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알려준 것들 - 일상에서 건져올린 삶의 편린들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정선희 옮김 / M&K(엠앤케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인생이 알려준 것들」재해를 버티는 일상의 힘

 

 

리가 아는 개그우먼 정선희 씨가 번역을 맡은 가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다. 정선희 씨는 옮긴이의 넋두리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지금 이 도시에 차고 넘치는 따스하고 친절한 '힐링 도서'도 아니고, 카리스마 넘치는 '멘토'의 힘찬 메시지와도 거리가 멀다. 

P.12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이, 차고 넘쳐 나에게로 흘러들어 온 힐링 도서, 멘토의 메시지였다면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다. 내 입장을 말해본다면, 힐링과 멘토가 너무 지겹다. 얼마전에는 어느 분야에서나 마치 화장품 샘플을 끼워 넣어주듯 소셜(social)을 어거지로 집어넣더니 요즘엔 힐링과 멘토가 대세다. 이런 현상을 보고있노라면, 인생을 살면서, 마치 비를 맞듯이 어느정도 지니고 있어야 할 상처조차 전부 과도하게 반창고를 붙이는 것 같다. 눈 가리고 아웅하다가 멀쩡하게 성장해야 할 면역 체계를 파괴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어싱 구멍을 상처라 여겨 자꾸 '치유'해 버리면 곤란한 것처럼. 정선희 씨는 번역을 하며 느꼈던 고단함을 '힐링 도서'가 아님에도 가와카미 미에코와 함께 했던 시간 웃고 있었다고 말한다.

 


 

 참, 그건 그렇고 오래전에 티비에서 봤던 개그우먼이 번역을 했다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긴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선희 씨가 일본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보지만, 집에 티비도 없고 라디오도 듣지 않는 나로서는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번역이란 건 그냥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쪽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제 2의 창작이라는 게 정설인 모양이니 실로 어려운 일이라고 봐야겠다. 

 일본어로서 흘러가는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국어의 흐름으로 옮긴다는 일이 보통의 '일본어를 잘한다' 라는 모양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개그우먼 출신의 그녀가 그런 '창조적인 일'을 잘 수행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과 걱정, 그리고 관심과 호기심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 책은 초점이 너무 과도하게 '정선희 씨의 번역'으로 맞춰져 있다.

 


 

 가와카미 미에코 씨는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에다가 가수로서 앨범을 내고, 시집을 통해 문학상을 수상한데다가 영화배우로도 데뷔하여 신인상을 휩쓸었던 엄청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책이라는 구성물 중에서 꽤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뒷표지 부분이 온통 정선희 씨의 번역에 대한 지인들의 감상이라니…. 물건을 사러 갔다가 물건을 파는 누나에게 정신을 빼앗긴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출판사는 출판사 나름대로 정선희 씨의 프로필에 원저자와 번역자가, 삶, 생각, 유머감각, 성찰 등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고 변명을 하며 초점이 흐트러진 이유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책 내용 중 정선희 씨에 대한 어떤 모습도 찾아볼 수 없으니(당연하지만) 그녀들이 닮았는지 아닌지는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이건 아무리봐도, 상대적으로 국내에 인지도가 부족한 가와카미 미에코 씨이기 때문에 정선희 씨의 번역이라는 등에 업히려 했다는 상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뒷표지에 대한 아쉬움은 편집으로도 이어진다. 책 안에는 여기가 바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주는 듯이 글씨 색깔이 바뀌며 밑줄이 쳐진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거슬린다. 문제를 풀기 전에 답안지를 봐버린 느낌이랄까. 추리 소설을 읽다가 범인이 누군지 알만큼의 과도한 힌트가 노출된 정도의 느낌. 

 이런 과도한 친절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주제와 핵심을 찾아나가는 모험적 요소를 뺏어가는 셈이다. 이런 것은 인터넷 소설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일과 다를 게 없다. 만드는 이의 의도대로 작위적인, 글이 아닌 다른 무엇의 작위적인 수단을 첨가하는 것. 그것과 똑같이 거북하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책은 꽤 잘 읽힌다. 취향을 좀 탈 거 같긴 하지만 굉장히 재밌기도 하다. 아마도 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히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인상이 있다. 인생이 알려준 것들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대단하고 거창해 보인다. 어떤 철학적, 문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인가 두둥! 이런 느낌이다. 인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인생의 방점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 영광의 날 같은 손꼽을만한 이벤트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일생에서 맛 본 소소한 에피소드, 거기서 알아 낸 작은 행복감들을 이야기 한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대부분은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알아가고 배우고 느끼는 것 대부분 역시 일상에서 우러나온 것! 과도한 업무나 부담스러운 경제 상황, 거북한 인간관계 등이 마치 재해처럼 다가오는 삶이지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상을 통해 그것을 버티는 힘을 말한다.

 


 

 일상의 이야기는 그렇게 흐르고 흘러 3월의 기억,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에 대해 말하며 절정으로 흐른다. 기승전결이라는 일반적인 구조에 부합하는 4개의 챕터 중 3번째에 위치하고 있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지진이라는 재해의 극악무도함과 일상이라는 평온함을 극명히 대조시키켜 하이라이트에 적합하다. 

 '우리들을 덮치는 느긋한 그 무엇' 이야기에선 지진피해를 겪음으로 걱정할 수 있는 정상성 바이어스1와 게슈탈트의 붕괴현상2을 이야기 한다. 가만히 읽으며 '아, 역시 지진이란 무섭구나. 대륙판이 느긋한 나라에 살아서 다행이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우리의 평소 삶이랑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걸 느꼈다. 

 게슈탈트의 붕괴 현상. 우리 지금 사회도 돈, 돈, 돈이나 성공, 성공, 성공, 스펙, 스펙, 스펙을 대뇌이다가 대상에 대한 정의를 잃어버린 붕괴 사회가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한 판단을 느슨하게 내버려서 당황하지 않는 정상성 바이어스를 느낄정도의 충격적인 사회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지진이라는 큰 재앙을 겪지 않았음에도.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만 일상, 결국 삶'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대재앙에 대한 아픔도, 사회에 대한 아픔도 결국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가와카미 미에코 씨는 아마도 일상으로 되돌아 가려는 사람들의 힘을 느끼고 이런 마무리를 짓지 않았을까. 그녀의 인생이 알려준 것들은, 재해와 같이 닥쳐오는 아픔들과 그것을 버티는 일상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를 추진해온 거대한 엔진 중의 하나는 이러한 영문 모를 수수게끼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싶다. 종교도 과학도 전쟁도 사랑도 철학도, 결국 '생을 유지하는 것=죽음에의 공포, 그것에 대한 해명과 극복'을 원동력으로 날마다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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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물에 대한 판단을 느슨하게 내려버려서 오히려 당황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심리 상태
  2.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대뇌이다 보면 그 대상에 대한 정의를 잃어버리 게 되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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