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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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 31, <헨리 제임스> 편에는 총 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총 112편에 달하는 단편 중에서 1870년대와 1880년대 초기와 중기, 1890년대 실험기, 1900년대 후반 완성기의 대표작을 선정하였다. <네 번의 만남>과 <데이지 밀러>가 초기작이며, 1890년부터 1900년까지 10년 동안을 그의 실험기라 칭하는데 <제자> <실제와 똑같은 것> <중년> <양탄자의 무늬> <나사의 회전>과 같은 뛰어난 단편을 발표했다. 마지막 수록작 <정글의 짐승>은 후기 단편으로써 가장 잘 쓰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모더니즘 기법이 뚜렷한 단편으로 손꼽힌다. 이 중 <데이지 밀러>와 <나사의 회전>은 중편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며, 각 시기별로 소설의 주제가 변화했음을  엿볼 수 있다. 초기 두 작품은 유럽과 미국이라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충돌, 갈등, 차이를 그렸다면 실험기 거치면서는 인간 본성에 관한 심리, 철학적 담론 그리고 예술과 문학에 관한 눈으로 볼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물음과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독창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또한, 죽음과 생계고(苦)라는 가난 앞에 놓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9세기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각 수록작들 모두 모던하며 현대적이다. 특히, 심리적이면서 철학적인 소재는 물론 미스터리 한 심령 소재를 끌어 들어 언어로 구현하며 현대 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지녔다. 이런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적인 즐거움, 심도 깊은 주제의 심오함은 깊은 여운을 주며 저절로 문장에 줄을 긋게 만든다. 이 세상에 쓸 수 없는 소설은 없다는 것, 아무리 비슷한 이야기도 새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증명했다. 그 어떤 설명적 논조 없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아름답게 묘사했다.


초기작 <네 번의 만남>과 <데이지 밀러>는 당시 미국 여성을 통해 구대륙과 신대륙의 문화적, 계급적 차이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특히 주인공 데이지 밀러는 지금의 미국 여성상을 상징하는 원형적 인물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동명 여주인공이기도 한 이 여성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자유롭고 격식과 예의에 구속되기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유럽의 여성과는 구별되는 생생한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주인공은 이를 열심히 '공부'하는데 열성을 다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단편은 <실제와 똑같은 것>과 <중년> <양탄자의 무늬>이다. 세 작품은 예술과 문학, 그리고 인생에 대한 작가의 고뇌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실제와 똑같은 것>은 초상 화가이며 삽화가인 주인공을 찾은 한 부부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당연히 초상화를 의뢰한 고객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 멋진 신사 숙녀 커플은 자신들을 삽화 모델로 써달라고 절박하게 부탁한다. 가난하지만 예술적이기까지 한 이 부부의 궁핍한 사정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화가는 시험 삼아 모델로 그려보는데, 완벽한 모델이라 자부하는 이들에게 재현의 여백이 없음을 깨닫고 곤란에 빠진다. 부부와 기존 모델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과 차이를 통해 창작의 비밀이라는 수수께끼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완벽한 그 무엇은 오히려 창작의 방해가 될 수 있다. 상상력, 투사, 동일화, 해석의 여지가 없는 작품은 모조에 불과하다. 실제 벌어진 이야기 자체만으로 소설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의 숨은 역량이 자기 기량을 펼쳐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꾸며낸 이야기, 즉 소설을 통해 감동한다.   


나는 실제와 똑같은 것보다는 재현(묘사)된 것을 더 좋아했다. 실제와 똑같은 것의 결점은, 무엇인가 하면, 재현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외양이 그럴듯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러면 그런 것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것들이 실제와 똑같으냐 혹은 그렇지 않으냐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거의 언제나 쓸데없는 질문이다.  (229)


모나크 부부를 드로잉 할 때, 나는 그들로부터 벗어나서 내가 재현하고자 하는 캐릭터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림 속에서 모델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246)


부부는 자신들의 실패를 받아들였지만 자신들의 운명은 받아들일  없었다. 그들은 모조 물이 실물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예술의 기괴하면서도 잔인한 법칙에 놀라면서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은 굶어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258)



<중년>과 <양탄자의 무늬>는 흡사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말 하고 있는 것 같다. <중년>은 소설가 덴콤과 그를 존경하는 의사 휴와의 대화를 통해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예술을 흠모하는 휴에게 덴콤은 그를 고용한 백작 부인의 유산을 놓치지 말 것을 충고하며, 삶으로 돌아갈 것을 암시한다. 


