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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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전이란 가슴 두근거리는 부조리’라고 정의하는 작가는 그런 부조리가 넘치는 소설을 쓰는 일루저니스트를 꿈꿉니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여섯 구의 시체로 만들어진 한 명의 죽은 사람, 데드맨이란 설정이 소름끼치지만, 그 발상 자체만으로 대단한 도전이자 신선한 충격임은 부인할 수 없다 생각했다. 알고보니 『데드맨』은 많은 부분에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를 오마주한 작품이었다. 신인 작가가 이미 많이 알려진 명작을 대놓고 오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감히 그 작품에 도전하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이 아니라 그 기개를 배우고 싶었던 겁니다.’라는 가와이 간지의 인터뷰를 보고 어쩐지 그가 더 맘에 들었다.

한 남자의 미스테리한 일기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이 일기의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그만큼 작가는 반전을 꼭꼭 잘 숨겨 뒀다 적절한 때에 슬쩍 알려준다. 아하! 하고 얼마 안 가서 뭐야? 또 있어? 하게 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소설이다.

악몽에서 깬 형사 가부라기 데쓰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후배 히메노가 들고 온 참혹한 살인 사건 소식이다. 예리한 무언가로 깔끔하게 절단된 머리 없는 사체는 장기 보존액이 담긴 욕조 안에서 발견됐다. 원한도, 치정도, 정신 이상도 아닌 지나치게 정돈된 사건 현장을 보고 애초에 ‘시체의 머리’를 목표로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 가부라기 형사는 특별수사본부를 지휘하게 된다. 단서 하나 없는 상황에서 하루 만에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호텔 욕조에서 몸통이 없는 시체가 발견되고 가부라기 형사는 장기이식 전문가를 찾아 사람의 머리를 절단해 다른 몸통에 붙이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다.

“설사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머리나 뇌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_106

그 이후 두 달 동안, 4구의 시체가 더 발견되었고 각각 오른쪽 팔, 왼쪽 팔,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가 하나씩 없는 상태였다. 살해된 여섯 명 사이의 어떤 연결고리도 찾지 못하고 사건은 오리무중이다.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자신(머리)이 다른 사람들의 신체 부위를 맞추어 붙여 완성되었다는 데드맨(스스로 이름한)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그에게 몸통과 팔다리를 구해주고 그에게 가미무라 슌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다카사카 선생의 정체는 뭘까?

늘 맞지는 않지만 사건을 다소 엉뚱한 새로운 각도로 볼 줄 아는 가부라기 형사와 엘리트이면서도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형사가 된 괴짜 히메, 과학경찰연구소에서 파견 나온 프로파일러 사와다, 무대포 같지만 한 번 파면 끝을 보는 형사 마사키. 형사물답게 팀원들 간의 동료애와 캐미를 보는 재미도 빼놓지 않았다.

데드맨이 가부라기에게 보낸 메일 한 통으로 이야기는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밝혀지는 진실은 역시 추악하다. 부조리하다.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잔다’라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때린 놈은 너무도 잘 사는 부조리한 요즘 세상에 법의 공정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데드맨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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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세상의 모든 와우 : 인체 대탐험 - 우리 몸 구석구석 모험을 시작하라! WOW 세상의 모든 와우
민디 토머스.가이 라즈 지음, 잭 티글 그림, 김현희 옮김 / 물주는아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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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탐험의 시작은 인체 탐험 아니겠어?! 위트 넘치는 민디, 가이 작가와 함께 인체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우리 몸의 신비로운 비밀을 파헤쳐 봐! 지식은 물론 기분 좋은 놀라움과 재미는 덤!

