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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융합 콘서트 - 급변하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힘
최재천 외 지음 / 엘도라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서평] 「창의융합 콘서트」창의융합이란 게 대체 뭐야?

「창의융합 콘서트」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반발심이 끓어올랐다. 말투는 조곤조곤 하지만 마치 멱살을 잡고 창의융합이 아니면 안 된다고 협박을 받는 것 같았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불안을 지적하더니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은 '융합'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개인적인 교양이나 인성, 소양, 감성, 지식, 지혜, 자본 등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한 미래의 방향을 전부 제쳐 두고 말이다.
기분이 나빠졌다. 창의융합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나로서는 앞날이라곤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직장인만 있는 게 아니고, 창의성을 발휘해서 새로운 트랜드를 이끌어나갈 선구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다가 올 카드값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이 코앞인데 전세냐 월세냐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내일 한 끼가 곤란한 사람도 있어. 이렇게 마음 속으로 아우성을 쳤다. '창의융합'이라는 게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우리 생활에 가까운 것일까?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에 어떠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천천히 적응해나가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1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는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두려울 지경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은 '융합'에서 나옵니다.
P. 6



「창의융합 콘서트」는 '창의융합'을 주장하고 이끌어나가는 각기 계층의 전문가 12명의 강의를 모아놓은 책이다. 기술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인문을 소홀히 하지 않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강연 주제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나와 동떨어져 있어 일방향으로만 흐르는 지식을 지양하고, 연사와 청중 사이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유도하는 '담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연사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현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편집했으며, 책의 장점 역시 보충해 놓았으니 연사와 1 대 1로 대화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길 바란다고 한다.
아, 그게 과연 잘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부분만큼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큼직큼직한 글씨에, 강연 그대로의 말투를 옮겨 온 대화체가 가독성을 높여줬다. 본문 곳곳에 삽입된 삽화나 그림, 사진 등은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무엇보다 강의 내용부터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창의융합'대해 보다 쉽게 전달하고자하는 친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임 속 역할은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자동차 안에 갇힌 꼬마를 스파이더맨이 구하는 장면이 나와요. 떨어지고 있는 차를 붙잡아놓긴 했지만 아이가 차 밖으로 올라와줘야 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는 힘에 부쳐서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냥 놔두면 차와 함께 떨어지고 말 거예요. 그러자 스파이더맨이 마스크를 벗어 꼬마한테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스크를 써. 그럼 넌 더 강해질 거야!"
결국 마스크를 쓴 꼬마는 힘을 내서 올라와 구출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똑같은 것 같아요.
P. 135



강의 내용은 주로 연사들의 경험과 사례, 에피소드 등을 통해 '창의융합'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전달하고 있다. IQ 테스트에서 2, 3등 밑으로 떨어진 적도 없고, 일도 제일 죽어라 열심히 하는 대한민국이 왜 10년 넘게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허우적 거리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기도 하고, 남자는 과거에 목표를 가지고 수렵 활동을 했기 때문에 쇼핑 시간이 짧고, 여자는 집 주변에서 견과류나 채소 등을 채집했기 때문에 쇼핑 시간이 긴 것이다 라는 재미있는 진화론 관점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사과 수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엄청난 태풍을 맞아 90%가 떨어진 상황에서, '초속 80미터가 넘는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고 하며 '합격사과'라는 이름으로 10배의 가격에 판 기발한 발상. "저는 맹인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쓰여진 팻말을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볼 수가 없습니다."라는 팻말로 바꾼 것만으로 깡통에 동전과 지폐가 꽉 차게 되는 감동적인 시각 차이. 우리가 접했을 때 내 안에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격적인 이야기까지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이다. 엄마, 아빠, 꼬마, 세 식구가 유태인 수용소에 들어간다. 겁에 질려 있던 꼬마에게 아빠는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는 거라고 달래준다. 줄을 잘 서면 이기는 게임, 작업을 잘 하면 이기는 게임, 그리고 게임을 잘하면 나중에 탱크를 타고 집에 간다고 말한다.
언제 누가 죽어나갈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 인생의 가장 처절한 한 부분을 목격하는 와중에도 꼬마는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이유 하나로 희망을 가진다. 아마 '창의융합'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데드 스페이스 2'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유혈이 낭자하는 굉장히 잔인한 게임이에요. (…)
"며칠 전 '데드 스페이스 2'를 구입했는데 조종할 수가 없네요. 캐릭터를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러자 댓글이 올라왔어요. 마우스로 조종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는 거죠. 그가 이렇게 답합니다.
"전 장애인이거든요.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순간 게시판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진 거예요. 손을 쓸 수 없으면 어떻게 조종하느냐고 댓글이 주르륵 달립니다.
"저는 머리로 조종하거든요."
게시판이 난리가 났죠. 머리로 어떻게 조종하지? 마우스로 조종해야 하는데,. 알고보니 그는 선천적으로 뇌성마비였어요. 팔다리fmf 쓸 수가 없는 사람이었죠.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머리와 턱뿐이었던 거예요. 그동안은 컴퓨터를 개조해 턱을 이용한 인터페이스 장치로 게임을 즐겼는데 '데드 스페이스 2'는 그게 잘 안 먹혔던 거죠. 게시판이 후끈 달아오르니 게임 개발사도 자초지종을 알게 됐겠죠. 이후 개발사측에서 그를 위한 컨트롤 패치를 만들어요. (…)
생각해보세요. 현실에서 그는 남의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에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죠. 그러나 게임 속 세상에서만큼은 전장을 누비며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이 돼요. 한편으로는 그저 잔인하고 반사회적이며, 아이들한테 나쁜 영향만 끼칠 것 같은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데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P.144


'창의융합'이란 것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재밌고, 기발한 발상의 무엇들이 담겨 있으며, 지루하거나 익숙하지 않고, 새롭거나 낯선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 기술과 인문, 게임과 디자인, 디지털과 아날로그. 마치 출발을 잘하는 마라토너와 도착을 잘하는 마라토너가 만난 것처럼, 발단이 좋은 작가와 결말이 좋은 작가가 만난 것처럼 이것들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기술적인 융합을 흥미롭게 이끌어내고 있다.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마침내 소통을 하듯이, 기술과 인문의 만남은 막혀있는 배수관이 뚫린 것처럼 시원스럽고 기분 좋은 융합이다. '창의융합'을 전부 이해하고 앞으로 그것을 이끌어나갈 선구자가 되진 못할지라도, 즐겁고 재밌는 하나의 소통이라는 것만으로 귀중한 만남이었다.
첫 페이지를 읽으며 상했던 기분은 이미 다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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