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림을 만날 때 - 인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명화 이야기
안경숙 지음 / 북웨이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그림을 만날 때」일상의 예술
 
 
 

 

일상의 예술

 
예술은 우리 삶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교양이 있어야만 접할 수 있는 고매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일상적이기도 하다. 책, 소설을 문학으로서 내 삶에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도 그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문학, 그림, 음악 등을 예술로서 얻게되고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로 느끼게 된 지금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다이버 부인>을 보고 첫사랑이라도 발견한 듯 전율하는 가슴을 부여잡았던 게 시작이었다. 미술을 전공하던 연상의 여인과 한 이불을 덮게 되고, 편지에 명화 한 점씩을 프린트해 보내던 여자 친구도 생겼었다. 아마 나처럼 그림과 자신의 삶이 전혀 무관하다고 느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혹은 뒤늦게나마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림을 내 삶을 투영하는 예술로서 받아들이기 아주 좋은 입문서다.

"미술 전공하셨나 봐요?"
전시회에 자주 다니다 보니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미술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김없이 '참 별일이네' 혹은 '취미가 고상하군' 하는 반응이 되돌아옵니다. 그림이 아직도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고매한 예술, 다시 말해 이상의 동반자가 아닌, 감상해야 할 그 무엇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현실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심 아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록해온 소소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P. 6

작가는 50여점의 명화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작품에 대한 고지식한 설명이나 정보를 늘어놓는 게 아니다. 삶과 밀접하게 맞닿은 부분을 보여주고 작가가 느낀 감정이나 상상력을 차분하게 대화를 건내듯 적어놓았다. 미술이라고 어렵게 생각하거나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독자들에게 편한 마음을 가지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미술 작품의 프리뷰 형식으로서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싶다.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지자 남자는 달리기 시작합니다. 여인도 깜짝 놀라 드레스 자락을 쥐고 뜁니다. 십중팔구 여인보다는 남자가 더 빨리달릴 테고 그러다 보면 금세 여인을 따라잡게 되겠지요. 근처에 몸을 피할 장소를 남자가 알고 있다면 여인을 혼자 두고 가기 안쓰러워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 수도 있겠지요. 여인은 약간 당환한 표정을 짓ㅈl만 이내 손을 잡습니다. 사실 아까부터 뒤에서 오던 남자가 궁금하던 참이었거든요. 이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함께 달립니다. 이거 나름대로 괜찮은 스토리다 싶었는데, 아뿔싸! 한 가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인의 양산입니다. 여인은 처음부터 양산을 쓰고 걸었던 겁니다.
P. 20

우리가 평소에 예술을 얼마나 등한시하며 살았는지, 작가는 재밌는 실험을 소개해준다. 미국 워싱턴 지하철역 모퉁이에, 불과 열네 살 때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협연해 이름을 날리고 카네기 홀 데뷔는 물론, 세계 무대를 누비고 다니며 몇 차례의 내한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던 조슈아 벨이 등장한다. 그는 자리를 잡고 활을 가다듬으며 공연을 준비한다. 5분 10분, 연주는 계속 되지만 누구 하나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분주히 사라진다. 연주 시간은 40여 분으로,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단지 몇 사람만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몇 푼 던져넣을 뿐. 이 '실험'은 조슈아 벨 자신이 낸 아이디어로, 전문 연주가와 거리 연주가의 연주를 얼마나 구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작가가 책에서 말하는대로 명연주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없다는 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저 앞만 보고 돌진하느라 흘러나오는 음악 몇 소절에도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린 지금도 일상에 놓여있는 가치있는 예술을 지나쳐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단 음악만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바쁜 발길을 재촉하며 문 앞을 지나고 있는 미술관 안에 당신의 마음 속 풍경을 바꿀 그림 한 폭이 걸려있을지도 모른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속의 풍경까지 바꿔놓는다."

우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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