그의 예술은 비록 보잘것없었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는 너무나 많은 삶을 바쳤다. 예술은 그에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뒤에 왔다. 이런 속도라면 첫 번째 존재는 너무 짧다. 필요한 소재를 수집할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열매를 맺기 위하여, 그 소재를 활용하기 위하여 예술가는 두 번째 시대, 즉 삶의 확장이 필요하다. (264)


좌절감을 느낀 소설가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과연 누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처럼 작가의 의도를 놓쳐 버리고 엉뚱한 곳에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보고서 덴콤은 다시 한번 정말로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281) 


시련을 당하고, 우리의 자그마한 능력을 발휘하고, 우리의 작은 마법을 사람들에게 거는 것, 그것이 영광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놓습니다. 우리의 의심은 우리의 열정이고, 우리의 열정은 우리의 직무입니다. 그 나머지는 예술의 광기입니다. (289)


예술과 문학에 관한 담론의 절정에 이르는 단편이 바로 <양탄자의 무늬>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나'가 쓴 서평을 작가 휴 베레커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평한다. 그것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휴 베레커는 그걸 가리켜 '작은 주제' '자신을 구제하는 가능성' '소설을 쓰게 만드는 바로 그것' '작가의 열정 중의 열정' '예술의 불꽃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핵심 중의 핵심' '작은 트릭' '총체적 구현' '절묘한 계획'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으로 표현한다. 나는 이를 양탄자의 무늬로 비유하며 친구 코빅과 함께 그 비밀을 캐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코빅은 인도로 건너가 불현듯 그 의미를 깨우치고 작가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로 인하여 그웬돌런과 어렵사리 결혼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된다. 그웬돌런 또한 그 비밀의 해답을 알고 있으나 나에게도 심지어 재혼한 남편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녀 역시 죽는다.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이는 독자의 남은 몫으로 돌아간다. 다만, 소설 속의 숨은 비밀은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각자가 발견한 깨달음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無일 수도 있다. 양탄자의 무늬는 매직아이처럼 누구에게는 보이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는 총천연색의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각자의 시각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 당신의 몸속에는 심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형식 요소입니까, 아니면 감정 요소입니까? 아무도 내 작품에 대해서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다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생명의 기관을 말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삶에 관한 어떤 아이디어 혹은 어떤 철학이로군요." (307) 


그것은 원초적 계획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리라고 나는 짐작했다. 페르시아 양탄자의 복잡한 무늬 같은 어떤 것, 내가 이렇게 표현하자 그는 적절한 비유라고 칭찬하면서 또 다른 비유를 했다. 

"그것은 내 진주알들을 꿰는, "그가 말했다. "줄 같은 것이지요!"


그 밖의 <나사의 회전>은 유령이라는 존재를 끌어들여 가장 흥미롭고 미스터리한 공포 스릴러를 읽는 효과를 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가정교사가 쓴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과연 그녀는 귀신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녀 자신의 환상일까. 그녀가 가르치는 어린 두 제자는 과연 악에 붙들렸을까. 더 나아가 이 이야기가 러브 스토리로 읽을 수 있는가 등등.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이 소설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과 관찰로 쓰였으나 분위기로도 서늘한 감각을 선사한다. 의심의 의심이 거듭된 불신의 공포는 극대화되고, 선과 악의 대결 구도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짐을 경험한다. 마지막의 <정글의 짐승>은 얼핏 말장난 같은 허무와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자신 안에 자기도 모를 정글의 짐승 같은 본성이 숨어 있다고 고백한 남자, 존 마처를 옆에서 평생 관찰한 여성, 메이 바트램과의 관계를 그렸다. 우정 이상 사랑 이하의 감정을 안고 교류해 온 이 두 남녀의 관계는 여자의 죽음 앞에서 급물살을 타는 듯하더니 끝내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남자의 미련함이 이 소설의 가장 참혹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깨달음을 던져준다. 



