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1.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을 경우(현대지성출판사 57-93)

소감 왜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하는지를 진리가 억압받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입장에서 조목조목 논리를 펼치는데, 그 논리에 압도당했다. 많은 사람들, 아니 ‘나‘라는 기준에서 당연히 진리가 억압받지 않게 토론의 자유가 있어야지 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 토론을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건 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논리일 것이다. 그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의 논리 도덕 진리에 의해 범죄자로 사형당했으며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을 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를 박해한건 도독적인 현인 마르쿠스아울렐리우스 황제였다, 내가 믿는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이들이 쓸데없는생각(?)을 못하게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는건 얼마나 무서운 무지인가

구절 : 정통기독교인들은 최초의 순교자들을 돌로 쳐죽인 자들이 그들보다 더 나쁜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박해자들 중 한 사람이 사도바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생각이 달라질것이다 75

이유 : 저 구절을 나에게 계속 심어주어 나로하여금 무지의 단호함을 경계하게 하고 싶고 우리가족에도 주고싶다.. 근데 못주겠지

발제 : 우리는 나는 얼마까지 어느선까지 자유로운 토론을 용인할 수 있는가? 시간 낭비라고 상대방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검은 마음이라고 미리 결론 내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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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인류의 복리를 위해 필수적인 개성

소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자유를 허용 해야한다는 저자의 논리에 우리 사회의 배타성과 나와 우리들의 꼰대기질을 반성해봤다. 저자는 나보다, 지금 여기보다 더 진보적이었구나 라는 감탄을 했는데.. 그랬는데.. 바로 이어지는 논리에서 감탄 뿐 아니라 큰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잘 발휘하지도 못하고 기계보다 능력도 떨어지지만,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 왜 이리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 모자라고 약한 인간의 내면의 힘을 믿는다고, 그러니 타인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개성과 삶의 방향을 인정해주자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발전이라고
저자는 저자가 살던 배타적 상황이 영웅적 인물을 출현할 수 없게 한다고 탄식한다. 지금의 시대에도 저자의 탄식은 그대로 적용 된다.

구절:
반면에, 오늘날 이 세계의 좀더 개화된 지역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낼 수많은 생물의 종들 가운데서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그런 자동기계로 대체해버린다면, 그것은 이득이 아니라, 상당한 손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어떤 정해진 모형을 따라 만들어져서 정해진 곳에 배치되어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해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내면의 힘을 따라 사방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게 되어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141-142p

이유: 자유론이란 책이 이런 따뜻한? 책인지 몰랐다. 이 앞 부분에서 저자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논리를 이끌어 간다. 각 사람의 능력이 떨어 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사람이 그 스스로를 인정하고 개성을 발휘해 나가고 성장시켜야 하는 일이 단지 효용성의 문제만은 아닌 것에서 무언가 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위로를 받았다.  

발제 1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자유와 다양한 상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결합될 때, ˝개개인의 활력과 갖가지 다양성이 생겨나고, 이 둘이 합쳐져서 ˝독창성˝을 이루게 된다.
독일의 빌헬름 폰 훔볼트 남작이 쓴 <정부의 활동범위와 의무들> 11-13쪽 저자가 인용 , 138p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가정과 직장) 어떻게 이 두 조건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한다.

발제 2
저자가 쓴 169p 논리를 보고 다음가 같은 의문이 들었다.
1800년대의 영국과 다르게, 지금은 대중의 의견을 무시하는 특권이 사라진 건 아닌가?
정말 대중의 의지에 저항하고자 하는 생각이 정치인에게서 사라진 것인가?
정말 대중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하는 그 어떤 사회적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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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가지는 한계

