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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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부르듯, 잘 살아온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불러온다_레오나르도 다빈치

 

 

 

 

 

책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을 아시나요? 프레데릭 바지유의 가족모임이란 작품의 일부랍니다. 그림은 물론이고 화가의 이름도 저에게는 생소한데요. 경보가 자주 울리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진짜 화재 경보가 울리면 가장 먼저 대피시킬 것이라 말할 정도로 높이 평가하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나, 모나리자만큼이나 꼭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감상하길 바란다는 성 안나와 성모자와 같은 작품이 아니고 굳이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는데요. 아마도 안타까운 운명의 화가 장 프레데릭 바지유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모네, 피가로 등 인상파 동료들에게 준 심적·물적 지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바지유의 또 다른 작품 마을 풍경이 표지 그림이었더라도 좋았을 것 같네요.

 

 

 

저자는 2년여간 바티칸 박물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했고, 6년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로 활약했으며 연평균 400회 이상 강의를 진행하는 미술사 강사로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럽 미술사를 알기 쉽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미깡(미술 깡패) 도슨트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이래요. 그래서인지 다른 책에서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고 작품에 대한 해석의 깊이가 남다르다 느껴집니다. 약방의 감초처럼 미술 관련 책에서 빠지지 않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가 빠진 점도 신선한 느낌이 드네요.

 

 

 

특히, 영국의 개그맨이자 방송인이 조나단 루스에 의해 출간되었던 다빈치가 세 마리 개구리 깃발이라는 레스토랑의 요리사였다는 내용의 책은 만우절을 기해 기획된 허구의 책이라고 밝혔음에도 한 음식 전문 출판사에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삭제하고 재출간했으며, 그 책이 전 세계로 번역 출간되어 20년 동안 사실인 양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인데요. 상업적 이득을 위해 전 세계인을 기만한 이 출판사가 어떤 처분도 받지 않았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저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시작으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으로 우리를 차례차례 안내하면서 작품과 화가, 조각가, 그 작품의 역사적 배경들을 우리가 잘 소화할 수 있게 딱 알맞은 양과 맛으로 적절히 버무려 천천히 즐기게 해준답니다. 가끔 쓴맛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매운맛에 마음에 불이 나기도 하지만 다양한 맛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족감을 주는 책이에요.

 

 

쓴맛과 매운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 이야기는 그림만큼이나 충격적이에요. 프랑스는 새롭게 식민지가 된 세네갈을 개척하기 위해 파견된 메두사호, 선장 경험은 물론 항해 경험도 전무한 쇼마레 장군은 메두사호의 베테랑 선원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빠른 길로 가려다가 좌초돼요. 함장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안전한 구명선에 오르고 남은 150명의 일반 시민과 노예들은 돛과 갑판의 나무판자를 뜯어내어 20미터 정도의 임시 뗏목을 만들어 타죠. 쇼마레는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고 육지에 도착해서도 구조선을 보내지 않아요. 자신들이 만행을 숨기려고요. 뗏목에 있던 이들은 파도에 휩쓸려 가고, 남은 식량을 자치하기 위해 유혈사태가 벌어져 60여 명이 살해당하고, 결국은 인육을 먹으며 버티던 15명은 13일 만에 발견되지만 결국 단 3명만 생존해요.

 

제리코는 이 끔찍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림을 그려요. 실제 시체를 구해와 부패 과정을 그려보고 생존자와 인터뷰, 뗏목을 직접 제작해보는 등의 노력 끝에 메두사호의 뗏목이 탄생하죠. 제리코 덕분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쇼마르 함장의 징역 3년 형이 전부였다는 말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달달한 이야기가 필요한 기분이지요? 장 프랑수아 밀레와 테오로드 루소의 우정은 우리 마음을 데워주기 충분해 보여요. 가난한 밀레를 돕기 위해 루소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밀레의 작품을 높은 가격으로 사요. 훗날 우연히 루소의 침실에 걸린 자신이 작품을 목격하죠. 아마 저라면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을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밀레에게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루소는 먼저 세상을 떠나버려요. 밀레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루소의 가족을 돌보았고, 말년에는 자신의 화풍이 아닌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루소의 화풍으로 자신의 유작인 을 완성해요.