과거부터 그에게 벌어지기로 되어 있던 일은, 막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죽어가는 그녀, 그녀의 죽음, 결과적인 그의 고독. 이것이야말로 그가 정글의 짐승으로 상상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신들의 무릎에 있는 것이었다. (273) 


그 순간, 존 마처에게 그처럼 피 흘리며 살아 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고통과 함께 전해져 왔다. (...) 그는 그 어떤 열정에 사로잡혀 본 적이 없었다. 사로잡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열정이다. 그는 살아남았고, 번민했지만, 그가 엄청난 파괴를 당했다는 흔적은 어디에 있는가? (중략) 그는 자기 인생의 바깥만 보아왔고, 인생의 내부로 들어가서 깨닫지는 못했다. 어떤 여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왔던 남자가 사별 후 그녀의 죽음을 깊이깊이 애도하는 방식으로, 삶의 내부를 깨우치지 못했다. (591) 


깨어남의 무서움-  이것이 깨달음이었다. 그 앎의 숨결 아래, 그의 눈에 맺힌 눈물들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눈물을 통하여 그 깨달음을 고정시키고 간직하려 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앞에 간직하여 고통을 느끼고자 했다. 그것은 비록 때늦고 씁쓸한 것이었지만 삶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 그는 자기 인생의 정글을 보았고 거기에 잠복한 짐승을 보았다.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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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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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횡단여행>을 읽고 감명을 받은 아널드 새뮤얼슨은 그 길로 그를 만나기 위하여 키웨스트까지 내려간다.

수중에 돈은 없었고, 맨 몸으로 홀홀 단신, 오직 그를 만나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얻고자 했을 뿐이였다.


그의 사심 없는 열정이 한 눈에 봐도 느껴졌던 탓일까, 헤밍웨이는 초반의 경계를 풀고 그를

자신의 보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테니 함께 쿠바 아바나로 새치 낚시를 떠나자고 권한다.


이 책은 1년 동안 그와 함께 보낸 경험을 담았고 글 쓰기에 대한 헤밍웨이로부터 얻은 조언들을

대화를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 역시 새뮤얼슨이 사후 죽고 나서 그의 자식들이 원고를 발견하였고,

어쩌면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졌을 운명이였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헤밍웨이를 처음 만난 만남을 통해 한번에 다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 간간히 낚시를 하면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드러날뿐, 온통 바다와 낚시, 그리고 쿠바, 보트를 방문한 다양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인생이 한 편의 작가 수업처럼 다가온 다는 점이 경이롭다.

  

낚시 혹은 쿠바에 대한 광경들을 손에 잡힐듯이 생생히 묘사한 장면들은 '아 이 사람도 역시 작가였구나'를 새삼 깨닫게 한다.

글을 향한 한 젊은이의 강렬한 열망과 소망 역시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 하다.


헤밍웨이라고 하면, 마초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나에게 무뚝뚝하지만 더 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였구나

내부에는 뜨거운 열정과 단단한 마음,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뚝심, 한 우물만 파는 그 끝없는 근성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육성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책이였고,

작가라면 모름지기 이런 면모를 갖고 타고나는 것일까 내심 궁금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알고자 하는 삶을 글 속으로 끌어 담고 싶어하는 위대한 작가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였다.  





p.33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p.36



스티븐 크레인

 블루 호텔

 오픈 보트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적과 흑 - 스탕달 저

(인간의 굴레에서 - 서머싯 몸)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 토마스 만

환호와 작별 - 조지 무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옥스퍼드 영시집

거대한 방 - E.E.커밍스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저 멀리 그 옛날에 - W.H.허드슨

아메리칸 - 헨리 제임스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서로 다른 글쓰기의 전형을 대표하는 것들이네"




p.84


"상대의 입맛에 맞추는 소설은 쓰지 마. 출판사 편집자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춘 이야기를 싣는 유일한 이유는

작가들이 계속 그런 것들만 보내기 때문이야.

:

독자들은 좋은 이야기를 알아보지만 편집자들은 아니야. 색다른 이야기를 보내면 편집자들은 그 가치를 못 알아봐

이야기만 훌륭하다면 반송되어 오더라도 거들떠보지 마. 그냥 계속 보내. 좋은 이야기라면 알아보는 편집자가 있을 거야.

