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리어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서평]「바람에 날리어」향수는 바람을 타고

 

 

 

 

 

바람에 날리어 -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지식여행

 

 

 

심사위원의 내공

 

 「바람에 날리어」의 저자 이츠키 히로유키는 친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32년간 나오키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일본 문학계의 거장이라 하면 조금 거리감이 줄어들까? 나오키상은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요즘은 경계가 애매해졌다고는 하나 보통 아쿠타가와상은 순수 문학에게 주어지고 나오키상은 장르 소설과 같은 대중 문학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용의자 X의 헌신」이나 「공중 그네」가 나오키상 수상작이라 하면 이해가 쉽다. 

 문학상을 수상 했다는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가장 신뢰하는 의미는 바로 문체가 입증됐다는 점이다. 똑같은 주제로 똑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더라도 문체에 따라 작품에 대한 질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이츠키 히로유키 또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일뿐더러 32년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의미는 문체에 대한 입증이 끝났다는 이야기다. 

 어떤 장르의 책이든지 마찬가지겠지만 문학 중에서 특히 에세이는 문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장르다. 구체적이고 일관된 서사가 없고, 는 조그만 주제에 따라 짧막한 글이 쓰여진 에세이집의 경우 문체가 형편없다면 읽기 괴로운 글이 된다. 그 점에 있어서 「바람에 날리어」는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글이다. 32년간 심사위원으로서 다져진 내공이 어디가겠는가.

 

깊이

 

 나에게 에세이집은 무라카미 하루키로 시작해서 무라카미 하루키로 진행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읽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재미를 무라카미 하루키가 알려줬고 현재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아니라면 읽기를 꺼려한다. 「바람에 날리어」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과 비교한다면,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비교할만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일상적이고 가벼운 내용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바람에 날리어」는 지나간 기억과 아픔을 되새기며 무겁게 마음 속에 가라앉는 글이다. 흑인과의 인종을 구분하는 유럽 사람들과 흑인과의 인종을 차별하는 미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본문 47P) 특히 남다른 시각에 강렬한 인상을 준 글이었다. 오랫동안 문학을 이루어내고 쌓아온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글로 표현해낼 수 있는가 하는 작은 감탄을 하며 그의 깊이를 마음 속으로 인정하게 됐다.

 

고향으로서의 한국

 

 「바람에 날리어」의 글은 하나하나 전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고 흥미 또한 빠지지 않지만 그 중에서 '아카시아 꽃 아래서' 라고 시작하는 한국에 관한 이야기는 단연 백미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던 이츠키 히로유키는 이제는 이국이 되어버린 한국에 향수를 느낀다고 전한다. 고향의 감정을 품고 있는 한국의 땅, 잃어버린 장소에 대한 표현은 가히 '이국'을 조국으로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또 다른 향수를 일으킨다. 

 

 - 즉, 내 마음을 자극하는 것은 그 땅의 자연이고, 풍습이며, 내 유소년기 기억과 단단히 맺어진 '시간' 그 자체다. (P. 96)

 

 - 저 메마른 대기 속, 올려다보면 빨려 들어갈 것처럼 투명한 가을 하늘의 푸르름, 불그죽죽한 낮은 구릉 모양을 한 산의 표면, 겨울의 얼어붙은 걍 표면을 건너는 소달구지 소리, 그런 것들이 문득 시간의 심연을 뛰어넘어 분수처럼 솟구칠 때가 있다. (P. 97)

 

  - 어쩌다 여름방학에 찾아간 내지는(일본) 우리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긴 여름방학을 내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내내 마음속으로 아카시아 나무 그늘의 시원함과 노란 참외의 단맛을 그리며 빨리 우리 땅(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곤 했다. 향수병은 오히려 식민지를 향해 작용했던 것이다. (P. 98)

 

  - 내지는 나에게 이국이었다. 나는 그대로 내가 자란 땅에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땅에서 떠나야 했다. 나 역시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거기에 머물 권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P .99)

 

  - 현재 나에게 '내지'는 조국임과 동시에 '이국'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어머니를 패전 다음 달인 9월 15일에 여의었다. 그건 당시 패전국민들이 겪은 흔한 피해 중 하나로, 지금의 나에게는 그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재외재산보상을 운운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식민지에 보상할 만한 정도의 가치가 있는 재산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나 자신도 얼마 정도로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그건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일처럼 느껴진다. (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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