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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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작지만 소중한 행복한 일상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 씨에게(이하 하루키 씨) 독일의 한 신문사에서 편지가 왔다. 독일에 있는 인기 텔레비전 문예비평 프로그램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다루었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레플러 여사라는 고명한 문학평론가가 "이런 책은 이 프로에서 추방해야 한다.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의 탈을 쓴 패스트푸드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했다. 그러자 여든 살의 사회자가 나서서 하루키 씨를 뜨겁게 변호해주었고, 결국 레플러 여사는 화가 나서 십이 년 동안 지켜온 고정패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무라카미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니까 원래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요, 정말로" 하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고해주고 싶은데.

P. 107

 

 사실 하루키 씨의 소설에 관한 '이런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긴 한다만 나에게 하루키 씨의 소설이란 매우 소중한 존재다. 문예창작과에 처음 입학해서 선배의 추천으로 읽어 본 「해변의 카프카」는 책의 세계로 인도시켜 준 아주아주 고마운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권만으로(상, 하 두 권이었지만) 하루키 씨를 찬양하게 되어 그 선배에게 열렬히 '하루키 세계'를 토론하며 노벨문학상을 언급 했을 때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음… 나도 하루키 소설을 정말 좋아하지만 아마 노벨문학상을 받는 일은 없을 거야." 그때는 그토록 하루키 씨를 찬양하는 선배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실 하루키 씨의 소설은 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고 이제는 조금은 그 뜻을 알 거 같다. 

 

 그런데 그의 에세이의 평가는 어떤가하면, 하루키 씨의 진가는 소설보다 에세이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의 독특하고 기묘한 세계의 본질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사물이나 일상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 아주 같은 생각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의 에세이는 삶의 소중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한 해에 한 번 정도 열리는 전국 고양이 회의에서, "이 혹독한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고양이들도 시스템의 재정비 및 과감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나? 같은 결의가 채택되어, 전국의 네코야마 씨들이 신사 정원의 한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그래, 그래. 그럴지도 몰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을까?

P. 27

 

 놀랍도록 기묘한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에세이,「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주말 예능과 같은 대우를 해주고 싶다. 그저 멍청하니 글을 따라 읽어내려가기만해도 하하, 후후 하는 여러 종류의 기분 전환이 된다. 조금 더 주관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인위적인 느낌이나는 개그 프로그램보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더 아껴보게 된다. 2~3개의 에피소드를 읽고 책을 덮은 뒤, 라랄라하는 발랄한 기분으로 다른 일을 한다. 계속해서 읽으려하면 몸이 견디질 못한다. 마치 일생에 남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소중한 재미를 가불 받아 써버리는 소모적인 느낌마저 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하나씩 꺼내 읽게 되는 복주머니 같은 에세이다. 또한 서점에 '진열된 하루키 씨의 책이 흐트러져 있으면 가지런하게 바로해놓는다' 라고 표현하며 팬을 자처한 오하시 아유미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주는 꺠알 같은 재미도 빠트릴 수 없다.

 

 굵게 만 김밥이란 정말 참 훌륭하다. 여러 가지 재료들이 모두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김밥 양끝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온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P. 75

 

 하루키 씨의 소설이 문학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는 논외로 접어두고, 그는 분명 많은 팬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작가다. 출간하는 책마다 대박을 터트리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간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면, 담배를 같이 피우거나,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그가 쓴 글을 읽어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글에는 반드시 쓴 사람의 채취가 뭍어있기 때문에 솔직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하루키 에세이는 하루키라는 독특하고 기발한 인간을 알기에 아주 좋은 글들임이 틀림없다.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분명 하루키 씨의 에세이도 사랑할 거라 생각한다.

 

 체크아웃하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차 시동을 걸고 (부릉!) 시가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수동변속기는 마치 따뜻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를 때처럼 부드러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아침을 한 다스 고르라 하면 아마 이날 아침이 그중에 들어갈 것이다.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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