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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외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1월
평점 :
#모든슬픔이사라진다
#이루카 엮고 옮김
#아티초크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면 좋을 거 같지만 마냥 좋기만 할까? 영화 #인사이드아웃 에서 라일라의 마음속에 슬픔이를 가둬두고 슬퍼할 일에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게 했을 때 오히려 라일라는 혼란스러워한다. ‘슬픔이’는 죄가 없다. 오히려 눈물로 불편한 감정을 실컷 흘려보내고 감정을 정리하는 시작이 된다. 그렇다면 사라져야 하는 ‘슬픔’은 어떤 걸까? 자연스럽게 발생한 이별, 뜻밖의 상실이 아니라 부당한 일로, 억울하게, 타인의 폭력에서 비롯된 슬픔이 아닐까? 대체로 당하는 자들은 약자와 소수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겐 꼭 미선나무꽃을 선물하고 싶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미선나무의 꽃말이니까.
첫째 아이가 중학생이 된다. 시집을 읽다가 중학교 과정을 훑어보는 과정으로 국어 인강을 듣던 아이가 ‘시’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났다.
“와! 시는 정말 음악처럼 정말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네!”
아이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 이론을 꽤 오래 공부했는데 그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결론은 시도 음악이랑 닮아서 흥미롭지만 어렵다는 거였으나, 그 표현이 제법 기특하게 들렸다. 또 어쩜 내 감상이랑 닮은 것도 같다. 시는 흥미롭고 매력적이지만 어렵다.
한 행을 서너 번 읽는 건 보통이고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도 항복하게 되는 시들의 연속이ㅇ었다. 시인에 대해서 알면 좀더 이해가 쉬울까 해서 시를 읽고, 뒤에 있는 작가 소개를 뒤적여 시인의 이름을 찾았다. 이런 시인이라면 이런 의도로 이런 시를 썼겠구나, 마음대로 추측하기도 하고 도무지 알 수 없기도 했지만, 심장에 꽂히는 표현에 행복하기도 했다.
<아몬드꽃>_ 토머스 무어
「불행한 때
행복한 때를 꿈꾸면 희망은
잎 없는 가지에 피는
은빛 아몬드꽃처럼 싹튼다네」
왜 아몬드꽃을 희망에 비유했는지 궁금해서 아몬드꽃을 검색해 봤다. 아몬드꽃은 이른 봄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트려 유럽과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봄의 전령사’로 불리고, 꽃말이 ‘희망’이란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그 생리도 생김새도 벚꽃을 닮은 희망을 품은 아몬드꽃은 한 송이만 보면 핑크에 가깝지만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은빛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아몬드꽃’하면 고흐가 조카를 위해 혼신을 다한 작품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희망’이란 꽃말이 생각날 것 같다.
<오월의 꽃>_ 에밀리 디킨슨(106)
「분홍색이고 작고 어김없고
향기롭고 키가 작고
사월엔 안 보이고
오월엔 눈에 띄고
이끼에게 소중하고
무덤가에 있다고 하고
모든 인간의 영혼 속
울새와 가까이 있고
싱싱하고 작은 꽃
네가 장식한
자연은
죽음을 거부한다.」
스무고개 같은 시다. 도대체 그 오월의 꽃의 정체는 뭘까? 알 도리가 없어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빨강 카네이션>_ 엘라 윌러 윌콕스(110)
「.....
그런 뒤 사랑은 불꽃을 보았다.
큰불이 곧 꽃으로 바뀌었다.
그 꽃은 아름답기로나 향기로나
장미마저 부끄럽게 했다.
사랑은 꽃을 바라보았고 꽃은 시들지 않았다.
사랑이 그 꽃을 땄고 꽃은 색이 더 선명해졌다.
추위에도 더위에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향기와 빛깔도 변하지 않았다.
....
사랑은 그때부터 카네이션 옷을 입었다.」
윌콕스에 의하면,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사는 둘만의 상징,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의 상징이 된 꽃은 ‘카네이션’이다. 부모님과 스승의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품기에 빨강 카네이션이 선정된 이유가 이것일까?
많은 시인이 장미를 찬미한 만큼 그에 견줄만한 아름다운 꽃을 찾았던 듯하다. 윌콕스도 그러했고 에머슨도 철쭉을 장미의 경쟁자로 노래했다. 제인 테일러도 제비꽃이 낮은 초록 화단에 숨어 있지 않았다면 장미 대신 정자를 꾸밀 수 있었을 거라했다. 나는 빤한 장미를 노래한 시보다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시들에 더 끌린다.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뽑히기도 한 대한민국 초등학교 졸업한 누구라도 알만큼 유명한 윤동주 시인도 글 쓰는 일은 쉽지 않으셨던가 보다.
<화원에 꽃이 핀다>_ 윤동주(117)
「...
하나의 꽃밭이 이루어지도록 손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생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딴은 얼마의 단어를 모아 이 졸문을 지적거리는 데도 내 머리는 그렇게 명철한 것이 못됩니다. 한 해 동안을 내 두뇌로서가 아니라 몸으로서 일일이 헤아려 세포 사이마다 간직해 두어서야 몇 줄의 글이 이루어집니다.
....
봄바람의 고민에 찌들고 녹음의 권태에 시들고, 가을 하늘 감상에 울고, 노변의 사색에 졸다가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일 년은 이루어집니다.」
시 속에서 그 화원에 모여 마음을 나누는 동무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꽂힌다. 더 깊은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지고 이제는 과거가 돼 버려 의미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 동무들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의 시에서 ‘노변’은 시끄러운 세상일까? 그렇다면 “노변에서 많은 일이 이뤄질 것입니다.”라고 하는 희망적인 마지막 시구에 나의 희망도 보태어 본다. 지금 노변도 보통 시끄럽지 않으니 말이다.
스페인 내전을 일으킨 프랑코와 군부의 미움을 사 재판도 없이 사형당한 그의 안타까운 인생만큼이나 내 마음에 강렬함을 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베를렌>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
“반딧불이가 인동덩굴에 앉았고 달빛이 물을 찔렀다.”
“시간으로 채워진 노래가 그늘 속에서 시간을 셌다.”」
오랜만에 시를 음미하게 해준
우리 우주와 아티초크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