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오노 나나미의 묘사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그녀의 분위기가 아직 내 몸에서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병원에서 채혈을 기다리며 읽었던 그녀의 책이 인상에 깊이 박혀있다. 황금빛을 물든 오후 2시의 잠든 로마 거리가 문득문득 느껴진다. 아마 병원 도서관에서 홀로 느낀 감정이 그대로 맺혀있기 때문일까. 나는 그때 정지된 시간 안에 혼자 사고하는 아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 게 됐는데 그 도서관은 관계자 외에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건물 안이라 빛은 들어오지 못했지만 그 순간은 가히 황금빛으로 물든 황홀한 순간이었다. 「뉴욕 그리다 빠지다 담다」의 작가가 허드슨 강을 보며 느낀 감정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미술 작품 하나하나가 인생에 맺혀버리는 소중한 경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럭셔리하면서도 경제적이고 게다가 여술적 가치가 넘치는 그런 미술관 레스토랑이 있다면 어떨까.(중략) 레스토랑 창문가 테이블에 앉아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허드슨 강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속의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듯 했고,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해 주위의 조용함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졌다.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 굳게 다문 입과 강렬한 눈매를 가진 그녀는 한 손으로 힘차게 횃불을 뻗어 올리고 있었다. P. 29
팀 버튼의 일러스트집을 사는 선배가 있었다. 소설을 쓰던 선배는 그림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있다고 했다. 글과 그림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덧 그 선배의 그때 나이를 훌쩍 넘기고,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와 사귀게 되고,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한 눈에 전율을 일으키는 그림을 만나며 생각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 그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상력이 머리 속에서 꾸물꾸물 거리며 자신의 영역을 표현한다. 그리고 어느 예술과 같이 이야기가 담겨있다. 남의 상상력을 엿보는 일, 접촉하는 일은 너무나 즐거워 인생에서 예술을 빼놓지 못하게 한다. 
1898, 존 콜리어 작의 고다이버 부인이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마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난 것처럼 일순간 모든 세포가 이 작품에 대해서만 반응할 정도였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예술 작품이 있을 것이다. 뉴뮤지엄의 작품들은 벽에 걸려 말이 없는 갤러리의 2차원적인 작품이 아니다. 3차원과 4차원을 넘나들며 공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현대미술작품이었다. P. 71 
「뉴욕 그리다 빠지다 담다」는 작가가 뉴욕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을 순례하며 적은 여행 에세이다. 책의 구성이나 디자인은 소장하고 싶어질만큼 예쁘고 잘 꾸며졌지만 내용은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 에세이가 지향하는 내용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일반적인 정보나 가이드가 아닌 그녀의 삶과 접촉한 예술 이야기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뉴욕 그리다 빠지다 담다」에선 이렇다 할 그녀만의 이야기가 부족하고 사진 또한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사진들이다. 독자가 원하는 사진은,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닌 사색으로 빠져들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배고픈 골방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