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부에게 시건방진 말투로 묻는다.
"당신들도 성공하고 싶어?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를해."
그러자 복희가 대답한다. "아니, 우리는 성공 같은 건 하기 싫어."
- P21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 P23

"대단하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둘은 교실 뒤쪽의 낙제생들처럼 쿡쿡대며 웃는다. 그러고선 덧붙인다.
"솔직히 하나도 안 부러워."
"나도"
- P24

"왜 갑자기 영어를 배우지?"
"몰라."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그러네."
잠깐의 침묵 뒤에 복희는 말한다.
"우리는 테레비나 보자."
둘은 TV를 본다. 뻥튀기 기계처럼 펑펑 웃음을 터뜨리며 본다.
- P27

그는 불특정 다수를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자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익명으로라도 말을 아낀다. 누군가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수치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나. 기록된 글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며 이리저리 오해될지 복희는 두렵다. 
- P29

모부의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딸은 들풀 같은 작가가 되고 아들은 들개같은 음악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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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아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열한 식구를 다스렸다. 한 명의 부인.
세 명의 아들, 세 명의 며느리, 네 명의 손주가 그의 휘하에서 지냈다.
- P7

마감이 있는 삶과 마감이 없는 삶으로 인간계를 나눈다면 서른 살의 이슬아는 전자의 삶을 성실히 수행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P17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이라도 종교인의 정체성을 추가하여 기대수명을 메꾸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는 문득 비구니 스님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 P18

"걸으면서 심호흡도 하고……… 그렇게 차분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책상 앞에 돌아오면 딱・・・・・ 이런 생각이 들 거야."
슬아가 묻는다.
"어떤 생각?"
웅이가 대답한다.
"씨바, 그냥 아까 쓸걸."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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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활짝 필 때면 못가에 핀 벚꽃과 수면에 비친 벚꽃이 이중으로 보여 아름다웠다. ‘거울 벚꽃‘이라고 불렸다.
- P14

미래는 불확실했으나 잠을 자면 아침이 오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 P35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마음에 깃든 불안이며 작은 희망을 살펴주지 않는다. 
- P36

이제는 아니다. 길이 다르다. 똑같이 세간의 시선을 꺼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거리는 좁아졌을지 몰라도, 걷는 길이 달라지고말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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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게 아닙니다. 벚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변명처럼 말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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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께서는 아직 춘몽(春夢)에서 깨지 않으셨습니다."
- P303

이제 와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양소유로 태어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출세하여 승상이 되어 공을 이룬 뒤 두 공주와 여섯 남자와 평생을 즐겁게 지내던 모든 일이 하룻밤 꿈이었다.
- P304

"네가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왔는데 내가 무슨 간섭을하겠느냐? 또 네가 인간 세상과 꿈을 다르게 생각하니 아직 완전히 꿈을 깬 것이 아니구나. 옛날에 장자(莊子)가 꿈에서 깬 뒤,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자신이 된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성진과 양소유 중에서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꿈이 아니더냐?"
- P305

인간 세상의 모든 현상은
꿈 같고 환각 같고 물방울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 P306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모두 허상이라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감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허상 속에서 온갖 감정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면?
이것은 영화 <매트릭스>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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