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정여울 글.사진, 이승원 사진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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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서평] 「그림자 여행」 그녀의 그림자가 빛나는 순간


 



 언제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책장에는 그녀의 책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분명 문체가 조금 무겁고 겉멋이 약간 든 게 아닌가, 하고 느꼈지만 이제는 그 스타일에 중독 되었는지 그녀가 내는 책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작가가 됐다. '나는 묘사밖에 할 줄 모르는 작가' 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라고 하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작가다. 곳곳에서 멋진 표현과 감성이 탄산처럼 튀어오른다. 「그림자 여행」​은 정여울 작가를 지탱하고 있는 그림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컨대 나는 모든 존재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매혹된다. 늦은 오후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신ㅂ의 면사포처럼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장아장 걸아가는 아기의 뒷모습에 어리는 포동포동한 그림자도, 다정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갈 때 석양에 비친 아련한 그림자도 눈부시다. 햇빛에 비친 그림자뿐만 아니라 살아온 발자취가 아름다운 사람들은 더욱 아름다운 삶의 그림자를 남긴다. (…) 나도 그렇게 그림자조차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

P. 6 


 이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책, 대한항공과 함께한 정여울 작가의 여행 에세이「내가 사랑한 유럽TOP10」과 「나만 알고 싶은 유럽TOP10」이 조금 상업적인 냄새가 났고 타인의 의지가 개입됐다면 이번 「그림자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작가의 의지 하나로 태어난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이나 즐겼던 여행, 접했던 예술이관통한 본인의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자라는 소재와 내가 꿈꾸는 강인함이라는 부제목은 특히 매력적이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목표가 된 '강인함'이 삶의 표면을 떠받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글의 소재로써 마주하고 있으니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그림자에 담긴 강인함을 배우고 싶었다. 


 아무리 두려울지라도,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강인한 사람이다. 아무리 외로울지라도, 자신의 그림자와 홀로 씨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그가 바로 강인한 사람이다. 내가 꿈꾸는 강인함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빛나는 지성과 타인의 그림자를 보듬어주는 따스한 감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

P. 8 


 글을 단순히 기록이나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글은 스스로를 단련 시키는 수행 도구이기도 하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삶의 고비마다 글을 통해 힘겨움을 감당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녀도 글쓰기를 하며 그림자를 단련하고 강인함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 앞에서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그림자이지만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라면 많은 사람 앞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아픔은 준비가 됐을 때 끄집어 낸다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글로 쓴 아픔은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아픔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글은 곧 준비와 같다. 우울한 색을 지녔던 그림자를 글을 통해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그림자는, 또는 나의 그림자는 찬란히 빛나게 된다. 


 당신 안에 꿈틀거리는 가장 깊고 은밀한 외침을, 당신 안에 깃든 가장 눈부신 희열과 분노와 열정의 시간을 글쓰기라는 모닥불의 장작으로 완전히 연소시킬 때, 글쓰기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닌 '삶을 바꾸는 예술'로 승화될 것이다.

P.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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