 

 

 


 

 

이 책에서는 저자 민디와 가이가 친구들에게 말하듯이 글을 썼어. 내 리뷰도 그 말투를 한 번 흉내내 보려고 해! 기분 나쁘면 보지 말든가! (장난장난)

 

 

 

나는 남자아이 셋을 키우며 다양한 과학 관련 도서를 저도 같이 읽어 봤어. 그래서 웬만하면 대충 아는 내용이겠거니~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와우!”하고 놀랄 일이 얼마나 있겠어~ 하며 책을 펼쳤지. 근데 말이지...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 wow가 나오기 시작하는 거야(쭈굴). 아직 인체 관련 서적을 많이 접하지 않은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에겐 특히 굉장히 신기하고 재미는 책이 될 거야. 이미 꽤 인체에 대해 박식한 친구들도 분명 몰랐던 내용은 물론 알고 있던 내용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테니 한 번 읽어봐~

 

 

 

아이들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면 특히 이 책은 활용하기 좋을 거야. 나는 먼저 내가 책을 읽고 나서 신기한 부분만 골라서 아이들에게 퀴즈를 내봤어. 그랬더니 승부욕 넘치는 세 아들은 서로 맞추고 싶어(아는 것도 없으면서 >.<) 덤벼들어 책 내용에 집중하더라고. (통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지.

 

 

Q. 눈썹의 쓰임새 3가지 아는 사람~!

 

 

Q. 방귀의 별명들은 뭐가 있게~?

 

 

Q. 코딱지, 먹어도 될까?(이건 실제 책 속에서 토론하는 내용이 나와. 여러분의 생각은?)

 

 

퀴즈 낼 거리는 무궁무진해.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면 흥미를 잃을 수 있으니 난이도 조절은 센스있게 하라구! 정답 알려 달라고? 직접 책에서 찾아보도록 해~

 

 

 

<와우! 깨알 정보> 코너와 <와우! 틈새 과학 상식> 코너에 유익한 내용과 곳곳에 웃음 폭탄들이 숨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와우! 놀라운 기록> 코너에서는 신기한 기네스북 기록들에 대해 나오는데 사진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어. ‘세상에서 가장 긴 귀털을 가진 사람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데 가장 긴 건 18센티미터나 됐대. 얼마나 궁금해~ 사진으로 바로 볼 수 있었다면 인터넷을 뒤지느라 책 읽는 흐름이 깨질 일도 없고 좋았을 것 같아.

 

 

 

 

<들어가는 말>에서 작가가 이런 말을 해.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놀라복 흥미로운 사실들이 아직 많거든. 그 정보들을 책 한 권에 모두 실으려면 무게가 버스만큼 무거워질걸?”

 

 

우리 인체에 흥미를 느끼게 하기엔 충분한 내용이지만 민디와 가이 작가는 독자들이 무궁무진한 우리 인체에 대한 정보들을 직접 파헤쳐 보라고 권해. 스스로 찾은 새로운 정보는 왠지 더 값지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기도 해. 자 그럼 다들 세상의 모든 와우 인체 대탐험부터 떠나 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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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타자기
피터 애커먼 지음, 맥스 달튼 그림, 박지예 옮김 / 더블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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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에게도 오래된 소중한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 ⠀ ⠀⠀ ⠀ ⠀ 




까만 머리를 곱게 말아 올리고 동그랗고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여자분이 민트색 타자기를 사고 있어요. 타자기를 사는 사람의 표정도 판매원도 아주 좋은 걸 보니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거래였나 봐요. ⠀ ⠀ ⠀ 




이 여성의 이름은 펄이고 그녀는 마틴 루서 킹을 홍보하기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답니다. 오! 그렇다면 실존 인물일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검색해 보았지만 <꿈꾸는 다락방 타자기>에 관한 글만 나오더라고요. 🙁😄 ⠀ ⠀




 20년 뒤 이 타자기는 펄의 딸 페넬로페의 것이 돼요. 타자기는 페넬로페의 시도 써주고 연애편지도 써주면서 매우 행복했어요. 😊 ⠀ ⠀ ⠀



 그러나, ⠀ ⠀ ⠀




 '행복'은 말 안듣는 강아지마냥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존재잖아요? 타자기의 '행복'은 컴퓨터의 등장과 동시에 퇴장한답니다. 😢 ⠀ ⠀ ⠀ 




