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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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제법 엄숙한 얼굴에서 제법 엄숙한이란 표현이 비꼬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단순히 조소의 느낌만을 지닌 표현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맞았다. 지하련의 세 번째 소설 체향초에서 꽤 엄숙한 얼굴이란 표현이 나온다. 체향초는 요양차 내려간 고향에서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지식인 오라버니의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여 우울에 빠진 모습을 동생 삼희의 시선으로 관찰한 이야기다. 오라버니는 태일이란 인물을 살어 있는 사람이라며 생명과, 육체와, 또 훌륭한 사나이란 자랑을 가졌다며 칭송한다. 삼희가 보기엔 아무래도 그 표현들이 과장되어 보이면서도 태일이 오라버니의 말을 받아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꽤 엄숙한 얼굴이면서도, 웃으면 순결해보인다고 표현한다.

 

 

 

 

 

체향초에서 쓰인 꽤 엄숙한 얼굴은 임솔아의 소설 제법 엄숙한 얼굴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11살에 호주로 이민을 가서 영어를 못해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계속 말을 하고 싶다는 카페 사장 제이,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눈빛에 슬쩍 비친 외로움에 수경은 그가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겨우 인터뷰어로 만난 (수경)’에게 자신의 자랑과 허세를 넘어 자신이 쉴 새 없이 말하게 되는 이면의 허무함과 외로움까지 낱낱이 고백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런 제이를 관찰하는 조선족 영예가 있다. 호주에서 경험한 동양인 비하적 문화에서 받는 상처를 알기에 카페를 구상할 때부터 조선족과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제이는 학원에 가서까지 서울말을 배운 영예에게 서빙할 때는 연변말을 쓰라고 한다. 직원들 앞에서는 권위 있는 척하며 자랑만 늘어놓지만 수경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도리어 드러낸다는 사실을 영예는 믿기 어렵다. 최신 성능을 자랑하던 로봇 청소기가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놓은 장식장 밑으로 들어 가버리자 그는 청소기를 꺼내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실패한다. 그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제법 엄숙한 얼굴로 수경을 바라본다.

 

 

제법 엄숙한 얼굴은 자신의 이념과 현실의 괴리, 겉과 속의 불일치를 겪는 이들의 우스꽝스럽고 안쓰럽고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하련의 소설에서 탁월한 인물의 미묘한 감정 표현이 좋았다. 마치 내가 형예를 따라 부아가 나는 것 같았고, 친구의 훈훈하고 서글서글한 서울 신랑을 보며 괜히 설레기도 했다. 세상사에 무심해져 버린 침울한 오라버니를 보며 못났다 싶기도, 안쓰럽기도 한 삼희의 마음에 공감했고 그토록 친한 친구의 남편을 굳이 사랑한 정예의 인생이 애처롭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유독 형예에게 마음이 가 소설 결별을 짧게 소개해 본다.

 

 

 

 

소설*결별

 

 

한바탕 다투고난 다음 날 신랑은 휑하니 일하러 나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집에 덩그러니 남아 할 일이 없는 형예는 부아가 난다. ‘왜 나는 간편을 하면 안 되나?’ 뭔가 불합리한 것 같아 골통이 난다.

 

 

어제 혼인한 친구 정희의 초대로 마지 못해 집을 나서지만 마지 못해 나서는 것 치곤 과하게 단장을 하고 괜히 동네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학교 뒷길로 돌아간다. 형예가 단장을 한 이유는 아무래도 서울 신랑(정희의 남편)을 의식해서 인 것 같지만 도대체 왜 의식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얘 넌 이기는 게 좋으냐, 지는 게 좋으냐?”

 

정희는 이렇게 묻고 되묻는 형예에게 그래 난 지는 게 좋다. 일부러래두 지려구 해, 어떠냐?”라고 말하며 이기고 나면 영 쓸쓸할 것 같구 허전할 것같단다.

 

 

제가 지는 것으로 해서 조금도 자존심이 상할 리 없다는 설명과 지고도 만족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지 모른다는 정희는 자신이 이토록 좋아하는 신랑과 그만큼 좋아하는 친구 형예가 친해지길 바라 자꾸만 신랑을 부르자고 한다. 신랑은 꽤나 유쾌한 사람이고 함께 이야기하며 형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예는 기꺼움 속에서도 외롭다.

 

 

형예는 전에 없이 아름답고 즐거운 밤인 것을 확실히 느낄수록 어쩐지, 점점 물새처럼 외로워졌다. 저와 상관되고 가까운 모든 사람이 한낱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는 저와 가장 멀리 있고, 일찍이 한 번도 사랑해본 기억이 없는 허다한 사람을 따르려고 했다._51

 

이 짧은 단편에 다양한 여성의 삶이 나온다. ‘학교 때 공부 못하고 빙충맞게 굴던명순이 같은 여자들이 살림 잘한다 착한 말 듣고 잘 살기도 하고, ‘귀엽고...곧은 생각을 담옥담옥 지녔던, 죽은 순희도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빠엔가 찻집에 있다는 소문이 있는) 지순이가 있고, 게봉이나 형예같이 도무지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도 있다. 또 늦게 한 혼인이지만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을 만나 티없이 행복해 보이는 정희같은 이도 있다.

 

 

 

엄마가 권하는 선을 통해 결혼한 형예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만 같다. 사랑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한다. 그 시절 그런 결혼이 얼마나 흔했고 이런 고민들이 얼마나 흔했을 테지만 이렇게 꼬집어 주었을 때 일종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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