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쟁경」말은 칼보다 아름답다
 
 

 

말은 칼보다 아름답다

 

 

말로 하는 싸움, 논쟁은 종종 주먹이나 무기를 들고 육체로 행하는 싸움보다 화려하고 치열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희열을 준다. 소크라테스가 충중들을 모아놓고 영원히 기록될 변명을 한 일1이 그랬고 큰 인기를 모았던 일본 법정 드라마 리갈 하이의 변호사들이 그랬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라는 말 한 마디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킨 일만 보더라도 말이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껏 세상에는 예술로까지 평가될 '말'을 뿜어냈던 논변가들이 존재하고 「쟁경」에서는 춘추 전국 시대부터 청나라까지, 보고 배울 수 있는 우수한 논변의 사례들을 수록해놓았다.

춘추 적국 시대로 접어든 뒤 논변을 불꿏이 활활 타오르듯 그 기세가 자못 왕성한 형세였다. 혀는 검과 같고 입술은 창과 같은 논변가들이 예리한 언사로 상대 논객과 날카롭게 맞서는 논변 장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격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른바 말솜씨로 천하를 주름잡는 유세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P. 6
 
말이란 건 정말 재밌는 것이어서, 회색을 흰색이라 주장할 수도 있고 검은색이라고도 설득할 수 있다. 흔히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면서 완벽하다할만한 진리를 뒤집어버리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말이다. 
정나라의 어느 부잣집 자제가 물을 건너다가 발을 헛디뎌 유수의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 어떤 사람이 그 부잣집 자제의 시체를 찾아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이 부잣집에 가 돈을 받고 시체를 팔려고 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은 진기한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부잣집을 보고 시체의 값을 높이 불렀다. 부호는 하는 수 없이 수레 다섯 대만큼의 책을 읽어 학식이 풍부하다는 등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등석이 부자에게 한 수 가르쳐 주며 말했다.
"안심하시오. 당신 집 말고는 시체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못할 것이오."
부호는 등석의 말이 옳다고 여겨 집으로 돌아가 태연하게 기다렸다. 시체를 찾은 사람은 부호가 시체를 사지 않으면 시체가 썩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가 하는 수 없이 등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등석이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안심하시오. 부호는 당신 말고는 반드시 다른 데서 시체를 사지 못할 것이오."
이것이 천고의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부호색시' 고사다.
P. 62
 
「쟁경」은 스펙 쌓기에만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스펙이라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지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큰 위안이 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바, 의견을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한지난 티켓이나 다름이 없다. 현대에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급속도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식탁에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중학생 딸을 둔 중년 가장이나,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남북간의 문제만 보더라도 소통의 부재는 일상과 사회 깊숙히 파고 들어온 큰 문제다. 인류의 화합과 협동을 이끌어내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 소통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면 어쩐지 입 바른 소리만 줄줄 늘어놓는 흔한 자기계발서들 보다는 「쟁경」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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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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