 

서문에서 저자는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단 한 점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여러분의 인생에 진정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에게 이 이 그런 작품으로 다가왔어요. 언젠가 오르세 미술관에 가게 된다면 저는 이 작품을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만날 것 같아요. 친구 루소와 나란히 묻히길 바란 밀레, 둘의 우정만큼 따뜻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을 볼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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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캐릭터 심리 사전 -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 설정 가이드 문제적 심리 사전
한민.박성미.유지현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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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숙적인 조커, 스파이더맨의 그린 고블린이 편집성 성격장애? 우리 둘째의 배꼽을 빼놓았던(도둑들이 당하는 장면들에서) <나홀로 집에 2>의 비둘기 부인이 과거의 실패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사회로부터 고립된 조현성 성격장애 노숙자의 전형적인 캐릭터? 영화 <에일리언> 감독 한스 기거가 조현형 성격의 소유자?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는 강박성 성격의 표본? 스티븐 호킹의 두 번째 아내 일레인은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저 다 ‘나쁜 악당’, 또는 ‘돌아이’, ‘사이코패스’ 정도로 싸잡아서 평가내리던 영화나 현실 속 범죄자들의 심리와 범죄를 저지르게 된 성격적 특성과 취약성을 엿볼 수 있다.

(문화심리학자, 문화와 심리학을 공부하는 ‘어떤 책방’의 강사, 범죄심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저자가 다양한 성격 유형의 특징과 원인, 그러한 성격 유형이 일으킬 수 있는 범죄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잘 알려진 영화나 책, 실존하는 문제적 캐릭터들의 사례를 담고 있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부디 이 책이 창작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1~3장에서는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믿음이 강한 ‘자기 확신’ A군 성격 스펙트럼, 감정적이며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는 ‘타인 통제’ B군 성격 스펙트럼, 불안을 느끼며 두려워하는 ‘불안 초조’ C군 성격 스펙트럼 등 세 가지 성격 유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9가지 방어기제와 5가지 성숙한 방어기제, 5장은 재미있는 MBTI 성격 스펙트럼, 6장은 문화와 사회적 영향을 받는 정신장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고려하면 좋을 다양한 정보를 알려 주고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보는 실전 파트가 있다.

특정 성격 유형이 나올 때마다 다양한 인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강의실 손잡이를 잡지 못해 학생들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강박적 성격의 이상심리학 교수님, 자기 말은 항상 옳고 정의롭다 생각하며 타인의 의견이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르는 자기애성 성격의 지인, 어떻게든 내 눈을 피해 인사를 회피하려던 회피성 성격의 이전 아랫집 사람, 프로 관종러라는 말이 딱 어울릴 히스테리성 성격의 한 인물.

인사를 하는 내가 도깨비라도 되는 듯 얼른 집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닥하던 옆집 아주머니도 떠오른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는 습관이 있었고 늘 눈을 위로 치켜뜨고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로 사람을 바라봤다. 허구한 날 복도(복도식 아파트)에 나와 펄럭펄럭 큰소리로 이불을 털어댔고 가끔은 이웃과 큰 소리로 싸웠다.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위치에 유모차를 내놓았음에도 거기에 대해 불만스럽게 말하더니 급기야 우리 유모차에 정체불명의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놓아두기까지 했다. 물증은 없었으나 우리의 심증은 너무도 확실했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보내 주신 토마토를 나눠드렸을 때, 마치 뭔가를 받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뭐 토마토 먹을 사람도 없는데···” 띠용~!

