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괜찮아 - 진흙탕을 놀이터로 만드는 박혜란의 특급 결혼이야기
박혜란 지음, 윤정주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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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서평] 「결혼해도 괜찮아」 행복은 결혼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결혼해도 괜찮아 - 
박혜란 지음, 윤정주 그림/나무를심는사람들

 

 중학교 때 반 친구들은 내 꿈을 가지고 나를 놀렸다.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조금 여성스러운 꿈을 말한 게 다른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큰 야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인지 내 꿈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또 마치 이루기 쉬운 꿈인 것처럼 평범해보였다. 어렸을 때는 무슨 허세였는지 평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고 어떻게든 튀어보거나 특별하고 싶었다. 평범한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현대인들은 그들이 만든 평범을 이루기 위해 걸음마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경주마가 되어 인생 전반을 치열하게 내달린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평범한 결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커플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는가. 나에게 평범한 결혼과 평범한 가정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에 도달하는 첫 번째 과제임이 분명했고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처럼 부정적인 결혼관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노년의 결혼 생활은 갈수록 시큰둥하다. 그래서 난 남들도 으레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아직도 자기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가슴이 울렁인다는 청천벽력 같은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진짜, 정말, 레알?' 묻고 또 물어도 답은 예스.

 다른 친구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첫마디가 '거짓말!'

 또 다른 친구도 역시 '뻥이야!'

 또또 다른 친구는 '미쳤나 봐! 변태 아냐?'

P. 57 

 

 대학교 때 한 학년 높은 선배와 정말 치열하게 연애했다. 내 감정이든 그 선배의 감정이든 감당하기 힘든 연애였다. 그토록 뜨거운 감정을 가졌음에도 어떻게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고 선배의 나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다.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는 상처도 받지 않는다. 내가 선배에게 상처받으며 내 감정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과 생각이 소용돌이 치는 와중에 지금까지 결혼관을 강하게 지배하는 하나의 생각은, 왜 사랑해서 안달이 났던 사람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해야 하는가이다. 결정적으로 결혼에 대한 의문을 던진 소설이 있다. <중국식 이혼>이다. 이 소설 역시 내가 느꼈던 생각과 같이 주인공들은 치열하게 사랑하고 증오한다. 에프라임 키스혼의 패러디 작품 「그것은 종달새였다」에서는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서술한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베로나의 허름한 방 한 칸에서 살았을 것이다. 살림은 형편 없고 로미오의 배는 튀어나왔을 것이며 줄리엣은 그의 모습에 신물이 났고 그래서 둘은 늘 싸운다. 다시 한번 묻는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다. 연인이 그 외로움을 달래 주는 데 특효약인 걸 사실이지만 약효는 늘 시한부일 뿐이다. 특별히 소통이 잘 되는 남편이라면 의로움 퇴치에 큰 힘이 되겠지만 그 역시 외로움을 완치시킬 명의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도 결국은 나처럼 외로운 존재이니까.
P. 87 



 다시 환상 가득 행복 가득한 결혼을 꿈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혼해도 괜찮아>를 펼쳤다. 분명 결혼하라고 만든 제목 같은데 왜 내용은 제목과 다르게 결혼을 할 게 못된다는 주장을 일삼는지. 결혼만 하면 이성은 서로의 사랑이 식어가는 걸까? 사랑에 대한 설렘을 무척 훌륭하게 표현한 명작 <비포 선라이즈>를 보면 남자 주인공은 만약 지금 나를 놓치면 나중에 결혼하고 권태기가 왔을 때 그 남자를 만나봤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협박어린 작업 맨트로 여자 주인공을 꼬신다. 그 맨트 속에는 '결혼 하면 너의 남편은 매력이 떨어질 거야' 라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하게 결혼만 하고 나면 들끓던 사랑이 식어가는 이유는 너무 가깝기 때문 아닐까? 사람은 너무 가까이에 오래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군대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여태껏 문제 없이 사회 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군대에 들어와 24시간 내내 사람과 부대끼다 보면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이란 하나의 세상과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 합쳐 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만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세상이다.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는 작은 우주 두 개가 만나는 빅뱅이니 어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사람은 누구든지 서로 다르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은 절대 안돼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간 관계는 서로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이해 하는 과정이고 결혼은 인간 관계의 정점이 아닐까. 결국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다. 일평생 혼자라는 외로움을 감당하다가 결혼을 통해 지금까지 비어있던 것만 같은 '반쪽'을 채우려 하지만 그건 전부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배우자는 나를 하나로 완벽학 만들어주는 합체의 대상이 아닌 불안정한 나를 받쳐주는 동반자와 같다. 이게 바로 결혼해도 괜찮은 이유 아닐까? 

 결혼이 맘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쉽게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왜 결혼했는가 후회하지 마십시오. 배우자와 스스로를 탓하지도 마십시오. 결혼이 두 분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두 분이 행복한 결혼을 만들어 가십시오.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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