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전
정은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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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엑스맨이 떠올랐다.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선한 무리와 신의 힘을 키워 돌연변이들을 잡아가 연구 대상으로 삼거나 학살한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세상을 장악하려는 악한 무리의 대립과 전쟁을 다룬 영화다. 『국자전』에는 이런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능력자라고 말한다.

특정 영역에서 기이한 뛰어남을 보이면 능력자로 의심받고 검사 대상이 된다. 보통 사람보다 지나치게 빠르거나, 힘이 세거나, 순간 이동을 하는 등 눈에 보이는 능력이 있는 신체 능력자와 염력으로 상대를 조정하거나 미래는 보는 등 능력을 지닌 정신 능력자로 나뉜다. 이들은 다중능력검사를 통과할 경우 기능력직 공무원으로 국가에서 좋은 대우(이 또한 등급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나)를 받지만, 부적합 판정자들은 예비 범죄자나 위험한 존재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나라의 감시를 받게 된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인권적인 제도에 반대하는 부적합 판정자들은 '반동'으로 분류하고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사람들 눈에 부적합 판정자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약속한들 결국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만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점차 학교에서 쫓겨났고, 어른이 된 후에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_p37


우수한 능력에 외모까지 준수한 기능력직 공무원은 사회의 ‘영웅’으로 불리며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타인과 비교해서 어릴 때부터 능력없는 자신을 비관하기도 하고, 전날까지 착하고 영리해서 모든 친구의 관심을 받던 반장이 부적합 판정을 받고 하루아침에 왕따로 전락하는 일도 생긴다. 실제로 ‘반장’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실제로는 신뢰할 수도 없는 검사 결과 하나에 한 아이의 삶이 진흙탕에 내던져지는 그런 사회이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간신히 어른으로 자라난 뒤에도 점점 더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도 그들을 채용하지 않았고, 정부의 극빈자 지원 대상에서도 번번이 제외되었다. 신체 계열 능력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제어할 줄도 몰랐다.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면 즉각 반동으로 몰렸다. 성장이나 감정적 변화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능력이 발현될 때도 있었다. 만일 신고라도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당했다.」 _p67





미지가 세 번째 독립선언을 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음식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하고 먹이고 치우는 일로만 하루를 보내는 무뚜뚝한 엄마 국자와 딸을 과잉보호하는 아빠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지. 국자는 딸의 세 번째 독립선언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뒤늦게 털어놓는다. 국자의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첫사랑 오빠를 한 번에 잃은 날, 국자는 이모의 손에 맡겨진다. 속이 깊고 착한 국자는 번역으로 바쁘고 요리에 젬병인 이모 대신 장도 보고 간식도 만든다. 이모의 아들 은수에게 떡볶이를 해 먹이며 타일러 친구와 화해하게 만든다. 국자는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거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능력자다. 뒤늦게 한 다중능력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게 된 국자는 능력자 훈련원에서 글로리아를 만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희한하게 둘도 없는 단짝이 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마치 작가의 지령을 받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여러 사회 문제들을 폭로한다.

능력자와 비능력자를 불문하고 모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 ‘씨앗’의 단체장과 여당 대표의 대화는 각자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그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매스게임을 생각해봐요. 한 사람이라도 제멋대로 굴면 그림이 영 보기 좋지 않잖습니까?”
“보기 좋은 게 사회입니까?”」 _p76

여당 대표의 말은 제멋대로 구는 한 사람은 없는 게 낫다는 말로 들린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쳐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의 큰일을 결정하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친다. 아직 너무나 젊은 목숨들이 그토록 허무하게 사그라졌는데 잘못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누군가가 떠올라 더 분노가 인다.


국자, 어윤경, 미지와 같이 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존재해서 다행이다. 탄식이 나오는 슬픈 사연들이 많지만, 국자와 글로리아의 우정에 가슴 따뜻했고 국자와 윤수일의 로맨스에 가슴 설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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