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야나
C. 라자고파라차리 지음, 허정 옮김 / 한얼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인도 최고의 시di-kvya'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라마야나>는 7편, 2만 4000시절(詩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하바라타>와 더불어 세계 최장편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 작품의 저자는 BC 3세기 경의 시인 발미키(Vlmki)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그는 수세기 동안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글로써 엮은 편자(編者)이다. 이 작품의 성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BC 11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오늘날 전해지는 모습을 갖춘 것은 BC 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때 전 7편 중 제1편과 제7편이 첨가되었다고 전해진다.

 

인도인들의 정서적, 종교적 생활에 토양과도 같다는 이 책은 얼핏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빠진 이야기들, 아시아인들의 보편적 정서 같은 것이 <라마야나>에는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더 쉽게 받아 들여 졌는지 모른다. 올림푸스의 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때론 인간보다 더 치졸하고 욕정에 쉽게 휩싸이는 그들을 보곤 기가 찼다. 

 

이번에 읽게 된 <라마야나>는 인도의 저명한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였으며, 마하트마 간디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C. 라자지(본명 : 차크라바르티 라자고 파라차리)가 새롭게 창작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라마야나>의 수많은 판본 가운데 '소박한 문체, 독창성, 긴장감을 잃지 않은 표현력에 있어서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구지 이러한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라마야나>의 대표적인 판본으로 일컫어지는 발미키와 캄반의 <라마야나>를 비교해가며 이야기를 풀어 가는 C.라자지의 <라마야나>는 쉽고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이다. 그가 이처럼 <라마야나>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쓴 데에는 인도의 문화가 고스란히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기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한 민족의 문화는 아이들에 의해 이어져 나간다. 그리고 이처럼 민족의 태반이 되는 그 이야기들은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전해져 그들의 무의식 깊이 뿌리내리고 그렇게 다음 세대의 피 속으로 이어진다.

 

                                            

산스크리스트어로 <라마야나>는 '라마가 걸어간 길'을 뜻한다. <라마야나>는 힌두교 3대 신(神) 중의 한 명인 비슈누(섭리의 신)신의 아바타(화신)인 라마의 이야기이다. 라마는 코살라 왕국의 제왕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다사라타 왕의 부당한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이복 동생 바라타에게 왕위를 넘겨 주고 그의 아내, 시타와 또다른 이복동생 략슈라마와 함께 14년간 변방의 숲 속으로 추방당한다. 라마는 아버지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모두가 그것을 바랬고 그의 아버지, 다사라타왕조차도 어쩔 수 없이 내리게 된 자신의 명령에 라마가 그렇게 하기를 바랬지만, 라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이것은 옳은 부모의 말씀조차도 한낱 비웃음으로 무시해버리는 요즘 세태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어떨결에 왕위를 물려 받게 된 바라타 역시 자신의 자리가 아님을 말하며 라마에게 그의 자리였던 코살라 유바라자(왕세자)가 되기를 간구하며 숲 속의 라마를  찾아 간다. 힘든 추방 생활에서 파수꾼을 자처하며 함께 떠난 략슈라마나 부당한 권력을 사양할 줄 아는 겸양을 지닌 바라타의 행동은 형제간의 우의나 신의를 생각케 한다. 고행자들은 괴롭히던 략샤사(마귀, 악마)들을 처치하며 숲 속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라마 일행은 13년 째 되던 해 커다란 시련을 맞게 된다. 란카(스리랑카)의 마왕 라바나(Ravana)에게 아내 시타(Seetha)가 납치된 것이다. 라마(Rama)는 시타를 구하기 위해 원숭이들의 왕 수그리바와 동맹을 맺고 특히 수그리바의 원숭이 장군 '하누만'의 큰 도움으로  마왕 라바나를 무찌른다. 마침내 라마는 온갖 고초 끝에 시타를 구한다. 한마디로 <라마야나>는 신들까지도 벌벌 떨게 하던 마귀의 제왕 라바나를 무찌르기 위해 비슈누 신이 여섯번째 아바타(화신)으로 환생한 인간 라마가 라바나를 처치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스릴넘치게 적은 대서사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라마야나> 속 라마의 일생과 행적을 좇아가다 보면, 언제부터이고 우리게게 잊혀져 버린 君臣之義, 부자 간 지켜야 할 도리, 형제간의 우의, 부부 간의 애정과 정절, 善惡 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의무이자 힌두교의 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르마(Dharma)를 깨우치기에 최고의 교과서이다. 이 다르마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책무'이다.

 

일설에 의하면 <라마야나>를 읽거나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죄와 슬픔으로부터 구제된다고 한다. 특히 어떤 재난을 피하고 싶거나 어떤 일의 성공을 기원할 때 인도인들은 '하누만'이 란카에서 겪은 탐혐을 다룬 시편인 <순다라 칸다>를 읽는다고 한다. 하누만이 란카에서 되돌아 올 때까지 발생한 모든 것을 적은 이 장을 읽으면 하누만이 성공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냐며 피식거릴 수도 있지만. 기적이란 그것을 믿는 자에게 일어나는 법이니 <라마야나>의 부적 같은 효험을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그런 인도인들의 소박한 믿음이 되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소박한 믿음은 단순한 흥미꺼리가 아닌 종교적 단계까지 심화 되었다고 하니 <라마야나>의 영향력은 가히 놀랄 만 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예수에게도 인간적 고뇌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라마 또한 화신이었으나 <라마야나> 곳곳에 인간적인 고뇌가 눈에 띤다. 그들이 더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신이지만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면서 그 인간적 고뇌가 최고조에 달했고, 라마는 라바나로부터 시타를 구하고 그녀와 마주하면서 인간적인 회의를 품었다. 혹시나 라바나에게 잡혀 있는 동안 정절을 잃지 않았는지...라마를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온갖 고행과 유혹을 견뎌왔던 시타에게 라마의 그와 같은 행동은 더없는 모욕이었으리라. 시타의 자신의 결백을 중명하기위해 급기야 훨훨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다. 보통 이즈음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오해를 뉘우치며 아내의 옷깃을 잡아야 마땅하지만 라마는 끝내 묵묵부답이다. 라마의 회의의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광경을 보다 못한 천상의 신들이 내려와 시타를 장작더미에서 구해내며 라마가 비슈누신의 화신이며 시타는 락슈미 여신(복락의 여신, 비뉴수의 부인)의 화신임을 알려 준다. 그 뒷이야기는 대충 그렇고 그런 해피엔딩이다.  

 

라마는 다르마(Dharma : 종교의 가르침, 법, 정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의 모델로서 신성과 천국을 얻는 방법을 보여준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인도인들은 이런 그를 경애한다. 전설 속의 인물이 아닌 인도인들의 생활 속 깊이 들어 앉은 라마, 그래서인지 인도인들은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쳐 줄 때, '라무 라무' 라고 가르쳐 준다고 한다.

 

<라마야나>의 그 방대한 이야기를 딱 두 단어로 추려내라면, 바로 '다르마'와 '사랑' 이리라. 이 보편적 진리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보통의 인간에게도 있다는 신성(神性)이 자주 드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한 신성이 드러난다고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동물처럼 본능대로만 살아 가려는 사람들이 점점 들어가는 세상에 이것은 효과적인 하나의 예방약이자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라지푸트회화...

16∼19세기 전반에 걸쳐 북서인도에서 라지푸트 여러 왕후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회화.

비슈누신 신앙과 깊이 연관되어 발달한 서민적인 종교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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