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바라보고 있는, 살아가고 있는 인생은그저 인생이라는 두 글자, 다시 말해 문자일 뿐입니다. ‘인생‘
이라는 두 글자의 뒤안길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의지야말로 ‘인생‘이라는 글자로 표현된 실체이며, 그 표상을 고통으로 덧칠하는 주체도, 권태로 변화시킨 주범도 다른 누군가가아닌, 이 세상과 사회가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 P7

나는 늘 같은 시간에 산책하려고 노력한다. 산책은 직장과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발해 같은 시간에 끝마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산책할 때는 생각할 것들을 챙겨간다. 어려운 과제들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행을 두지 않는다. 산책의 동료는 고뇌로 족하다.
- P26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정신질환이 유행처럼 번지고있다. 바로 우울이다. 거리에 나가면 우울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자들이 발에 치인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질병이라고 정의한다. 우울은 말 그대로 정신이 우울해졌다는 뜻이다.
- P29

그래서 우울을 핑계로 얼마든지 나태해져도 그 게으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우울하다는 변명으로 얼마든지 무감각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기분이 우울해서 타인의 고통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마디 툭 던짐으로써 간편하게 면죄부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함에 취해 있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불감증이며, 이 단계에서는 사회적 인습 전반에 무기력해져 자기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에 빠지게된다.
- P30

아직 이르다고 생각될 때 죽음이 찾아온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망상이다. 죽음은 그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어린아이가 어쩔수 없이 어른으로 성장하듯 죽음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 P46

우리는 항상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삶이 허락된 이유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다.
- P48

우리가 할 수 있는 죽음의 준비는 오직 이것뿐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두려움과 아쉬움과 남겨진 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죽음의 눈치만 보던 우리들이 당당하게죽음과 대면하여 공포도, 후회도, 근심도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 보다 나은 삶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막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좀 더 의연하게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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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록 조종당하는 양부모에게 우리가 더한층 동정심을 느끼게 됐다고 해도, 왜 자연선택이 뻐꾸기가 양부모를 그토록 조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왔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숙주의 신경계는 빨간입이라는 마약에 대한 저항성을 진화시키지 않았는가? 아마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뻐꾸기는 겨우 수백 년 전부터 현재의 양부모에게 기생을 시작했고, 향후 2~3백 년 사이에는 현재의 양부모를 포기하고다른 종을 희생양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 P456

유전자는 왜 세포 속에 모이게 되었는가? 세포는 왜 모여서 다세포 생물체를 만들게 되었는가? 그리고 생물체는 왜 내가 ‘병목형 bottlenecked‘ 이라고부르는 형태의 생활사를 갖게 되었는가?
- P468

세상에 있는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의 그물이 합쳐지는지점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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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은 박완서 작가님 책을 냥냥독서모임에서 같이 나누었던 두 번째 시간 (다음달도 박완서 작가님 책으로 하면서 세 번째 연속해보기로 도전!). 명성을 알았지만 다른 책들을 읽느라 작년 유년기 싱아편으로 처음 박완서 님의 책을 읽었다. 새삼 독서모임의 고마움을. 그리고 거의 1년이 되어서 또 추천으로 성년기를 읽게 되었다. ‘그 산‘은 20대 초반의 자전 소설로 ‘싱아‘편과는 닮았지만 많이도 달랐다.

🍉 격정의 시대를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 나각다던가, 술술 읽히는 문체, 역사에 이입되어 기록이 아닌 삶으로 느껴지는 전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유년기 ‘싱아‘에서 그 괜찮았던 오빠가 가족의 부담이 되었고 심지어 오빠의 멘탈이 깨지는 모습에서 유년기의 문화나 그 시대적 자산들이 와르르 무너져 보였다. 주인공 완서의 엄마는 시대보다 앞선 사람이라 여겼는데, 이번 성인기 ‘그 산‘에서는 양반 운운하는 자세를 비롯해 여러면에서 빌런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공산당 마부 신씨보다) 세상도 그렇다. 아니다. 세상은 계속 변해갔다.

🍉 ‘그 산‘편을 보며 전체적으로 느낀 한가지라면 ‘솔직함‘이었다. 주인공 완서가 자칫 현대의 사상적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공산당과의 어쩔 수 없던 관계, px에 취업을 하면서 보여지던 오만방자함, 그리고 첫사랑을 하며 보인 완서의 의외의 모습까지. 이미 현재 상당한 입지를 가진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날 것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국군과 공산군을 대하는 삶의 모습. 보이지도 않는 ‘전선‘은 몇 번이고 한반도 위를 오가고, 사람들은 그에따라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이런 솔직함이 영웅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 가장 좋았던 장면. 초반 완서가 올케언니와 함께 빈집을 터는 도둑2인조로 활약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너무나 귀여웠다. 역시 워맨스는 너무도 소중한 것. 앤과 다이애나, 조와 베스, 체리와 지수, 아이유와 유인나 아니겠는가. 가장 놀란 일. 정작 이 책을 추천한 세상 소중한 애리냥은 이 날 갑자기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애리냥 주니어 냥냥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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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밤 열 시 반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은이), 김석희 (옮긴이) 문학과지성사 2020-07-31, 184쪽, 프랑스 소설

☔️ 7월 바빴다 (그런데 6월도 바쁘지 않았나? 8월도 이미 바쁠 예정인데). 7월에 바빴다고 확실히 느낀 게 읽은 책이 세 권이다. 백수 된 이후 처음. 바빠도 나를 위해 읽고, 이참에 엄청나게 밀린 읽은 후 기록도 모두 하나씩 남기기로 8월 첫날 결심. 그래서 가장 최근 완독한 이 책부터 차례로 올리기로.