사회성이 떨어지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아마도 조현형 성격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그는 옆집 젊은 여자가 자신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유모차를 복도에 내놨고, 먹다 남은 필요 없는 토마토를 자기에게 버렸고, 모든 불쾌한 상황이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심리학적 표현으로 ‘잘 기능하는 사람’, ‘적응적인 사람’도 약간의 성격장애 특성(반사회성, 편집성 성격장애)과 약간의 신경증 특성(불안, 우울장애 등)을 가지고 산다. 완벽히 안정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다양한 방어기제로 나를 보호한다. 이타주의, 억제, 예상, 유머, 승화 등의 성숙한 방어기제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다.

문제적 캐릭터들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장르물을 써보고 싶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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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전
정은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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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엑스맨이 떠올랐다.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선한 무리와 신의 힘을 키워 돌연변이들을 잡아가 연구 대상으로 삼거나 학살한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세상을 장악하려는 악한 무리의 대립과 전쟁을 다룬 영화다. 『국자전』에는 이런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능력자라고 말한다.

특정 영역에서 기이한 뛰어남을 보이면 능력자로 의심받고 검사 대상이 된다. 보통 사람보다 지나치게 빠르거나, 힘이 세거나, 순간 이동을 하는 등 눈에 보이는 능력이 있는 신체 능력자와 염력으로 상대를 조정하거나 미래는 보는 등 능력을 지닌 정신 능력자로 나뉜다. 이들은 다중능력검사를 통과할 경우 기능력직 공무원으로 국가에서 좋은 대우(이 또한 등급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나)를 받지만, 부적합 판정자들은 예비 범죄자나 위험한 존재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나라의 감시를 받게 된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인권적인 제도에 반대하는 부적합 판정자들은 '반동'으로 분류하고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사람들 눈에 부적합 판정자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약속한들 결국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만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점차 학교에서 쫓겨났고, 어른이 된 후에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_p37


우수한 능력에 외모까지 준수한 기능력직 공무원은 사회의 ‘영웅’으로 불리며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타인과 비교해서 어릴 때부터 능력없는 자신을 비관하기도 하고, 전날까지 착하고 영리해서 모든 친구의 관심을 받던 반장이 부적합 판정을 받고 하루아침에 왕따로 전락하는 일도 생긴다. 실제로 ‘반장’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실제로는 신뢰할 수도 없는 검사 결과 하나에 한 아이의 삶이 진흙탕에 내던져지는 그런 사회이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간신히 어른으로 자라난 뒤에도 점점 더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도 그들을 채용하지 않았고, 정부의 극빈자 지원 대상에서도 번번이 제외되었다. 신체 계열 능력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제어할 줄도 몰랐다.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면 즉각 반동으로 몰렸다. 성장이나 감정적 변화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능력이 발현될 때도 있었다. 만일 신고라도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당했다.」 _p67





미지가 세 번째 독립선언을 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음식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하고 먹이고 치우는 일로만 하루를 보내는 무뚜뚝한 엄마 국자와 딸을 과잉보호하는 아빠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지. 국자는 딸의 세 번째 독립선언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뒤늦게 털어놓는다. 국자의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첫사랑 오빠를 한 번에 잃은 날, 국자는 이모의 손에 맡겨진다. 속이 깊고 착한 국자는 번역으로 바쁘고 요리에 젬병인 이모 대신 장도 보고 간식도 만든다. 이모의 아들 은수에게 떡볶이를 해 먹이며 타일러 친구와 화해하게 만든다. 국자는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거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능력자다. 뒤늦게 한 다중능력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게 된 국자는 능력자 훈련원에서 글로리아를 만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희한하게 둘도 없는 단짝이 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마치 작가의 지령을 받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여러 사회 문제들을 폭로한다.

능력자와 비능력자를 불문하고 모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 ‘씨앗’의 단체장과 여당 대표의 대화는 각자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그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매스게임을 생각해봐요. 한 사람이라도 제멋대로 굴면 그림이 영 보기 좋지 않잖습니까?”
“보기 좋은 게 사회입니까?”」 _p76

여당 대표의 말은 제멋대로 구는 한 사람은 없는 게 낫다는 말로 들린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쳐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의 큰일을 결정하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친다. 아직 너무나 젊은 목숨들이 그토록 허무하게 사그라졌는데 잘못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누군가가 떠올라 더 분노가 인다.


