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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횡단여행>을 읽고 감명을 받은 아널드 새뮤얼슨은 그 길로 그를 만나기 위하여 키웨스트까지 내려간다.
수중에 돈은 없었고, 맨 몸으로 홀홀 단신, 오직 그를 만나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얻고자 했을 뿐이였다.
그의 사심 없는 열정이 한 눈에 봐도 느껴졌던 탓일까, 헤밍웨이는 초반의 경계를 풀고 그를
자신의 보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테니 함께 쿠바 아바나로 새치 낚시를 떠나자고 권한다.
이 책은 1년 동안 그와 함께 보낸 경험을 담았고 글 쓰기에 대한 헤밍웨이로부터 얻은 조언들을
대화를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 역시 새뮤얼슨이 사후 죽고 나서 그의 자식들이 원고를 발견하였고,
어쩌면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졌을 운명이였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헤밍웨이를 처음 만난 만남을 통해 한번에 다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 간간히 낚시를 하면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드러날뿐, 온통 바다와 낚시, 그리고 쿠바, 보트를 방문한 다양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인생이 한 편의 작가 수업처럼 다가온 다는 점이 경이롭다.
낚시 혹은 쿠바에 대한 광경들을 손에 잡힐듯이 생생히 묘사한 장면들은 '아 이 사람도 역시 작가였구나'를 새삼 깨닫게 한다.
글을 향한 한 젊은이의 강렬한 열망과 소망 역시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 하다.
헤밍웨이라고 하면, 마초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나에게 무뚝뚝하지만 더 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였구나
내부에는 뜨거운 열정과 단단한 마음,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뚝심, 한 우물만 파는 그 끝없는 근성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육성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책이였고,
작가라면 모름지기 이런 면모를 갖고 타고나는 것일까 내심 궁금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알고자 하는 삶을 글 속으로 끌어 담고 싶어하는 위대한 작가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였다.
p.33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p.36
스티븐 크레인
블루 호텔
오픈 보트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적과 흑 - 스탕달 저
(인간의 굴레에서 - 서머싯 몸)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 토마스 만
환호와 작별 - 조지 무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옥스퍼드 영시집
거대한 방 - E.E.커밍스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저 멀리 그 옛날에 - W.H.허드슨
아메리칸 - 헨리 제임스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서로 다른 글쓰기의 전형을 대표하는 것들이네"
p.84
"상대의 입맛에 맞추는 소설은 쓰지 마. 출판사 편집자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춘 이야기를 싣는 유일한 이유는
작가들이 계속 그런 것들만 보내기 때문이야.
:
독자들은 좋은 이야기를 알아보지만 편집자들은 아니야. 색다른 이야기를 보내면 편집자들은 그 가치를 못 알아봐
이야기만 훌륭하다면 반송되어 오더라도 거들떠보지 마. 그냥 계속 보내. 좋은 이야기라면 알아보는 편집자가 있을 거야.
한 명이 알아보면 나머지도 알아보기 마련이지. 하지만 형편없는 이야기는 사방팔방 끊임없이 보내봤자 소용 없어.
누구도 사지 않을 테니까.
이야기가 하나 판린다고 해도 우연일 수 있으니까 다름 게 팔릴 때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래서 생계를 위해
지금 하는 일을 버려서는 안돼. 친구가 없다고 걱정할 건 없어. 돈만 벌면 친구는 골라 사귈 수 있어.
그리고 돈을 진짜 벌게 되거든 하는 일에 상관없이 도취하지 말아야해. 그게 사람을 파멸하는 길이야."
p.86
"완전히 틀린 말이야! 그런 똥 같은 소리는 믿지 말게.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면 신문 일이든 뭐든 해서 돈을 벌어
그러나 제발 생계를 위해 소설에 매달리지는 마. 통속소설 같은 사이비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걸 쓰는 법을 절대 배우지 못해
먹고살 만큼 돈을 모을 때까지만 하다가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통속작가들을 나도 많이 알지만, 씨도 안먹히는 얘기야.
자신이 글 쓰는 법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는 걸 그네들도 알아. 이제껏 써온 것이 전부 쓰레기고 지금 것도 그 꼴이라서
색다른 걸 쓴다는 건 불가능해. 통속작가의 평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밑천이 바닥나 작품이 더는 팔리지 않다는걸 깨우치든지
아니면 신물이 나 일을 아예 때려이추고 말지.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리고는 매일 연습하는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겅.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자네들이 매일같이 글 쓰기 연습을 하겠다면 쓴 걸 흔쾌히 훑어보고 잘못된 걸 말해주지"
p.120
"(중략) 또하나, 사제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 느낀 건데, 자네는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 비난하는 버릇이 있어.
그 점을 경계해야 하네. 자네는 신이 아니야. 절대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게
모름지기 작가는 상이한 두 성격이 있어야 해. 인간으로서 자네는 천하의 개망나니일 수도 있고, 사람을 증오하고 비난하고
다음번 만났을 때 놈의 대갈통을 총알로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 자네는 누구에 대해 쓰기 전에 그 사람을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의 관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네의 사사로운 반응을 섞지 않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요령을 터득해야 해"
p.176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무엇이죠?"
"전쟁. 전쟁은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탄생시켰지. 혹은 불행한 유년 시절.
실연,남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이 작가에겐 거반 다 좋은 일이야.
그리고 마흔이면 사람들은 실수하기 시작하지만 작가의 정신은 명료해진다네
음악이나 좀 들을까, 마에스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