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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피엔딩
김태호 지음 / 타래 / 2025년 5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가정 폭력은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가장 안정적이어야할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영혼은 보이지 않는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가정 폭력의 상흔은 어린 시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가정 폭력 피해자를 괴롭히는 말이 있습니다.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도 나중에 알콜 중독자 된다, 딸들은 커서 아빠같은 사람과 결혼한다 같은 말들이요. 가정 폭력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간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결혼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마음마저 듭니다.
그런데 여기 가정 폭력을 딛고 일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가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세상 가장 예쁜 두 딸, 아내와 자신이 꿈꾸던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가장, 김태호 작가는 자신의 첫 책 새피엔딩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가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저자는 성장 내내 아버지를 지우고 싶었습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있는 사람, 폭력적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모든 메모리를 뒤져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고지혈증, 당뇨, 고혈압, 알츠하이머 진단에 폐암까지 아버지가 겪은 고통은 모두 아버지 자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술과 담배, 불규칙한 제멋대로의 삶, 자신이 뿌린 씨를 자신이 거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자신이 뿌리지 않은 씨로 인해 고통받아야 할까요?
늙고 병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는 자식의 마음은 애증입니다. 병든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저자는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미워하는 마음밖에 없다고요.
마음이 다친 아이는 다친채로 평생을 살진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고, 세상 가장 귀한 두 딸을 얻었습니다. "평범한 아버지"라는 어려운 꿈도 이루어 가게 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입니다. 그 아이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부모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보며 저자는 자신 안의 닫힌 세계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계를 엽니다. 누군가의 우주가 되고, 누군가의 전부가 되며 과거의 아이를 위로합니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저자가 아버지가 되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며 끝이 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끝까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 앞에 새롭게 열린 세계를 살며 문득 과거의 세계를 떠올릴 뿐입니다.
저자의 글빨이 좋아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에세이입니다. 그 때 그 순간 저자의 감정이 어땠을 지, 그것이 지금의 저자에게 어떤 상처로 남아있는지 너무도 깊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책 속 아이를 위로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렸습니다.
가정 폭력으로 괴로운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 과거 때문에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는 분들, 아직도 기억 속에 갇혀 계신 모든 분들께 이 책, 새피엔딩을 추천해 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에세이는 한 영혼이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그토록 어려운 평범함을 성취한 아이의 여정을 바라보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위로와 기대감이 더해지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