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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 - 언젠가 저 길을 가보리라!
이지상 지음 / 북하우스 / 2003년 2월
평점 :
《여행歌》
이지상 지음 _ 북하우스

이 책은 '여행'을 테마로 한 그의 자서전 같은 책이다.
제목이 표지에 큼지막하게 쓰여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읽고서야 제목이 '여행家'가 아닌 '여행歌'임을 깨달았다. 비록 잘못 본 제목이었지만, 책은 동음이의어인 이 두 단어의 미묘함을 모두 갖고 있었다.
<여행가>는 애환의 노래, '아리랑' 의 개인버전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노래도 떠올랐다.
그것은 재일교포 출신의 블루스 가수 아라이 에이이치(新井英一)의 <청하의 길>이란 앨범의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은 재일 교포로서 아라이 자신의 '뿌리 찾기의 실화'를 엮은 것들이다.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현실의 삶 속에서 오는 공허함의 근원을 찾아 떠난 작가와 아라이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단지 작가는 '자유' 라는 분자를, 아라이는 '고향' 이란 분자를 업고 길을 떠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행가>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작가의 유년시절은 마치 ' 떠날 수 밖에 운명 ' 이란 앞으로의 삶의 복선인 듯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던 아찔하지만 싱싱한 풋내 나던 청소년기, 시대의 경계인으로서 방황하던 청년기의 이야기들 또한 그가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까지 다니던 그가 보장된 안락함을 던져 버리고, 기꺼이 'flying bee'가 되어 버린 이유는 뭘까. 그 이유야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자라며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실 누구든 가둬 놓은 적은 없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갈 뿐이다. 노예로 깨어 난 좀비처럼 끝없이 삶에 복종하며, 이유 모를 갈증에 허덕이다 삶에 별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 채 가버린다는 자체가 감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느낀다고 쉽게 그것을 박차고 뛰쳐 나올 용기도 없다.
'자유'를 손에 쥔 동시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작가와 같은 '자유인'은 참으로 용기있는 자들이다.
난 그런 용기가 부러워 요즘들어 손에서 '여행기'를 놓치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자유'는 분명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힘이 있다.
작가가 떠나기 전에 바다에 놓아 주었던 거북이, 호프만처럼 말이다.
(거의 다 죽어가던 거북이가 바다를 만나자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 났다.)
그래서 '자유'라는 단어만 들어도 흥분되고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은 아닐까.

물론 '여행'이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지도, 꿈꾸던 로망의 실현일 수도 없다.
세상과 완전히 '바이, 바이' 하기 전까지는 현실과 철저히 담을 쌓고 죽림칠현처럼 살 수도 없다.
이래서 이상과 현실은 서로 삐거덕거린다.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권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흥분, 첫 여행에서의 환희 그리고 그런 것들이 가시고 난 뒤 찾아 온 문제와 고민들이 알알이 막혀 있다.
여행에 대한 몽환적 환상을 심어 주는 책은 많다.
하지만 길 위에서 던지는 화두 같은 질문에 고민케 하는 책은 드물다.
작가의 고민은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진행형의 고뇌를 안고 사는 인간의 노래인 이 여행歌 위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어지럽게 몇 자씩 느낌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