국자, 어윤경, 미지와 같이 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존재해서 다행이다. 탄식이 나오는 슬픈 사연들이 많지만, 국자와 글로리아의 우정에 가슴 따뜻했고 국자와 윤수일의 로맨스에 가슴 설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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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 낭만과 상실, 관계의 본질을 향한 신경과학자의 여정
스테파니 카치오포 지음, 김희정 외 옮김 / 생각의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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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신경과학자 스테파니 카치오포가 쓴 이 책은 자연 과학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고 영화처럼 로맨틱하고 감동적이다.(심지어 울면서 읽음) 동화 같은 프랑스령 알프스에 있는 작은 스키마을에서, 동화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이 서로 애틋한 부모님 밑에서 외동으로 자란 어린 저자는 혼자 놀기를 즐겼다. 아웃사이더였지만 관찰자로서 타인들의 사회적 관계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은 왜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는지, 자신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어딘가 소속된 느낌을 주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무한한 사랑을 주던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시자 저자는 할머니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시간 낭비나 인생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이 현재의 생물종으로 존재하는 이유이다. 건강한 인간관계가 건강한 뇌를 형성하며,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인지 기능 저하를 예방하고 창의력을 북돋우며 사고의 속도를 높여 준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사회활동이자 뇌의 잠재적 인지 능력을 완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사랑하는 것이다.」 _p40



사랑이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흥미로운 연구 사례들을 통해 보여 준다. 이름부터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러브 머신’은 긍정적인 감정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고안한 컴퓨터 기반 프로그램이다. 한 여학생이 두 남자 사이에서 헷갈리는 자기 마음을 알고 싶다며 저자의 실험실을 찾아와 러브 머신을 사용해 보고 싶다 한다. 여학생이 마음에 두고 있는 두 남자의 이름을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스크린이 깜빡이는데 학생아 알아차리지도 못할 26밀리초 동안 1번 남자의 이름이 스크린에 등장하고 어휘 검사지를 작성하게 된다. 2번 남자의 이름으로도 같은 방법으로 시행한 뒤 결과를 비교하자 유의미하게 차이가 났다.

후속 실험에서 러브 머신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동시에 그들의 뇌를 fMRI 촬영한 결과는 더 놀랍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열정을 보이는 취미 활동이 프라이밍 된 경우 어휘 검사에서 훨씬 뛰어난 결과를 보인 것이다. 사랑에 의해 강렬하게 활성화된 뇌의 부위는 변연계 뿐만 아니라 외로 양측 방추형 영역과 각회와 같이 보통 마음의 문제와 쉽게 연관 짓지 않는, 뇌에서 이성을 관할하는 영역까지 포함되었다.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랑에 푹 빠져있을 때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평소보다 더 능률적으로 해낼 수 있는 상태로 동기화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반대로 연인과 싸우거나 하고 싶은 것(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취미 등)을 제한당했을 때 일이나 학업에 능률이 떨어질거란 추측도 가능하다. 연인, 부부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삶의 질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이토록 사랑의 힘을 잘 아는 사랑박사인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기간 싱글로 지낸다. 뒤늦게 신경과학계의 스타 존 테렌스 카치오포와 뇌섬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묘사가 신경과학자스러워 웃음이 나온다.


