살고 있다.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 맥주캔을 따다가 손톱이 망가진다. 이 깨진 손톱은 우리가 가치의 갈등을 겪으며 올바른 가치를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모습은 염승숙의 <완전한 불면 >에서처럼 잠을 못자는 불면증으로잠못자는 세대이고, 최진영의 <창>에서처럼 직장속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김미월의 <질문들>에서처럼 설문지알바를 하면서 오래된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소박한 꿈을 꾸는 세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진영의 <창>속 여자처럼 자신을 왕따시킨 동료들의 컴퓨터를 포맷시켜버리고, 염승숙의 <완전한 불면>의 주인공처럼 자기대신 들어온 마네킹을 처박아버리는 공격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과연 포맷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세지다.
이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좌담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이다. 잘 차려진 정식을 먹은 뒤의 맛있는 후식처럼 책을 읽고 난 뒤 좌담을 읽는다면 한끼 맛있는 기억에 남는 식사를 한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