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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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잘 있지 말아요」독자가 완성하는 연애담, 그것의 전달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든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자 볼테르가 한 말이다. 엄마의 배에서 탄생한 아이가 사회로 나아가며 하나의 인간으로 완성되듯이, 책 또한 작가의 손에서 태어나 독자에게 맞닿을 때 완성된다. 똑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독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

 어떤 사랑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추악하고 더러운 불륜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절실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1권의 책이 10명에게 읽힌다면 10권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잘 있지 말아요」는 37권의 연애담이 정여울이라는 1명의 사람을 거쳐가며 완성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이제는 불멸의 고전이 된 소설부터 시작해서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매체로 뻗어나가며 사람들을 뒤흔들어놓은 사랑 이야기들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완성된 이야기를 전달받아 다시 한 번 나에게로 완성시키는 벅찬 감성을 담은 책, 「잘 있지 말아요」다.

 

 여기 내가 사랑하는 사랑 이야기들을 모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떤 기계장치로도 지울 수 없는 메모리와 같아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주 작은 기억의 촉매만으로도 환하게 되살아난다. 이 사랑 이야기들은 수없이 영화나 연극이나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었지만,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새로운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P.18

 

 



 

 등단한 작가와 하지 못한 작가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문체, 문장력이다. 허를 찌르는 묘사나 기발한 표현은 그들만의 전유물처럼 따라 잡기 어려운 부분이다. 수 년간 갈고 닦은 그들만의 문체 역시 고유하고 유일한 영역이어서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 책이란 문체가 생각보다 꽤나 중요하다. 

 문체는 말할 때의 말투와 비슷하다. 아마 느낀적이 있을테지만 똑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얘기하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 어떤 얘기를 해도 재밌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얘기를 해도 재미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등단한 작가들은 바로 그런 면에서 스페셜 리스트다. 똑같은 이야기를 재밌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책, 특히 서사를 가진 책을 고를 때 등단한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를 차별하는 편이다. 

 

「잘 있지 말아요」프롤로그를 읽다 말고 프로필을 살펴봤다. 정여울이 어떤 작품으로 언제 등단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프로필 어디를 찾아봐도, 인터넷창을 열어 아무리 검색해봐도 그녀의 등단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그녀는 등단하지 않은 작가였지만, 명백히 자신만의 문체를 구축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문장력을 가진 작가였다. 

 그녀의 문체는 약간 감상적이고 힘이 실린 느낌이 들긴 했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가치를 지닌 연애담들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문체였다.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감성, 이야기가 품고 있는 감동, 독자 마음에 스며들게 할 수 있는 표현들을 충분히 글로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관계」 의 진정한 매력은 오직 편지로만 이루어진 서간체 소설이라는 것, 나아가 프랑스 혁명 직전 파리 사교계의 방탕과 타락을 목격한 군인 출신의 작가 라클로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오직 편지로만 전해지는 등장인물의 욕망과 갈등은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은밀한 소통을 엿보는 비밀스런 쾌감을 선사해준다. 아무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전하는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어 몰래 펴본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신자에게 천연덕스레 전달해주는 듯한 야릇한 쾌감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P. 133

 

 






 

 

 그녀의 그 탄탄한 문장력으로 전달하려는 것은 사랑의 다양한 속성 중 하나, 처절함이라 느껴진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사랑에는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잘 있지 말아요'라고 속삭이는 반어적인 성질, 처절하리만큼 가슴을 옥죄는 속성이 있다. 태어나 사랑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없듯, 누군가가 오늘도 울고 아파할 사랑이 떠나간 밤에 위로가 되어줄 처절한 연애담을 들려준다.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들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가장 큰 빛을 내듯이 더 아름답고 눈물겹다. 그게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와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여울이 전달하려는 완성된 연애담들은 분명 혼자가 쓸쓸한 밤에 어울리는 한 권의 책이다.

 

 사랑에는 도통 자신이 없지만, 세상의 모든 사랑 이야기에 늘 마음이 끌리는 나는 이 책을 쓰는 내내 허허벌판에 내던져져 헤매다가 뜻밖의 아름다운 꽃들을 발견하고, 길을 잃은 사실도 잊어버린 채 그 모든 이름 모를 꽃들로 소담스러운 꽃다발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느낌이다. 내가 아끼는 사랑 이야기들로 한 올 한 올 엮어 만든 이 마음의 꽃다발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불어넣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당신의 가슴속에 오직 사랑만을 위해 비워둔 마암의 빈자리가 남아 있기를.

_ 뒷날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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