소감:
내가 나의 문제라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함해 내맘대로 내 모든것을 다 정하고 행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느 누구도 본인자신보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에게 엄청난 책임을 주는 무한책임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문제를 내 마음대로 무조건 할 수 있는 간단한게 아니고, 사회 또한 그런 개인의 무거운 책임을 함부로 개입도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여전히 쉬운문제가 아니나.
이 개입이 지금의 복지라던가 참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제한에 관해서인데..이 제한을 제일 좋게하는건 존 스튜어트 밀의 의견처럼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관에 세삼 놀랐다. 강제와 강압이 아닌 깨우쳐주는 교육관 이라니! (현대지성 173p)
사회가 가지는 개인에 대한 한계에 대해선.. 꼰대처럼 굴지말라며 (현대지성174p), 사회의 전제가 올바르더라도 개인의 다양한 사정에 적용되기 어려운 피상적인거라 잘못 적용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는(175p) 지금의 시대보다 더 세련되어 보여 놀라웠다. 존 스튜어트밀의 최종판단이 결국 개인이라는 말은 무섭기까지했다.(175p)
무서운(?)밀의 논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 생활을 하며 조언을 받아 감사했다. 사회에서 인간관계에 무언가 개인지도를 받은 느낌이다. 공공연히 밝힐 필요는 없지만 (난 공공연히 저런 그룹들이 더 싫다), 우린 싫어하는 사람을 피할 권리와, 그에게 악영향을 받는 이에게 경계하기를 당부할 의무, 그리고 타인의 발전될 만한건 사심 없이 응원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조언하고 설득하는 방법이라니! (177p)
우리의 어설픈 조언중 상당수가 사실 조언이 아닌 밀이 말한 도덕적인 악덕 (다른 사람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것을 즐기는 것, 다른 사람들을 폄하함으로써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우월의식,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하는 이기주의) 일수도 있고, 선량한 조언이 사실 선량하지 않거나 무능력한 조언일 수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선을 정확하게 아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구절:
˝신들에게 잘못한 일들은 신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해야 한다˝ 한 사회 또는 그 사회의 공직자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해서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따라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고 있다.
204p
이유: 막연한 우리의 도덕성으로 실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자들을 다수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스스로를 선량하다 믿는 시민이 되지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pick 했다.

발제:
˝하지만 문명화된 한 사회가 미개한 다른 사회를 강제적으로문명화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악법으로 인해고통당하는 한 사회에 속한 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닌데도,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만족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제도를,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들에게서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개입해서, 그 제도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할 것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208p 참조
이 부분이 발제. 후진국을 개발시키겠다는 명목, 선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그건 옳은것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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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적용

소감:
그 동안 밀의 논리를 그 시대에 적용한 건이다. 지금의 시대와 비교하면 사실 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 시대와 현장 적용에 상당히 실천적이고 세심한단 생각을 했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한 문제가 있고, 여전히 고민과 토론이 필요해보인다.
다른 사람에게 경고는 해주되 강요는 하지말라는건 한국사회에서 쉽지 않다. 밀은 무너질것 같은 다리를 건너는 사람의 경우도,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건 당사자 뿐이라고 하거나 (현대지성 215p), 독성물질을 범죄가 아닌 다른 용도로 구매할 사람들의 자유까지도 (216p)보장해야한다고 한다. 사실 이런 사례는 너무 하이레벨급이라 밀에게 선뜻 동의가 어려웠다.
그당시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서도, 객관적으로 교육을 받고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국교도가 되거나 비국교도가 될 수 있게 하는 데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는 적용(237p)은 엄청난 문제거리였을거다.
궁극적으로 자유에 대한 논리는 개개인의 이기주의가 아닌, 공동의 것을 행동하게 하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라는 점에서(242p) 뭔가 내 맘이 편해졌다. 밀은 한 사람의 소수를 위하기도 했고, 또한 개인의 이기주의가 아닌 우리모두를 위한거구나 하는 생각에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따뜻한 글 같았다.
마지막에 다 다라서 정부의 개입이나, 권력을 경계하는건 (243p) 큰정부론의 나로서는 맘에들지 않았지만, 유능한 사람들이 정부관료로만 가는 사회를 경계하는건 (245p) 뭔가 지금 한국의 공무원사회를 보며 (원인이나 진행과정은 당연 차이가 있으나)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자유론. 어럽지만 매력적이다.

구절:
국가의 가치는 결국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가치다. 
따라서국가가 여러 가지 일들에서 좀 더 효율적인 행정 처리나 많은 경험을 통해 실무 능력이 뛰어난 관료들을 선호해서, 국민 개개인들을 정신적으로 발전시켜서 그들의 정신적인 능력이 폭넓어지고 수준이 높아졌을 때에 그것이 가져다줄 이익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가가 비록좋은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국민 개개인들을 더욱 유순하게 만들어서 국가의 말을 더 잘 듣는 사람들이 되게 함으로써 그 국민을 왜소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국가는 머지않아 그런 왜소한 국민으로는 진정으로 위대한 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국가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 국민을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완벽한 기계로만들어놓았지만, 그렇게 부드럽게 잘 돌아가는 기계로 만들기 위해서국민에게서 활력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런 국민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53p
이유: 오늘 야후와 구글을 비교하는 컬럼을 읽었는데, 요는 야후는 빡빡한 결재라인과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데 비해, 구글은 자유로운 의사개진등으로 현재의 결과를 만들었다는 약간은 예상가능한 기사였다. 광의적으로 국가지만, 직장내에서도 동일하지않을까. 한국사회는, 그리고 나는..과연 머리가 아닌 실천을 할 수있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국가의 가치는 결국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가치다. ˝ 이 말 너무 멋지지 않은가!

