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거야. 꽃들은 보살핌을 받고 있어 물을 충분히 마셨어." 그 말이 노라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괜찮을 거야. 꽃들은 보살핌을 받고 있어・・・・・・ . 
- P371

대문자 일인칭 현재 시제로.
그녀에게 가능한 모든 인생의 씨앗이자 시작인 진실. 예전에는저주였으나 이제는 축복이 된 진실.
다중 우주의 잠재력과 힘을 간직한 간단한 문장이었다.
나는 살아 있다.
- P385

"절망의 반대편에서 인생은 시작된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이제 비는 그쳤다.
- P389

간호사가 나간 뒤 노라는 창문 너머로 오후의 미풍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나무들과 베드퍼드 순환 도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러시아워 차량을 지켜보았다. 그저 나무와 차와 평범한 건물에 불과했지만 또한 아주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삶이었다.
조금 뒤에 노라는 SNS에 올렸던 자살 글을 지우고, 순간적으로 감상에 젖어 다른 글을 썼다. 제목은 ‘내가 배운 것들(한때 온갖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보잘것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쓰는 글)‘이었다.
- P390

내가 배운 것들 (한때 온갖 삶을 살았으나지금은 보잘것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쓰는 글)

자신이 살지 못하는 삶을 아쉬워하기란 쉽다. 다른 적성을 키웠더라면, 다른 제안을 승낙했더라면 하고 바라기는 쉽다. 더 열심히 일할걸, 더 많이 사랑할걸, 재테크를 더 철저히 할걸, 더 인기가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밴드활동을 계속할걸, 오스트레일리아로 갈걸, 커피 마시자는 제안을 받아들일걸, 망할 요가를 더 많이 할걸.
사귀지 않은 친구들, 하지 않는 일, 결혼하지 않은 배우자, 낳지 않은 자녀를 그리워하는 데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날 보고, 그들이 원하는 온갖 다른 모습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어렵지 않다. 후회하고 계속 후회하고 시간이 바닥날 때까지 한도 끝도 없이 후회하기는 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이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P391

우리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앞에 있는 와인을 음미하고, 연주되는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다른 삶에서처럼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살아 있으며, 동일한 범주의 감정에 접근할 수 있다.
- P392

삶에서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마음의 상처와 고난과 외로움과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날까? 아니다.
그래도 난 살고 싶을까?
그렇다. 그렇다.
천 번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 P393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이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바로 그곳임을 깨닫는 것은 꽤 충격적이다. 감옥은 장소가 아니라 관점이었다. 노라에게 가장 이상했던 사실은 지금까지 경험한 극도로 다양한 자신의 모습 중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는 예전과 똑같은 삶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녀가 시작했다가 끝냈던 삶.
- P401

어제와 똑같은 디지털 피아노와 책이 있었다. 반려묘가 사라진 슬픔과 실직의 고통도 그대로였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알 수없다‘는 사실 또한 그대로였다.
- P401

노라는 자신이 블랙홀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화산이었다. 그리고 화산처럼 그녀는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없었다. 거기 남아서 그 황무지를 돌봐야 했다.
자기 자신 안에 숲을 가꿀 수 있었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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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 P308

"그건 네가 살아볼 수 있는 삶이 여전히 많다는 뜻이야. 사실 한없이 많지. 네 가능성은 절대 바닥날 수 없단다"
"하지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바닥날 수 있죠."
- P311

노라는 애쉬가 찾아왔던 밤이 기억났다. 애쉬는 길에서 죽은고양이를 들고 비를 맞으며 그녀의 아파트까지 가주고, 슬픔에 취해 우는 노라를 대신해 작은 뒷마당에 고양이를 묻어주었다. 그걸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달리기를하던 중에 40분이라는 시간을 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물 한 잔만 받아 마신 것은 확실히 친절을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
- P314

 행복해지기 위해서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캘리포니아 석양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넓은 집과 완벽한 가정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잠재력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노라는 잠재력 덩어리였다. 왜 전에는 이걸 몰랐는지 노라는 의아했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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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 나는 그에게 늘 자신에게 만족하고 사는지 물어본 적이있다. 바깥 세상의 사제를 대신하는 자기 내면의 사제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더 높은 차원에 놓인 삶의 목적도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고싶어서였다. 그러자 그는 "만족이라!"라고 탄성을 내지르더니, "어떤 사람이 이거에 만족하면, 또 어떤 사람은 저거에 만족하는 법이죠. 뭐, 부족한게 없는 사람이야, 온종일 화로 앞에 앉아 밥만 배불리 먹어도 충분히만족할 테니까요. 내 참!"이라고 대답했다.
- P185

그의 존재는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도 얼마든지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있음을 암시했다. 그들은 평생 가난하고 무식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늘 독자적인 견해를 품고 살아가며,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을 다안다는 듯 잘난 척하지 않는다. 또한 겉으로는 어둡고 혼탁해 보일지라도 월든 호수만큼이나 한없이 깊은 속내를 품고 있다.
- P186

근래 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모두가 콩만 돌보느라 바쁜 모양인지, 시간이 없어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토록 일만하는 사람과는 사귀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일하는 틈틈이 괭이나 삶을 지팡이 삼아 기대서 있지만, 바닥에 뿌리 내린 버섯이 아니라 땅에 내려 앉아서도 이리저리 헤매 다니는 제비처럼, 똑바로 서 있다기보다는 지면에서 약간 발을 떼고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인다.
- P205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찌 우리의 농사에 실패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잡초의 씨는 작은 새의 곡식이 될 테니,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 역시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섭리와 비교해 보면 들판의 곡식이 농부의 곳간을 채울지 어떨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다람쥐가 올해는 숲 속에 얼마나 많은 밤송이가맺힐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듯이, 진정한 농부도 걱정 같은 것은 접어 두어야 한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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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보다 나은 일을 할 때도 많았다. 손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활짝 피어난 현재라는 시간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삶에 넓은 여백을 두고 싶다. 
- P140

그러다 보니 관계가 너무 돈독한 탓에 서로의 앞길을 막아서기도 하고,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장담컨대, 지금보다 조금 덜 만나도 중요하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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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만간 개발될 위험이 없는 여러 군데의 집터를 찾아냈다. 마을에서 너무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을이 내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듯했다.
- P103

"나는 내가 조망하는 모든 것의 군주이고,
그러한 내 권리에 대해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1) 윌리엄 쿠퍼(Wiliam Cowper)의 <알렉산더 셀커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시(Verses supposed to be written by Alexander Selkirk)> 중에서.
- P104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충족한 채 살아도 삶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하지않다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깊이 있게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가길 바랐다.
- P114

왜 우리는 이처럼 바쁘게 삶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배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하다. 흔히들 제때 뜨는 한 땀의 바느질이 훗날 아홉 땀의 수고를 줄여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뜰 아홉 바늘을 줄이려고 오늘 천 땀의 바느질을 한다.
- P117

필요하다면 강에 다리 하나를 덜 놓고 조금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에워싼 무지의 검은 심연을 건너게 해줄 구름다리 하나라도 놓아 보자.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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