⠀ 오래된 타자기는다락방 깊숙한 곳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돼요. 행복과 외로움을 느끼는 타자기라면 분명 희망도 가지고 있었겠죠? 페넬로페의 아들 파블로가 바로 그 희망의 씨앗이 됩니다. 먼지와 거미줄에 둘러싸인 속에서도 뚝심있게 기다린 타자기에게 다시 '행복'이 찾아 올까요?😊 ⠀ ⠀ ⠀ ⠀ 




파블로네 여섯 식구는 한 가족이지만 얼굴색이 다르답니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색이 다르거든요. 그렇지만 그림책 속에서 그 모습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도 이상해 보이지도 않죠. 현실에서도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당연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 ⠀ ⠀ 




작가 피터 애커먼은 우리집 삼형제가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아이스 에이지>, <앵그리버드 2>등의 각본을 쓰신 분이더라고요! 어찌나 반가웠는지요! <꿈꾸는 다락방 타자기> 외에 맥스 달튼과 함께 작업한 <소리지르는 꼬마 요리사>라는 책도 궁금해 지네요🧐😊 ⠀ ⠀ ⠀ ⠀ ⠀ 





꿈꾸는 다락방 타자기를 보면서 제게 오래된 의미있는 물건을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물건이 없었어요. ㅠㅠ 그게 참 아쉽더라고요. 삼대가 한 물건으로 각자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꽤나 감동적일 것 같았거든요. 지금이라도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 ⠀ ⠀ ⠀ ⠀ 




<꿈꾸는 다락방 타자기>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지닌 찰떡 제목 같아요. 하나는 '행복을 꿈꾸는 다락방 타자기'라는 의미로, 또다른 하나는 '타자기로 인해 작가의 꿈을 꾼(키워나갔던) 펄과 페넬로페, 어쩌면 파블로도?'라는의미로요. ⠀ ⠀ ⠀ ⠀ ⠀ ⠀ 




파블로가 타자기와 만들어 나갈 이야기를 기대해보며...저도 이제 꿈꾸러 가야겠어요.(꿈나라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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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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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제법 엄숙한 얼굴에서 제법 엄숙한이란 표현이 비꼬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단순히 조소의 느낌만을 지닌 표현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맞았다. 지하련의 세 번째 소설 체향초에서 꽤 엄숙한 얼굴이란 표현이 나온다. 체향초는 요양차 내려간 고향에서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지식인 오라버니의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여 우울에 빠진 모습을 동생 삼희의 시선으로 관찰한 이야기다. 오라버니는 태일이란 인물을 살어 있는 사람이라며 생명과, 육체와, 또 훌륭한 사나이란 자랑을 가졌다며 칭송한다. 삼희가 보기엔 아무래도 그 표현들이 과장되어 보이면서도 태일이 오라버니의 말을 받아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꽤 엄숙한 얼굴이면서도, 웃으면 순결해보인다고 표현한다.

 

 

 

 

 

체향초에서 쓰인 꽤 엄숙한 얼굴은 임솔아의 소설 제법 엄숙한 얼굴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11살에 호주로 이민을 가서 영어를 못해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계속 말을 하고 싶다는 카페 사장 제이,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눈빛에 슬쩍 비친 외로움에 수경은 그가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겨우 인터뷰어로 만난 (수경)’에게 자신의 자랑과 허세를 넘어 자신이 쉴 새 없이 말하게 되는 이면의 허무함과 외로움까지 낱낱이 고백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런 제이를 관찰하는 조선족 영예가 있다. 호주에서 경험한 동양인 비하적 문화에서 받는 상처를 알기에 카페를 구상할 때부터 조선족과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제이는 학원에 가서까지 서울말을 배운 영예에게 서빙할 때는 연변말을 쓰라고 한다. 직원들 앞에서는 권위 있는 척하며 자랑만 늘어놓지만 수경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도리어 드러낸다는 사실을 영예는 믿기 어렵다. 최신 성능을 자랑하던 로봇 청소기가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놓은 장식장 밑으로 들어 가버리자 그는 청소기를 꺼내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실패한다. 그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제법 엄숙한 얼굴로 수경을 바라본다.

