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이용약관
케이시 지음 / 플랜비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내 마음 이용약관》이라는 책 제목을 보면 자기계발서 같고, 모스부호가 섞인 제목보다 위에 있는 글들을 보면 에세이 같다. 과연 이 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책이 썩 예쁘지*가 않았다. (* 글자체, 자간과 경간 등의 간격이 어우러진 비율이 예쁜 책)

그래서였을까. 답지 않게, 책을 읽으면서 묘하게 불편했다. 절반 정도 읽다가 책을 덮었는데, 두껍지도 않은 이 얇은 책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지하철에서 다시 책을 펼쳤다. 비문인가, 싶은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 날것의 정돈되지 않은 글의 느낌에 가까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거리낌이 있었다. 왜 이런 글이 불편할까, 를 다시 생각해 봤는데, 요즘 양산되어 나오는 출판사에서 보기좋고 먹기좋게 예쁘게* 다듬어져 나온 글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서였던 듯. (* 글쓴이가 쓴 것 같지 않고, 편집자느님의 손에서 완벽하게 다시 재탄생한)

그래서 책 제목이나 레이아웃을 조금 흘겨보면서 (취향에 안맞았다.) 흐름대로 글을 차분히 읽었더니, 의외로 재미있게 잘 쓴 글이 아닌가? 특유의 개그코드는 내 취향이었고, 현재를 덤덤히 살아내는 모습은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래간만에 만난 공감 포인트가 높은 글이었다. 물론, 책을 정말 예쁘게 만드는 출판사를 만났으면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꾸며진 모습보다는 완성되지 않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매력적인 글이 아닌가 싶다.

시간은 나를 지극한 현실주의자로 만들었다. 하루살이의 내년 짝짓기 계획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세월이었다. 영원이라는 환시를 걷었다. 영원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 영원하지 않다는 다큐는 나를 담백하게 만들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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