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비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서평] 「하비비」낯선 것과의 조우

 

 

 

 여행이 무엇이냐고 정의를 물어본다면 여러 사람이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여행은 곧 사진. 추억. 휴식. 인생 등 여러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내 마음 속으로 내려진 여행의 정의는 이렇다. 낯선 것과의 조우. 

 처음 느끼는 대기의 달콤함, 처음 보는 풍경의 아름다움, 처음 듣는 소리의 신비함, 처음 맡는 냄새의 매혹, 처음 먹는 음식의 달콤함 등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감각을 요동치게 만든다. 사진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여행의 물증(?)은 아니지만 내 세포를 단 하나라도 바꿔줄 수 있는 여행의 산물들이다. 

 

 처음 그 문장을 접했을 때부터 이제까지 주구장창 우려먹는 문장이 있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라는 문장이다. 이처럼 여행과 독서의 관계를 속시원하게 정의를 내려준 문장을 보지 못했다. 실제로 독서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먼 곳으로 또는 가깝지만 갈 수 없었던 곳으로 여행을 가는 기분이 든다. 내가 가진 삶과는 다른 낯선 삶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각은 여행과 다름없다. 

 



 크레이그 톰슨의 만화「하비비」는 그야말로 대단히 낯선 것이었다. 최근 출간 된 책 중에 김창훈, 홍승동 씨가 쓴「낯선 것과의 조우」라는 책이 있지만, 어찌된 인연인지 「하비비」를 통해서만 그 제목이 각인되고 말았다. 「하비비」와의 만남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이 었고, 그것과의 조우는 하나의 완벽한 여행과 같았고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이 소설에 의한 인생이었다고 한다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창시절은 만화와 게임에 의한 인생이었다. 지금은 국민 만화가가 된 허영만, 윤태호 선생님들의 작품 중 알려지지 않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누구나 제목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만화, 만화 좀 봤다 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무명의 만화까지 안 읽어본 만화가 없다고 자부한다. 

 만화에 대한 경험치가 쌓일대로 쌓인 나에게, 새로운 만화책으로 신선함을 느끼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소재, 주제, 그림체, 캐릭터라고 생각될 뿐이다. 「하비비」와의 만남으로 기대했던 건 바로 그런 신선함이었다. 크레이그 톰슨이라는 최고의 작가, 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가에게서 얻어내고 싶은 것은 일상을 흔들어줄 낯선 감각이었다. 




 기대할수록 실망이 큰 법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기대를 너무 적게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충족감을 줬다. 크레에그 톰슨이 그려낸 인생, 이슬람 세계, 생명, 세계관, 사람은 너무나 거대해 담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굉장히 추상적으로 묘사된 그림체는 이걸 '만화책'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음악은 소리로 표현하는 예술이고, 문학은 글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하비비」는 만화와 컷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었다. 「하비비」에서 표현 된 신비로운 이슬람 세계, 매혹적인 아랍 문자, 흥미로운 코란의 이야기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야기 중심을 구심점으로 빨려들가는 큰 힘이있었다. 




 일반적으로 예술에는 '드러내기'와 '낯설게 하기' 두 가지 기법이 있다. 작가 혼자 만의 세계에 갖혀 독자를 헤메이게 하지 않기 위해 어느정도는 '드러내며',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시킬 수 있으며 감정의 동요를 유발할 수 있는 '낯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어놓아야 독자들에게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보면「하비비」는 '낯설게 하기'에 약간 치우쳐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웹툰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림체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하비비」의 그림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세계와의 단순한 접촉만으로 당신의 색(色)이 바뀔지도 모른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하비비」는 그런 힘을 가진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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