한 명이 알아보면 나머지도 알아보기 마련이지. 하지만 형편없는 이야기는 사방팔방 끊임없이 보내봤자 소용 없어.

누구도 사지 않을 테니까.


이야기가 하나 판린다고 해도 우연일 수 있으니까 다름 게 팔릴 때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래서 생계를 위해

지금 하는 일을 버려서는 안돼. 친구가 없다고 걱정할 건 없어. 돈만 벌면 친구는 골라 사귈 수 있어.

그리고 돈을 진짜 벌게 되거든 하는 일에 상관없이 도취하지 말아야해. 그게 사람을 파멸하는 길이야."




p.86


"완전히 틀린 말이야! 그런 똥 같은 소리는 믿지 말게.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면 신문 일이든 뭐든 해서 돈을 벌어

그러나 제발 생계를 위해 소설에 매달리지는 마. 통속소설 같은 사이비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걸 쓰는 법을 절대 배우지 못해

먹고살 만큼 돈을 모을 때까지만 하다가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통속작가들을 나도 많이 알지만, 씨도 안먹히는 얘기야.

자신이 글 쓰는 법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는 걸 그네들도 알아. 이제껏 써온 것이 전부 쓰레기고 지금 것도 그 꼴이라서

색다른 걸 쓴다는 건 불가능해. 통속작가의 평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밑천이 바닥나 작품이 더는 팔리지 않다는걸 깨우치든지

아니면 신물이 나 일을 아예 때려이추고 말지.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리고는 매일 연습하는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겅.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자네들이 매일같이 글 쓰기 연습을 하겠다면 쓴 걸 흔쾌히 훑어보고 잘못된 걸 말해주지"




p.120


"(중략) 또하나, 사제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 느낀 건데, 자네는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 비난하는 버릇이 있어.

그 점을 경계해야 하네. 자네는 신이 아니야. 절대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게

모름지기 작가는 상이한 두 성격이 있어야 해. 인간으로서 자네는 천하의 개망나니일 수도 있고, 사람을 증오하고 비난하고

다음번 만났을 때 놈의 대갈통을 총알로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 자네는 누구에 대해 쓰기 전에 그 사람을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의 관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네의 사사로운 반응을 섞지 않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요령을 터득해야 해"




p.176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무엇이죠?"


"전쟁. 전쟁은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탄생시켰지. 혹은 불행한 유년 시절.

실연,남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이 작가에겐 거반 다 좋은 일이야.

그리고 마흔이면 사람들은 실수하기 시작하지만 작가의 정신은 명료해진다네

음악이나 좀 들을까,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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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Lecto ergo sum)


이 책을 읽고나서 더욱 더 저 문장이 한 차례 머리 속에 단단히 새겨진 듯하다.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어느 한 강연을 통해 책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 한권의 책은

마치 나와 대화를 나누듯이 친근하고 편안한 문체로 말을 걸어주고 있다.


하지만, 한 노년 작가의 방대한 양의 독서량과 인생의 굴곡은 절대 만만치 않다

한 권의 책이 한 소년의 인생의 방향을 알려 주었고, 그 소년이 어른이 되어 나이를 먹어 갈 때에도

책은 늘 그 자리에서 그를 떠받쳐 주는 우주의 전체였다.


그 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직접 원서로 책 읽기를 권하고 있는 이 노작가의 진정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존경으로 전해진다.


이름만 인문학자라며 원서로 고전을 읽으라고 말로 피력한 얄팍한 술수가 아닌,

본인이 직접 번역하고 해석하고 매만진 문장들을 정갈하게 정리하여 진심을 담아 기록한

이 작가의 성실함과는 비견도 할 수 없다.


한편으로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게 절로 머리가 수그러지는데,  

여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꺼지지 않은 생명력에 불을 지피우려고 하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도 절절히 알 수 있었다.   


