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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할머니 - 25세 손녀가 그린 89세 할머니의 시간
정숙진.윤여준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평점 :
늙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또 우리의 끝에는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있기에 노년이 두렵지 않다. 인생이란 기다림 속에서 사랑하고 소망하며 사는 것이니.
-p. 6
토요일 이른 아침에 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며칠 동안 버스 막차 타고 겨우 들어갔던 지라, 외조부님과 외조모님께서 와계신데도 불구하고 인사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 했다. 그날도 불 꺼진 방 앞에서 고개만 까닥, 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버스에서 책을 펼쳐들고는 89세 할머니가 손수 쓰신 서문을 읽다가 왈칵, 울음이 터졌다.
담담하게 이 책에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책의 할머니는 참 세련된 사람이었다. 연희 학교에서 수학한 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한때는 미국 유학의 꿈에 부풀었던. 해마다 어엿쁜 한복을 지어 입던 멋쟁이 아가씨의 모습이 연상된다. 지금은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시절에 태어나 젊은 시절 6.25를 경험하고, 《국제시장》의 풍경에 공감하는 세대의 할머니.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구나.
-p. 253
손녀와 주고받은 말 한 꼭지, 꼭지가 하나의 짧은 글이 되고,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작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타인인 나에게도 멀면서도 가깝게 와 닿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고받았던 편지(원문 사진과 함께 옮겨놓은 글이 게재되어 있음)와 그 이야기가 모두 그림으로 녹아든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도 좋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손녀가 참 대단하다. 연필로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 한 장 한 장 덕분에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도 더 쉽고, 구성이 좀 더 풍부해졌다고나 할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손녀 분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 할무니께 좀 더 잘 하고!
그런 것을 볼 때면 내가 그래도 잘 살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함께 드라이브 나가줄 할아버지 계시지, 남편에게 하루에 세 끼는 차려줄 수 있는 건강도 있지, 우리 자녀들, 손주들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이보다 행복한 게 어디 있을까.
지금 이 순간, 89세의 하루하루가 가장 행복하다.
-p.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