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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
류정인 지음 / 라브리끄 / 2024년 1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고, 서점가에는 수많은 우울증 관련 서적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들의 수기는 그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 참 고마운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때로는 공감으로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드는 가르침으로 저자와 독자가 함께 그 길을 걸어 나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최근 출간된 우울증 에세이 중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움직인 책이 있습니다. 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 이라는 귀여운 제목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영수증은 무엇을 말하는 거지? 병원 영수증을 말하는 건가? 호기심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책은 첫 번째 장부터 엄청난 공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저자는 자신의 방을 다양한 쇼핑 물품으로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8년간 구입한 물건들은 어느새 방안을 빼곡히 채웠습니다. 저자는 이 상황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분석합니다. 실제 쓸모가 있어 구입한다기보단 구매하는 그 순간에 가장 찬란히 빛나고 반짝이다 내 방에 들어오면 그 빛을 잃어버린다고요.
저자는 무채색의 마음을 덧칠하고 싶었는지 형형색색의 물건들로 방을 꾸밉니다. 불필요하다고도, 딱히 필요하다고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은 계속해서 쌓여만 갑니다. 저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물건만이 아닙니다. 저자는 책도 엄청나게 수집해 갑니다. 책장에는 읽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는 읽을 것만 같은 책들이 계속해서 채워집니다. 화장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화장품을 하나씩 구입해갔습니다. 그렇게 저자의 방은 얼룩덜룩해지고, 저자에게 남는 건 실제 물건보단 영수증 그 자체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정확히 내 삶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을 청구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간 필요해질 물건이 저렴한 가격에 등장하면 꼭 사고야 맙니다. 지금 바로 읽을 것은 아니지만, 언젠간 읽게 될 책을 바로 구입해 책장에 채워 둡니다. 옷도 화장품도 언젠간 입고 사용할 것이기에 구입합니다.
이런 행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우울증이라는 녀석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은 무기력을 동반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삶은 기본적으로 생산성을 잃게 됩니다.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이 없는 삶은 무기력을 더 강화하게 되고 환자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집니다.
더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찾아 구매하는 그 순간에는 내가 꽤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무언가 이윤이 남는 생산적인 활동을 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읽을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구입해 언젠가 읽게 되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옷도 화장품도 결국 지금보다 더 괜찮은 나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는요.
결국 쇼핑은 막막한 현재를 회피하게 하고 내 모든 선택과 관심을 미래로 도망치게 하는 아주 나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영수증을 청구합니다. 가격이 붙은, 그리고 시간과 기회의 가치까지 추가된 얼룩덜룩한 영수증을 들이밉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우울증의 과정과 그 순간의 심리를 가장 솔직한 언어로 진솔하게 전해 줍니다. 나와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이지만, 저자의 삶을 읽으며 매우 큰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장소와 모습은 달라도 이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저자는 결국 자신의 우울증을 하나씩 이해해 가며 택배 상자가 아닌 우울증을 언박싱해 갑니다. 감춰두고 뒤로 미루기만 하던 현실은 조금씩 손에 잡히고, 막연했던 감정은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저자는 목표한 일을 시도해 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들여다보여 주는 참 좋은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용기를 배워보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이에게 이 책, 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