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8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최근 한국인에게 가장 호의적인 일본 소도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 마쓰야마입니다. 한국인만을 위한 무료 공항 셔틀 버스부터, 주요 관광지를 볼 수 있는 무료 티켓 등을 제공하며 한국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도 일본 소도시가 궁금해 마쓰야마를 방문해 보았는데요. 그곳에서 온 도시를 가득 메운 봇찬이란 단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열차의 이름도 봇찬 열차이고, 시계탑의 이름도 봇찬 카라쿠리 시계탑이었습니다. 야구장의 이름가지 봇찬 스타디움이었습니다. 도대체 봇찬이 뭔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일본의 유명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배경이 마쓰야마라서 도련님을 뜻하는 봇찬을 온갖 곳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도련님은 일본의 고전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선택되는 대표 일본 소설입니다. 이번에 성림원북스에서 감각적인 표지를 입고 도련님의 한국어판이 출간하였습니다. 표지에 바로 그 유명한 봇찬 열차가 그려져 있네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인간 실격, 사양 등 일본의 고전을 전문적으로 번역해오신 장하나 번역가님께서 작업을 맡아 탁월한 번역을 보여주십니다. 일본 고전 소설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성림원북스의 도련님은 단연 첫번째 선택이 되어줄 것입니다.
도련님은 참 희한한 작품입니다. 처음 작품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게 어떤 의미에서 소설로 기능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갈등이 폭발한다던가, 그 갈등이 해결되며 주인공이 성장하는 전형적인 소설의 구조가 없고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일본 청년의 시골 생활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을 단순히 백 년 전 일본의 청년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도련님은 낯선 환경에 들어가 불편한 상황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됩니다. 조금은 부당한 경우를 지켜봐야 하기도 하고, 대놓고 무시를 받고 배척되기도 합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저라면 아마 환경에 최대한 순응했을 것입니다. 굳이 눈밖에 날 필요가 없고, 기존의 질서를 깨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아닌 백 년 전, 더군다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의 분위기에서 도련님은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의 길을 갑니다.
조직 문화에 순응할 것인가, 대항할 것인가 하는 것은 2025년을 살고 있는 우리 청년들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도련님은 자신의 주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합니다. 이것이 소설 속 내용으로 보면 큰 위기로 보이지 않지만, 내 삶과 직장에 대입해보면 그야말로 내 가치관을 놓고 싸움을 별여야 할 정도로 고민이 될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도련님은 만나는 등장인물을 모두 별명이나 직함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유독 책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요만큼은 이름으로 부르고 기억합니다. 도련님은 부모를 잃었고 사회에서도 딱히 대접을 받을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요는 여전히 도련님을 도련님으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책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요는 주인공에게 도련님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인물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큰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보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것은 정체성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백 년 전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너도나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회 생활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따라 행동해야 할까요?
세상과 정직, 정체성과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일본 고전 도련님을 통해 혼란한 내일을 살아낼 나만의 가치관을 발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성림원북스의 수려한 번역을 통해 가장 원어와 가까운 나쓰미 소세키의 맛을 느껴 보세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을 통해 재미와 의미 모두를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