허클베리핀의 대사, 친구 짐을 노예로 팔기보다는 죽어서 지옥으로 가겠다는 그 단호한 문장이

읽으면서도 코 끝이 찡해 기어코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평생 간직하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기로 결정했다는 작가의 순수함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꺼지지 않는 가장 숭고한 불꽃이 아닐까


그의 소설들을 찾아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 누구와도 다른 문체와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작가의 글이라면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p.20


헉은 고향 마을에서 친절을 베풀어준 짐의 주인 노부인에게 보낼 편지를 씁니다

"이 마을에 당신의 재산인 짐이 있다. 현상금을 주면 당신의 재산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교회에서 남의 재산을 훔치는 일에 가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 때문인데요.

헉은 곧 바로 그 편지를 찢어버리며 다짐합니다.


"난 이 생각을 버렸고, 결코 번복하지 않을거야 이런 편지는 두 번 다시 쓰지 않겠어"

헉은 편지를 찢으며 말합니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저는 원문과 번역문을 둘 다 암기하고 있습니다.


: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 제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 한 줄입니다.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기 시작한 때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돌아가신 해라,

저도 지옥이라는 곳이 가까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아이들도 이런 결심을 해야 하는 때가 있구나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평생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겠어. 저는 다짐했습니다.



p. 76



방금 말한 라우리에 관한 훌륭한 평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라우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평전에 아까 그 사진 아래로 라우리가 쓴 미발표 시 한 편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걸 읽으니 얼마나 어두운 사람이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유쾌한 감정의 죽음  Death of a sense of fun 이 제 1행 

그 다음 행은 유머 감각의 죽음 Death of a sense of humor

유쾌한 감각이 먼저 죽고, 뒤어어 유머감각이 죽습니다

아울러  Death of sense, 감각마저 사라져요 그렇게 Death, 죽음 그 자체가 다가옵니다.

How do you recover from this? (이 사실을 그대는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이것이 제1연입니다.


제2연은 What do you fear? (그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로 시작합니다.

Being found out (저 녀석이야, 하고 간파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답합니다.


제3연에서는 Then why do you always give yourself away? 

(그렇다면 어째서 곧바로 타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을 하는가) 라고 하지요  


다음 연은 What do you want to do? (무엇을 하고 싶은가)

Hide, 숨는 것이다. 이어서 이렇게 캐묻지요

Then why go out and make an exhibition of yourself?

(그렇다면 그대는 왜 밖으로 나가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기를 차저하는가)


그리고 남자를 향해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What do you seek? (그대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Oblivion, 망각되는 것이라고 남자는 답합니다.


이것은 라우리의 일기장에 쓰여 있던 시라고 합니다.



p. 120- 121


젊었을 때는 슬픔이 격렬합니다. 난폭할 정도로 말이지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슬픔도 온화해지고 고요해진다고,

실제로 마흔대여섯 때부터 그렇게 느꼈어요. 그리고 에세이를 썼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 하나가,

"아니, 그렇지 않아"라고 편지에 써 보냈죠 "젊은 시절 격렬했던 슬픔은 분명 어느 연령이 되면 고요한 슬픔이 된다,

온화한 슬픔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그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이번에는

고요해야 할 슬픔이 거꾸로 더 광포하고 격렬한 슬픔이 된다. 그렇게 역전되어 자네에게 돌아올 거다"라고 경고하는 편지였죠.


:


이 소설을 쓴지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생각나는 것은 전에도 종종 말씀드린 에드워드 사이드가 생애 마지막에 쓴

<후기 스타일에 대하여 on late style>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예술가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노년에 해나가는

'후기의 작업' 속에서 (그 전까지는 침착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무척 격렬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내용을

실제 예를 들어 분석합니다. 자신의 성숙한 노년따윈 집어던지고, 사회가 그 예술가에게 원하는 것과는

완전히 역행한다는 듯한, 광포하고 기괴한 것을 만들다 죽어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요



p.130


단테라는 인물은 자기 생각을 풀어낼 때나 상상을 할 때, 누군가를 위해 대신 생각할 때 등 온갖 측면에서

세계 최상의 것을 표현했다고 말입니다. 아울러 라스킨은 단테가 그려내는 상상력의 첫 번째 기능이 '궁극의 진실에 대한 이해'