 

 

제법 엄숙한 얼굴은 자신의 이념과 현실의 괴리, 겉과 속의 불일치를 겪는 이들의 우스꽝스럽고 안쓰럽고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하련의 소설에서 탁월한 인물의 미묘한 감정 표현이 좋았다. 마치 내가 형예를 따라 부아가 나는 것 같았고, 친구의 훈훈하고 서글서글한 서울 신랑을 보며 괜히 설레기도 했다. 세상사에 무심해져 버린 침울한 오라버니를 보며 못났다 싶기도, 안쓰럽기도 한 삼희의 마음에 공감했고 그토록 친한 친구의 남편을 굳이 사랑한 정예의 인생이 애처롭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유독 형예에게 마음이 가 소설 결별을 짧게 소개해 본다.

 

 

 

 

소설*결별

 

 

한바탕 다투고난 다음 날 신랑은 휑하니 일하러 나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집에 덩그러니 남아 할 일이 없는 형예는 부아가 난다. ‘왜 나는 간편을 하면 안 되나?’ 뭔가 불합리한 것 같아 골통이 난다.

 

 

어제 혼인한 친구 정희의 초대로 마지 못해 집을 나서지만 마지 못해 나서는 것 치곤 과하게 단장을 하고 괜히 동네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학교 뒷길로 돌아간다. 형예가 단장을 한 이유는 아무래도 서울 신랑(정희의 남편)을 의식해서 인 것 같지만 도대체 왜 의식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얘 넌 이기는 게 좋으냐, 지는 게 좋으냐?”

 

정희는 이렇게 묻고 되묻는 형예에게 그래 난 지는 게 좋다. 일부러래두 지려구 해, 어떠냐?”라고 말하며 이기고 나면 영 쓸쓸할 것 같구 허전할 것같단다.

 

 

제가 지는 것으로 해서 조금도 자존심이 상할 리 없다는 설명과 지고도 만족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지 모른다는 정희는 자신이 이토록 좋아하는 신랑과 그만큼 좋아하는 친구 형예가 친해지길 바라 자꾸만 신랑을 부르자고 한다. 신랑은 꽤나 유쾌한 사람이고 함께 이야기하며 형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예는 기꺼움 속에서도 외롭다.

 

 

형예는 전에 없이 아름답고 즐거운 밤인 것을 확실히 느낄수록 어쩐지, 점점 물새처럼 외로워졌다. 저와 상관되고 가까운 모든 사람이 한낱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는 저와 가장 멀리 있고, 일찍이 한 번도 사랑해본 기억이 없는 허다한 사람을 따르려고 했다._51

 

이 짧은 단편에 다양한 여성의 삶이 나온다. ‘학교 때 공부 못하고 빙충맞게 굴던명순이 같은 여자들이 살림 잘한다 착한 말 듣고 잘 살기도 하고, ‘귀엽고...곧은 생각을 담옥담옥 지녔던, 죽은 순희도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빠엔가 찻집에 있다는 소문이 있는) 지순이가 있고, 게봉이나 형예같이 도무지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도 있다. 또 늦게 한 혼인이지만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을 만나 티없이 행복해 보이는 정희같은 이도 있다.

 

 

 

엄마가 권하는 선을 통해 결혼한 형예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만 같다. 사랑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한다. 그 시절 그런 결혼이 얼마나 흔했고 이런 고민들이 얼마나 흔했을 테지만 이렇게 꼬집어 주었을 때 일종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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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 코코 샤넬 전기의 결정판
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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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을 다시 시작하느냐고요? 쉬는 게 지겹다는 것을 깨닫는 데 15년이 걸린 거죠. 이제는 허무에 빠져 있기보다는 차라리 실패하는 편이 더 낫거든요.” _447

 

 

 