「존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내 뇌의 보상 회로에는 넘쳐흐르는 도파민이 환희의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아드레날린은 내 뺨의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홍조를 띄웠다. 노르에피네프린 수치도 치솟아서 흥분감과 초조한 에너지를 쏟아내어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들고 시간의 흐름을 왜곡하고 있었다.」 _p115


존은 60세, 스테파니는 37세로 나이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둘은 서로에게 너무나 꼭 맞는 짝이었고 결혼을 하고 같은 학교에서 같은 연구실을 쓰며 일과 사랑을 나누던 둘에게 큰 시련이 닥친다. 존의 암 선고.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을 절감시켜준다고 한다. 슬픔에 빠진 모두가 서로의 손을 잡고, 눈빛으로 위로하며, 곁을 지켜주는 사랑의 힘으로 슬픔의 수렁에서 박차고 나올 수 있길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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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로봇 토라 소소담담 키즈 어린이 동화 6
유지영 지음, 신은숙 그림 / 소소담담KIDS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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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아니? 불편한 감정도 15초만 지켜보면 사그라들기 시작한대.」 _p36




2년 터울의 세 아들을 키우며 너무 바쁘고 지칠 때면, “아! 내 몸이 두 개라면!”이라거나 “아~ 분신술이 진짜 있다면!” 등의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하기도 하고 ‘도우미 로봇은 언제쯤 나오나’ 하는 제법 현실 가능성이 있는 상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때 누군가 제게 ‘도우미 로봇’과 ‘공감 로봇 토라’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도우미 로봇’을 선택했겠지요. 하지만 지금 묻는다면 오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전 이미 내 맘을 훤히 다 알아주는 저의 공감 로봇 언니가 있어 토라가 굳이 필요 없지만, 제가 해주지 못하는(제가 여력이 없을 땐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공감과 감정 코칭을 해줄 좋은 친구가 우리 아이들에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거든요.



미국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와 학교에 다니던 미나는 엄마가 일 때문에 미국으로 한동안 가게 되어 할머니가 계신 작은 도시로 이사를 오게 돼요. 전학 간 학교에서 먼저 다가가는 일이 힘든 미나는 가장 먼저 다가와 준 지수와 자연스럽게 친해져요. 지수는 분명 가장 친한 친구인데 미나에게 자꾸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해 미나는 마음이 불편해요. 지수는 분홍색 스팽글이 잔뜩 달린 미나의 파우치와 유치한 꼬마 장난감 같은 자신의 당근 파우치를 하루만 바꾸자는 부탁을 하죠. 그것도 썩 내키는 일은 아닌데 미나의 머리띠를 굳이 만져보고 싶다더니 부러뜨려요. 그날 엄마가 보낸 선물이 도착하는데 바로 ‘공감 로봇 토라’예요. 연구가 중단된 ‘인공지능 공감 대화 서비스 로봇 토라’를 엄마가 함께 일하는 장 박사님이 선물해주셨다고 말동무가 되어 줄 거라고 엄마는 말해요.



토라는 공감 로봇 답게 할머니 때문에 속상한 미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나쁜 감정이 사그라드는 경험을 하게 돼요.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을 살펴보는 연습을 하면서 불편했던 마음이 풀어지게 된답니다. 이제 지수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미나에겐 고민이에요.



처음에 우리 집 첫째와 둘째는(둘째에게 읽어줬는데 멀리서 듣던 첫째도 와서 귀를 쫑긋거리더라고요 ^^) 지수의 말과 행동에 몹시 어이없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어요. 지수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고 예상을 하면서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무례하고 배려심 없고 막무가내인 언행들이 정말 보기 싫었거든요. 마나는 지수 때문에 굉장히 화가 났지만 토라의 말을 떠올리며 화를 참고 지수의 감정을 먼저 공감해 주고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상황이 쉽게 좋아지지 않아요.



악의 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스타일이 있죠. 지수는 그런 아이예요. 남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으니 다른 아이들과도 늘 금방 싸우고 사이가 틀어지기 일쑤였어요. 그런 지수에게 미나는 굉장히 소중한 친구였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하니 둘은 자꾸만 어긋나요. 그리고 미나는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영이와 있는 것이 편하고 좋은 기분이 들지요.



이 책은 관계에 서툰 아이들, 본심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들, 부정적인 감정을 꾹꾹 눌러 참기만 하는 아이들, 그리고 모든 아이에게 공감하는 방법과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 그리고 진정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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