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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평점 :
미술관에서 <상록타워>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 광장동 아파트 ‘상록타워’에 살고 있는 가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서른두 가구의 가족사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요즘, 집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안바다의 에세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집안 곳곳을 천천히 음미하듯 여행하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입니다. 휴가를 떠나기 위해서 매번 집을 나섰던 경험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까지.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집을 제대로 여행해 본 일이 있었을까요. 책을 덮고 나니 현관에서부터 거실, 의자, 침대, 전등, 화장실, 주방, 창고, 서재, 거울, 냉장고, 발코니까지의 이야기가 가슴 시리도록 아리게 느껴지네요. 낯선 여행지에서의 숙소는 감탄을 연발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 우리 집의 구석구석은 돌보지 않았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책 속에서 현관을 ‘공항’이라고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종의 입국 심사대와 같은 공간인 현관. 매일 현관을 출입하면서 옷 매무새를 단장하거나 어떤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할까, 혹시 집에 두고 온 것은 없나? 와 같은 고민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항이 설렘, 슬픔, 기쁨, 아쉬움, 후회 등이 교차하는 공간처럼 현관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싸움 후 떠나려고 하는 아내가 잠시 머물렀던 현관, 아내를 안아주며 다시 돌아오게 되었던 현관이 저자에게 의미깊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웅웅거리며 소리를 내는 ‘냉장고’에게 시를 선물한 것을 보며 물성에도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밤마다 냉장고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를 ‘안아달라고’하는 것 같았다는 표현, 할머니의 죽음과 냉장고를 비교하는 표현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매일 작동되고 있는 가전제품 중 하나가 냉장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품고 열심히 작동하고 있지만 아무도 냉장고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요. 고장이 날 때가 되면 그제서야 돌봐주게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냉장고에 대한 이야기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책에는 현관에서 발코니까지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동안 집과 관련된 명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장을 넘기면 그 작품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들이 나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각, 분위기를 묘사함에 있어 예리한 관찰들이 돋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집에 있는 곳곳을 의미있게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만의 작은 공항(집)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