☔️ 문낭사 2025년, 7월 모임 책. 낭독으로 완독 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멍해진 책. 같이 낭독한 두 분이 아니었다면 기록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어려운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이나 줄거리 자체는 사실 단순하다. 마리아는 남편 피에르, 딸 쥐디트, 친구 클레르와 자동차를 끌고 스페인 여행을 하던 중에 남편과 친구의 불륜 기류를 감지한다. 마침, 폭우로 머물게 된 마을에는 치정살인 사건으로 아내와 아내의 내연남을 권총으로 죽인 로드리고란 인물이 수배 중이었다.‘ 마리아는 로드리고와 같은 입장이라며 수배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 이런 간단한 줄거리가 무겁게 느껴지고 지루하기도 하면서도 막상 완독하고 나니 여운이 많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이 어려운 건지 이런 분위기의 프랑스 문화가 어려운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읽고 나서 프랑스 영화 두 편이 생각났는데 하나는 이 책만큼 어려웠던 에바 그린 주연의 <몽상가들>이었고, 또 하나는 이해될 것 같았던 안톤 옐친 주연의 <5 to 7>이었다. 프랑스의 문화가 궁금하다.

☔️ 마리아가 로드리고를 탈출시키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거의 마지막까지도 나는 로드리고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마리아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알코올중독 기운도 있으니. 마리아는 로드리고에 자신을 투영했지만, 실제 로드리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백 명이 비슷한 상황이라도 다 같은 상황은 아니며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마리아가 로드리고처럼 치정살인이 아닌 공허한 삶을 인정하는 결말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오히려 내게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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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닥맨션
고유진, 김상희, 김솔림, 박서영, 성민, 원혜영, 은도, 이현주, 재영, 전소현, 쫑, 초원, 한아름, 한정희 (지은이) 삼림지 2025-03-17, 288쪽, 에세이

#독립출판

🍉 제주북페어에서 만난 책을 계속 못 읽다가 6월 북토크를 앞두고 읽었다. 책은 서울이나 대도시가 아닌 지방으로 스스로(?) 알아서 들어가 한 달살이든, 여러 달 살이든 진짜로 삶을 살아가는 로컬생활을 담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로컬생활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려웠는데, 책을 완독하고 나니 막연하게 로컬이란 이런거라는 생각이 들다가, 북토크에 참가하면서 막연함이 선명해졌다.

🍉 여러 사람의 로컬 생활을 담은 책 중 구 인천 도심인 동인천 신포동을 더 관심 있게 읽었다. 나의 본가인지라. 동인천은 인천에서 조금 낙후된 편인데 내겐 그런 낙후함도 편안한 이미지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이곳도 많이 변했다. 동인천 뒤쪽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고, 동인천과 인천역 사이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은 관광지가 되었다. 배다리, 개항로, 신포동은 많이 바뀌었는데 때로는 낯설다. 미술 시간 자유공원에 가고 놀았던 중고등학생 시절. 외지에서 온 분의 시선은 어떨까.

🍉 책을 읽으며 파워 Eeee형이 아니면 로컬생활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분명 책 속 몇몇 분에게는 강한 내향형의 향기가 났다) 북토크에서 질문해보니, 각자의 서로 다른 삶 속에서 방식이 다양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모임은 기록 모임에서 시작되었는데, 책이 가지는 힘 (물성이 가진 힘)이 있어서 책까지 냈다는 설명도 북토크에서 들었다. 로컬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을 강연이 아닌 참가자 전원과 같이 얘기를 나누었는데, 단순히 지방 생활이 아닌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뻗어나가고 그 지방 자체적으로 연대하는 삶으로 합의가 되었다.

🍉 공동 저자의 한 분인 김솔림 작가님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솔림 작가님이 만든 완주 생활 영상을 보고 난 후 두세 달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외가나 친가, 혹은 학교를 그쪽으로 다녔냐는 질문에 솔림 작가님은 모두 아니라며 그냥 완주가 좋다고 했다. 그때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완주 로컬생활이 이해되었다. 나의 용인 생활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친척도 지인도 없고, 학교도 직장(심지어 직장도 멀었다)도 아닌 정말 아무것도 없던 용인. 용인에서 친구들을 얻고 여러 기회를 얻고 있다. 나의 용인 로컬 생활은 나로부터 뻗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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