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허기 - 암과 요리의 계절
캐런 바빈 지음, 이주혜 옮김 / 녹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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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허기》는 표지만큼이나 제목의 강렬함에 끌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관심의 영역도 달라지는데, 요즘의 화두는 건강과 돌봄이다. 이 책은 여기에 요리를 하나 더 덧붙인다. 사람은 아파도 배가 고프다. 아파도 먹어야 한다. 더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복합적이며 모순된 허기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덮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이 암에 걸렸다는 선전포고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러한 저자 바빈의 기록이 시종 담담하게 담겨 있는 산문이다. 저자는 암 투병을 시작한 엄마의 곁을 돌보며, 새로이 요리를 하고, 치유의 과정을 함께 한다. '암에 맞춰 조정된 정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며 언어의 방향을 새롭게 조정해 나간다.


배아형 횡문근육종이라 불리는 소아암. 열 살 미만의 아이들에게만 생기는 암이 65세 엄마의 뱃속에서 발견됐다. 종양은 양배추만 한 크기, 임신 30주 차의 크기이다. 임신 4개월 차의 느낌은 들지만 아기가 아니라 암이다. 차마 '암 아기'라고 농담할 수 없는 병이다. 엄마는 자궁과 함께 무게 1.4킬로그램, 크기 16센티미터의 배아형 횡문근육종 종양을 도려냈다. 암세포는 사라졌지만 항암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암이 재발할 확률은 70퍼센트, 재발할 경우 생존율은 40퍼센트. 항암 치료를 받으면 재발해도 생존율이 90퍼센트에 달한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선택하고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암에 맞춰 조정된 정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머니들은 자신을 배신한 자궁 속에 어떠한 또 다른 자아를 품고 살아갈까.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낸 후, 혹은 자궁 자체가 사라진 뒤, 남겨진 환상통의 공간에는 어떤 근육 기억들이 남아 있을까. 혹은 선택에 의해서든 상황에 의해서든 아이를 품지 않은 자궁 속에 우리는 무엇을 안고 다니는 걸까. (중략) 우리는 진정 고유한 존재인가, 아닌가? 과학은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스템과 네트워크, 가족과 친구라는 매트릭스, 그리고 패턴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세포 단위에서도 시간과 공간과 논리를 뛰어넘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개별성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 낸 신화일지 모른다." (p.21-22)

음식을 두려워하게 된 엄마를 위하여 직접 요리를 한다. 무려 채식주의자인 내가 엄마를 위하여 육식이라는 낯선 요리의 세계로 뛰어든다. 무쇠 컬렉션의 첫 번째 주자는 23센티미터 주황색 르크루제 무쇠 프라이팬이다. 단돈 7.99달러. 프라이팬의 이름은 애그니스이다. 소설 《애그니스와 킬러》의 주인공 이름이다. 애그니스는 요리사고 온갖 소동이 벌어질 때마다 프라이팬을 휘둘러 자신을 지킨다. 음식을 두려워하게 된 엄마를 위해 애그니스로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돌봄이자 사랑이다. 허기를 달래고 배를 채워준다. 따뜻하고 뭉근하게. 요리는 곧 사랑이다.

"암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요즘 같은 나날에 나는 무쇠 팬 숭배의 유산이 한없이 부럽다. 이런 마음은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갈망이고, 누군가 이 길을 앞서간 적이 있기에 처음부터 새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기도 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고 언제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쇠 팬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초심자다. 점점 늘어나는 내 컬렉션은 중고 가게에서 모은 형형색색 다양한 크기의 빈티지 냄비와 애그니스 같은 프라이팬으로 채워졌지만, 나는 이곳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고 이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 그것은 비단처럼 매끄럽게 길든 백 년 된 팬을 물려받는 일과 같고 더불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증조할머니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오래된 지식과 옛날의 웃음, 찬란한 자긍심의 풍미까지 물려받는 일이기도 하다." (p.36)

10월부터 6월까지, 가을부터 초여름까지, 기록은 마치 일기 같기도 하고 레시피 같기도 하다. 무쇠 프라이팬을 모을 때마다 눈을 반짝일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프라이팬에 하나씩 이름을 붙이며 애정을 준다. 그 팬으로 엄마를 위한 육식 요리에 정성을 다한다. 작은 요리일지라도 시간을 들여 재료의 조화를 신경 쓰며 불을 조절한다. 가족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역사를 회고한다. 이 음식 하나에도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다. 음식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내면의 영혼마저 채운다. 혼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으므로. 그러므로 이 힘겨운 투병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이 책은 암과 죽음, 그리고 삶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저자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 안에서 고요하지만 단단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왜 하필이라는 질문 안에 담긴 분노 또한 너무나 솔직하여 인간적이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거리 두기는 읽는 내내 마음을 건드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세계를 향한 좌절을 쏟아낼 길 없는 요즘 같은 나날에 부풀어 오른 반죽 한가운데를 주먹으로 내리쳐 바람을 빼는 일만큼 흡족한 일은 없다. 다 구워진 빵 밑바닥을 두드려 그 텅 빈 소리를 듣는 것보다 경이로운 일은 없다.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없음의 소리다." (p.82)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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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웃음 -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선언 앳(at) 시리즈 10
엘렌 식수 지음, 이혜인 옮김 / 마티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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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글쓰기, 그 키워드를 필두로 글의 형식마저 파괴적인 매혹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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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
김명순 지음, 박소란 엮음 / 핀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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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나 최초여성 작가의 단편집을 드디어 읽을 수 있다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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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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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깔끔하고 우아한, 그런 단편들이다"라는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에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문지혁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감을 안고 읽었다. 총 8편의 단편들이 이끄는 세상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시간들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이어져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무수한 사건들의 확률 속에서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247)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아놓고 보니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재난'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인다. 나는 재난과 재난 이후의 삶에 관해, 상처와 폐허와 트라우마에 관해, 우리가 스러지고 다시 일어선 곳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두서없고 더듬거리고 때로는 말문이 막혀 한숨만 내뱉는다 하더라도. 이 소설 역시 그러한 더듬거림의 한 형태이자 기록일 것이다.