라고 정의합니다 "상상력이라는 인간의 힘은 다양한 것을 꿈꾸기도 하지만, 진정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상상력의 중심기능이며, 단테는 이를 발휘하여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논리적으로 드러나면서 가장 명료하고 가장 품위 있게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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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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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보르헤스의 이번 인터뷰 대담집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읽을 수록 그 탁월한 대화의 흐름과 깊이에 흠뻑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온갖 종류의 주제를 가지고 이 언어학자이자 소설가, 시인, 학자, 혹은 그저 단순히 책을 무척 사랑하는 독자로서

긴 세월을 견뎌내고 이겨내오면서 천성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얻게 된 삶의 지혜와 해박한 지식이

두 사람 혹은 세사람, 군중들과의 대화를 통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미 너무나 오래 살았기에, 죽어서 자신의 존재도 잊히고 자기가 쓴 책들도 사라지는 것이 희망이라고 표력할 정도로

겸손한고 겸허한 모습, 군중들과의 대화가 아닌 바로 당신과 1:1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모습 또한 소탈하기 그지 없다


말년에는 시력을 잃어 책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게 되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문학과 시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리고 그가 얼마나 문학을, 특히 영어라는 언어를 사랑하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 강렬하게 와 닿을 것이다. 


보르헤스의 단편들은 나에게는 쉽지가 않아 늘 마음으로만 염원해 왔던 중에,

이 인터뷰집과 함께 민음사에서 나온 <픽션들>을 함께 읽었더니 인터뷰 중에 그의 소설 이야기가 간혹 나올 때마다

주의 깊게 읽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픽션들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한 뼘 더 가깝게 그의 목소리와 영혼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펼쳐 보기를 추천한다.


첫 페이지 첫 줄만 읽어도 이미 당신은 보르헤스라는 인물에게 매료되고 말 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울 만큼 재밌고도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다.





p.60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에든 다른 누군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누군가로 바뀌면 우린 그 사실을 알지 못해요.

예를 들어, 어느 순간에 나는 당신으로 바뀔 거예요. 당신은 나로 바뀔 것이고요. 그러나 그런 변화가 끝난 뒤엔

아무런 기억이 없어서 바뀐 걸 알지 못하는 거예요. 우린 늘 바뀌어요. 우리는 달에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걸 알지 못해요. 왜냐하면 달에 사는 사람이 되면 '그'의 과거를 지닌, 그의 기억을 지닌, 그의 두려움과 희망 같은 것을 지닌

달에 사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지요."




p.73


"아니에요. 바보 같은 게 아니에요. 그런 일은 인간 경험의 한 부분이에요. 내 말은 사랑하는데 사랑을 받지는 못하는 상황,

그게 모든 삶의 일부라는 뜻이에요. 안 그래요? 당신이 내게 와서 "나는 아무개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가 날 거부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누구나 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누구나 퇴짜를 맞고 퇴짜를 놓지요. 그 두가지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쉽게 눈에 띄어요

누군가는 거부하고 또 거부당하지요.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나요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하이네가 말했듯이 우린 매우 상심하게 되죠"



p.74


반스톤 - 간혹 상심에 빠졌을 때, 난 죽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것은 살고 싶다는 신호였을 뿐이라는 걸 나는 알았어요


보르헤스 - 나는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언제나 그걸 미뤄두었지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해?

자살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는데 말이야. 그와 동시에 난 한 번도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걸 사용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반스톤 - 당신은 내 질문에 대답한거나 다름 없어요. 자살을 생각한 것은 살고 싶다는 신호였을 뿐이라느나 걸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종종 마음에 품었던 자살 충동조차도 더 충만하게, 더 잘 살고 싶다는 필사적인 바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보르헤스 - 자살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자살했다는 걸 알고 나서 남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것만 떠올려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 때문에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복수심 때문에 자살을 하지요.

화가 나서 자살을 해요. 자살은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누군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

이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지요.


반스톤 - 자살은 주로 젊은이의 연애 이야기예요. 젊은 사람들이 간혹 들어서는 그릇된 문이지요. 그렇다면 그 역은 어떨까요?

살고자 하는 열정은 왜 있는 걸까요? 그 열정이 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기도 하는 걸까요?

살고자 하는 그 격렬한 열정은 왜 있는 걸까요?