발제 1:
그러한 예들 중에서 하나, 곧 독약을 판매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치안 기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고유한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정부가 범죄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어느 정도까지가 정당한가?
214p 참조

발제 2:
그렇다면,
한 개인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개개인에게 조언하거나 부추기는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219p 참조

- 발제는 내 고유의 토론거리가 아닌, 밀의 질문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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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지혁명에 대한 다른 독서모임 분들에 대한 내 답변글 복사

답변 1
지난주 100여쪽까지 읽고 아직 뒷부분을 못 읽었는데, 노아의 방주 해석이 뭔가 찌릿합니다.
핫키워드 부자는 요즘 저에게도 핫키워드입니다. 이 단어는 현재 실재와 허구가 동시에, 각각의 개인과 사회에 존재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싶다고 생각하나 상당히 막연하고, 어디까지 벌어야, 어느 수준이 부자인지 정립이 되어있지 않거나, 무조건 많을 수록이라는 불확실한 개념이 있어보입니다. 사회는 대중매체 컨텐츠를 통해 봤을 때 달라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정말 부자는 얼만큼있어야 부자일까라는 질문을 여기저기서 시작하는걸 조금씩 목격하는데요. 최근 유명회계사가 본인의 저서 홍보와 부자에 대한 강연을 하던중, 본인의 현재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 불로소득 (저자는 배당주식주를 우선적으로 얘기한듯)으로 가지며, 직장이든 프리랜서든 언제든 그만둬도 상관없는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걸 얘기했었는데요. 제 기억이 오래되고 책은 읽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영상을 보며 실재 부자라는 이 허구적 개념은 내가 구체적인 정립과 목표도달을 했을 때, 개개인마다 실제가 다양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그 실재에 대한 정립을 못했고요. 저 역시 그랬었고, 이제 정립이 된 상황이며, 그 정립이 부자는 부자이나,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부자가 아닐 수 있고요. 그 정립된 부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ㅎㅎ
부자 뿐 아니라 다른 개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합니다 ㅎㅎ

답변2
졸부라니요 ㅋㅋㅋ 표현 신박해서 키득거리다가 적절하다 생각이드네요.
한참 코로나가 난리치던때 맑아진 인도 하늘과 베네치아 수로등의 사진이 떠돌며 코로나의 장점?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돌고..인간에 대한 반격이라는 얘기에 일정부분 수긍도 했었습니다.
제가 아주 아주 예전 좋아하던 세기말 분위기의 클램프가 만든 X라는 만화 &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원래 클램프의 그림체 스토리를 좋아했는데, 내가 응원하던 그룹이 있었고.. 좀 괜찮던 캐릭터들이 반대그룹에도 있어서 싸웠었어요. 왜 저 괜찮은 아이들이 저기에..이쪽 편으로 오면 안되나 했는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보니 주인공의 그룹은 인류를 지키는그룹, 적대그룹은 인류를 지구의 적으로 설정하고 인류만 멸망시키려했던거더군요.
이후 가이아이론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들이 많았지만, 그 학생시절 x가 나름 충격적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졸부인류로서 이기적인 삶에 있고,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를 하고, 동물과 환경을 위하려하지만, 제가 저지르는것만큼의 상쇄가 될거란 생각은 하지않습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하되 동시 집단 국가 세계적인 시스템이 없으면 안될것같아요. 그렇지않으면 곧 어떻게 될지모르겠어요.. 지원님의 글을 보고 뭔가 생각이 많아졌네요.
지원님 발제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거 팀버튼의 혹성탈출 되는거 아닐까요?
회사 내 동기가 인류의 위대함은 집단지성이라고 몇년전부터 얘기를 했었는데 (어쩌다 항상 이런 얘기를 했었는지는..), 그 집단지성이 된게 언어의 효용이라한다면.. 이거 밀릴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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