『다이버』는 읽는 내내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폭수』의 수학자처럼, 『다이버』의 주인공도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이다. 통합 세기 219년, 여객기가 바다에 추락하는 바람에 참변을 당했고 끝내 딸의 시신을 찾지 못한다. 결국 직접 다이빙을 하자는 결론에 도달한 유족들은 바다로 잠수한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하나 둘 다이빙도 포기하고 돌아갈 즈음, 끝내 혼자만 남겨진 남자는 두려운 물길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 곁에 남기로 결심하며 바다로 뛰어든다. '지금 가고 있어'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그에 반해 『폭수』의 수학자는 아들을 떠나보낸 후, 호수를 향해 쿼터 동전을 던지기 시작한다. 물론,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왜 쿼터를 던지냐는 질문에 수학자는 '특이점'에 대해 설명한다. 어느 순간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면 에너지 밀도가 급격히 높아져 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쿼터를 던지면 호수의 물이 폭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런 일이 언제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하는 수학자는 비극이라는 불행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을 거꾸로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대답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시종 침착하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수학자의 태도는 묘하게 감동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

(106) 나는 나무 아래 서서 한동안 호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불규칙한 물결의 반짝임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문이나 나의 불확실한 미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반복됐다. 영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영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 광경은 묘하게 감동적인 데가 있어서, 나는 인터뷰고 뭐고 그냥 여기 어디 벤치에 앉아 해가 다 저물 때까지 호수를 지켜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종이책이 금지되고 모든 지식과 정보가 넷을 통해 유통되는 통합 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독립된 단편이면서 연결된 서사의 흐름 안에 있다. 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아가던 『서재』의 주인공 영은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57) 아이. 우리의 아이. 생각의 바다 위에서 나는 곧 태어날 생명이 기다리는 해안가로 휩쓸려간다. 나의 패턴을 깨고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낯선 존재에게,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영이 남긴 책의 빈 페이지를 그의 딸인 윤채가 이어서 채우기 시작한다. 두 단편은 미래를 배경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종이책의 소재를 가지고 흡입력 있는 장르적 매력을 뽐낸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책이고, 연결되어 있으며 또 하나의 역사라는 것을.

(93) 빈칸이 줄어든다. 아빠의 책을 앞쪽에서부터 다시 읽는다. 아빠가 겪었던 일들이 자세하게 적힌 그 글에는 아빠가 들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적어도 읽는 동안 나는 아빠가 된 것만 같다.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겪지 않은 일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마지막에 적힌 아빠의 글에서 전에는 지나쳤던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한다. '부디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다음 페이지가 되기를.' 아빠는 언젠가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거라는 걸 알았을까. 저 '우리'가 만약 아빠와 나라면. 내가 아빠의 다음 페이지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까?

이 단편집에서 가장 궁금했던 단편은 역시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였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바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 의문은 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풀려나갔다. 시작은 경쾌했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던지고 있는 이 소설은 읽고 나서도 지나간 역사의 현장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재난을 우리는 함께 겪고 감내해야 했으며,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부터, 911 테러,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까지, 수차례 목도하며 지나쳤던 재난을 아우르며, 그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셈이다.

(247) 극동 아시아에서 온 21세기 유학생에게 18세기의 미국독립전쟁 유적지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사고, 재난,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고 또 기억되는가? 이 소설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하나의 장소 위에 서로 다른 역사,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이야기가 겹치는 것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은 소설가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200년 전 전쟁의 배경이 된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두 사람이 함께 건너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가 겪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부터, 911 테러를 거쳐 '아야'가 보고 들은 동일본 대지진까지, 두 사람은 우연히 살아남았고, 함께 다리를 건너고 있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운명이라는 확률은 지독한 구석이 있다. (211)"지금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시대다.".... 말 그대로 "언제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전 세계인들에게 그 비극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단지 끔찍한 재난의 일부로만 여기고 잊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언젠가 우리라고 살아남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당분간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다리 위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프카의 글쓰기처럼 작가도 다리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을 읽는 것도 인생의 확률에 의문을 품고 여러 종류의 경우의 수를 지켜보는 과정이 아닐까.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189) 확률에 관해 생각한다. 이를테면 포트 리의 카페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 그것이 아야일 확률. 내가 이 시간 이곳에 오게 될 확률과 아야가 내가 오기 전이나 떠난 후에 오지 않고 정확하게 주문하고 있는 시간에 올 확률.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볼 확률. 내가 다리에 가자고 말할 확률과 아야가 그것을 수락할 확률. 아야와 내가 각각 도쿄와 서울에서 태어날 확률. 30여 년 뒤 뉴욕에서 만날 확률. 하나의 다리가 지어지거나 무너질 확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모든 종류의 경우의 수.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하나의 사건에 이르러 지금 마주 보며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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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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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사건들의 확률 속에서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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