15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한 71세의 가브리엘 샤넬이 했던 말이다. 힘든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을 거둔 것도 대단하지만, 일흔하나의 나이에 쟁쟁한 디자이너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패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내세우며 재기에 도전하는 나이 든 샤넬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책의 앞부분에서 행상 일을 하며 19명이나 되는 자식을 둔 조부의 이야기에 이어 수완 좋은 장사꾼으로서의 소질을 타고나 능란한 말솜씨로 손님들의 얼을 빼놓곤 했다는 아버지 알베르와 어머니 잔의 사연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다른 마을 처녀를 현란한 말솜씨로 꼬드겨 임신을 시켜놓고 내빼는 불한당 같은 알베르는 결국 붙잡혀 본의 아니게 책임을 지게된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알베르는 자기 때문에 고생하다 천식과 합병증으로 아내가 죽자 두 딸과 두 아들을 모두 버린다.

 

 

 

가브리엘은 왜 코코로 불렸을까?

한때 카페에서 가수로 인기를 끌었던 가브리엘이 가장 히트한 노래는 <코코리코>였고 깡마른 몸매에 당시 선호하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묘한 매력으로 성공을 거듭했다. 팬들이 앙코르를 요청할 때 그녀가 노래를 다시 부를 때까지 발음이 같은 KokoCoco의 두 음절을 요란하게 외치는 바람에 그녀는 평생 코코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경마에 푹 빠져있던 에티엔 발장 장교, 가브리엘의 두 번째 남자이자 평생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아서 카펠,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 영국의 웨스트민스턴 공작, 시인 르베르디, 광고 디자이너 폴 이리브, 독일 외교관 한스까지 가브리엘의 인생에 남자는 끊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의 매력과 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카펠의 도움이 없었다면(훗날 빚을 모두 갚았지만) ‘샤넬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브랜드로서 샤넬이 아니라 그저 코코샤넬로 남았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특히 웨스트민스터 공작에게 맞춰주기 위해 따분한 연어 낚시를 하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고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사냥감을 향해 총을 겨누는 척하는 등의 행동은 평소 그녀가 말하는 독립적인 여성? 의 모습과는 다소 모순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가식적인 마음으로 동참했을지라도 그런 경험이 결국 그녀의 일에는 도움이 됐다. 승마, 사냥, 낚시 등 스포츠의 활동적인 생활에 필요한 의상을 구상하게 했으니 말이다.

 

 

 

 

가브리엘은 당시 유행하는 모자와 달리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모자를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일하게 상점 문을 열어두었던 가브리엘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의 모자는 상황이 요구하는 단순하고 편리한 전시의 패션에 제격이었다. 고급 의상점에 어울리지 않는 편물을 사용하고, 여성 옷감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지소재를 과감하게 선택했을 뿐 아니라 치맛단의 길이를 대폭 줄이고 여성복의 장식적인 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실루엣을 라인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혁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런 혁신은 1914년부터 여성 고객들이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생활과 일치했다. 이렇게 가브리엘은 전시 상황을 잘 이용해서 사업을 더 번창시킬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많은 예술가와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하는 관용을 베풀기도 했지만, 독선적이고 까칠한 사람이기도 했다. 친한 친구이자 극작가인 장 콕토는 그녀를 이렇게 설명했다.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혐오감을 주기도 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성. 분노, 짓궂은 말, 창작력, 변덕스러움, 극단적 성격, 친절함, 유머, 관대함 등이 샤넬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_260

 

 

코코샤넬, 인간적으로 나는 그녀가 좋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할지라도 악의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아서인 듯. 하지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찾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으며 새로운 것에 대범하게 도전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리고 성취해내는 훌륭한 디자이너로서 존경받아 마땅해 보인다.

 

황금 시대의 지나친 장식도 사라졌는데 그녀는 뉴 룩패션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디오르가 여전히 허리를 지나치게 조이고, 코르셋을 채우고, 고래뼈 받침살대로 여성의 몸을 괴롭히고 있음을 확인했을 대,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 가련한 여자들이 옷을 찢지 않고 어떻게 몸을 굽히거나 자동차에 탈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기괴한 현상인가! 그녀는 의상 디자이너들은 그 옷 속에 여자들이 있는 것을 잊고 있다고 외쳤다._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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