보르헤스 - 그걸 답할 수 있다면 난 우주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난 그럴 수 없잖아요? 모든 사람이 다 실패했으니까요.

나는 자살한 사람들을 많이 알아요. 내 친구들 중 많은 이가 자살했지요. 사실 우리 나라 문학가 사이엥서 자살은 꽤 흔한 편이에요

아마 미국보다 많을 거예요. 그러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려는 갈망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갈망에서 자살을 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경우 그게 자살의 동기예요.





p.89


불행은 작가에게 주어지는 도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고 싶군요.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많은 재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불행, 고독 같은 것들은 모두 다 작가가 사용해야 하는 것들이에요. 악몽도 도구예요. 내 소설 가운데 많은 것들은 악몽이 내게 준 거예요.

나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악몽을 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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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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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남주님의 옮긴 글을 읽으면서, 더 많이 공감하는 바가 있어 간략하게 요약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창백한 언덕의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 있는 나날들>

작가 스스로 세 편에 대해 "같은 책을 세 번 썼다"고 한다.


세 작품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그려내려고 했으며,

직업적인 면에서 소모적인 삶을 산 한 인간을 탐구 했다는 것이다.


"때때로 인간은 틀릴 수도 있는 신념을 전력으로 붙잡고 자기 삶의 근거로 삼는다

내 초기 작품들은 이런 인물들을 다룬다 그 신념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환멸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건 그저 그 탐색이 어렵다는 걸 발견한 것뿐이고, 탐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삶의 요체가 완성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것, 문학이 영광이 아니라 좌절의 자리에서 빛난다는 걸 확인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겉보기에는 일본적이지만, 그 주제의 많은 부분 곧 비밀, 회오, 은밀함, 위선, 상실 등은 20세기 영국 소설이 천착해 온 주제와 밀접하다.


자기 변혁을 꾸준히 추구해오고 기꺼이 그 너머의 세계로 항해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 작가야말로 위대한 작가라고 감히 단언하여 말하고 싶다



이에 덧붙여 무라카히 하루키는 위대한 작가라기 보다는 좋은 작가라고 표명한 바 역시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은 최근 발표한 <파묻힌 거인>과 함께 초기 작품까지 다 읽은 셈이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어느 한 공통된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범주의 장르 안에서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탁월함에 늘 감탄하면서 마지막까지 읽게 된다.


주인공은 화가, 집사, 혹은 음악가, 또는 탐정, 그리고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혹은 클론으로 변주 된다.

또한 언제나 안개 속에 갇힌 듯 모호하면서도 불투명한 이야기들을 화자의 독백으로 풀어내면서

과거와 기억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사이에 진실에 한층 더 가깝게, 깊숙이 다가간다.

어디까지나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를 인간의 기억은 한계를 지녔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그 너머의 어떤 통감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의 경계선 너머까지 밀어부치는 무언가가 있다.  


손에 잡힐 듯 안잡힐 듯한 그 불분명한 것을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

이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갇혀 있는 나라는 주체, 혹은 인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를 떠나지마> <남아닜는 나날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마지막으로 <파묻힌 거인>을 추천하는 바이다.

특히, 이번 신작은 10년 만에 발표하는 판타지 소설로, 그의 소설을 읽고 나도 모르게 찔금 눈물이 나오기도 했는데,


끝까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두 노부부의 이야기, 그리고 엉뚱하면서도 돈키호테 같은 노기사의 이야기 등,

때로는 진실보다는 망각 하며 사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으며,

그가 만들어 낸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이구나를 새삼 다시 느꼈다.


p.201


"가장 좋은 건 밤과 일체가 되었다가 아침과 함께 사라지는 거라고 말일세.

사람들이 부유하는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세"



"화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가장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이 해가 진 뒤 환락의 집 안에 떠돈다네

그리고 이런 밤들이면 말일세, 오노, 그 아름다움 중 어떤 것이 이 곳 우리의 거처로 은연중에 스며든다네


(중략)


내가 부유하는 세상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이유는 나 자신이 그 가치를 믿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네

하지만 한 세계의 아름다움, 그것의 진짜 유효성을 의심하는 한 그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향유하기란 어렵다네" 


https://brunch.co.kr/@dlclz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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