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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ㅣ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평점 :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부르듯, 잘 살아온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불러온다」 _레오나르도 다빈치
책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을 아시나요? 프레데릭 바지유의 「가족모임」이란 작품의 일부랍니다. 그림은 물론이고 화가의 이름도 저에게는 생소한데요. 경보가 자주 울리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진짜 화재 경보가 울리면 가장 먼저 대피시킬 것이라 말할 정도로 높이 평가하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나, 「모나리자」만큼이나 꼭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감상하길 바란다는 「성 안나와 성모자」와 같은 작품이 아니고 굳이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는데요. 아마도 안타까운 운명의 화가 장 프레데릭 바지유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모네, 피가로 등 인상파 동료들에게 준 심적·물적 지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바지유의 또 다른 작품 「마을 풍경」이 표지 그림이었더라도 좋았을 것 같네요.
저자는 2년여간 바티칸 박물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했고, 6년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로 활약했으며 연평균 400회 이상 강의를 진행하는 미술사 강사로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럽 미술사를 알기 쉽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미깡(미술 깡패) 도슨트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이래요. 그래서인지 다른 책에서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고 작품에 대한 해석의 깊이가 남다르다 느껴집니다. 약방의 감초처럼 미술 관련 책에서 빠지지 않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가 빠진 점도 신선한 느낌이 드네요.
특히, 영국의 개그맨이자 방송인이 조나단 루스에 의해 출간되었던 다빈치가 ‘세 마리 개구리 깃발’이라는 레스토랑의 요리사였다는 내용의 책은 만우절을 기해 기획된 허구의 책이라고 밝혔음에도 한 음식 전문 출판사에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삭제하고 재출간했으며, 그 책이 전 세계로 번역 출간되어 20년 동안 사실인 양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인데요. 상업적 이득을 위해 전 세계인을 기만한 이 출판사가 어떤 처분도 받지 않았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저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시작으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으로 우리를 차례차례 안내하면서 작품과 화가, 조각가, 그 작품의 역사적 배경들을 우리가 잘 소화할 수 있게 딱 알맞은 양과 맛으로 적절히 버무려 천천히 즐기게 해준답니다. 가끔 쓴맛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매운맛에 마음에 불이 나기도 하지만 다양한 맛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족감을 주는 책이에요.
쓴맛과 매운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 이야기는 그림만큼이나 충격적이에요. 프랑스는 새롭게 식민지가 된 세네갈을 개척하기 위해 파견된 메두사호, 선장 경험은 물론 항해 경험도 전무한 쇼마레 장군은 메두사호의 베테랑 선원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빠른 길로 가려다가 좌초돼요. 함장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안전한 구명선에 오르고 남은 150명의 일반 시민과 노예들은 돛과 갑판의 나무판자를 뜯어내어 20미터 정도의 임시 뗏목을 만들어 타죠. 쇼마레는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고 육지에 도착해서도 구조선을 보내지 않아요. 자신들이 만행을 숨기려고요. 뗏목에 있던 이들은 파도에 휩쓸려 가고, 남은 식량을 자치하기 위해 유혈사태가 벌어져 60여 명이 살해당하고, 결국은 인육을 먹으며 버티던 15명은 13일 만에 발견되지만 결국 단 3명만 생존해요.
제리코는 이 끔찍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림을 그려요. 실제 시체를 구해와 부패 과정을 그려보고 생존자와 인터뷰, 뗏목을 직접 제작해보는 등의 노력 끝에 「메두사호의 뗏목」이 탄생하죠. 제리코 덕분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쇼마르 함장의 징역 3년 형이 전부였다는 말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달달한 이야기가 필요한 기분이지요? 장 프랑수아 밀레와 테오로드 루소의 우정은 우리 마음을 데워주기 충분해 보여요. 가난한 밀레를 돕기 위해 루소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밀레의 작품을 높은 가격으로 사요. 훗날 우연히 루소의 침실에 걸린 자신이 작품을 목격하죠. 아마 저라면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을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밀레에게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루소는 먼저 세상을 떠나버려요. 밀레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루소의 가족을 돌보았고, 말년에는 자신의 화풍이 아닌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루소의 화풍으로 자신의 유작인 「봄」을 완성해요.
서문에서 저자는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단 한 점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여러분의 인생에 진정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에게 이 「봄」이 그런 작품으로 다가왔어요. 언젠가 오르세 미술관에 가게 된다면 저는 이 작품을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만날 것 같아요. 친구 루소와 나란히 묻히길 바란 밀레, 둘의 우정만큼 따뜻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봄」을 볼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