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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인생을 길게 산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참 힘든 순간들이 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걱정없는 듯 보이는데 나만 이리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공평하지 못한 세상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감정으로 인해 스스로를 들들 볶아 대기도 한다. 이겨내야 하는데 상황은 점점 꼬여 악화일로를 걷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럼 마음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최악(最惡)속에서 만나는 세 사람도 그랬다. 평범한 47세의 가장으로 철공소 사장인 가와타니 신지로는 공장소음으로 딴지를 거는 이웃주민들 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은행에서 겪어야 하는 대출에 대한 비애는 너무나도 쉽게 주변에서 볼수 있는 중소기업들의 슬픔이다. 23세의 은행 창구직원인 후지사키 미도리도 사는 낙은 없다. 가족,직장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둘 수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다. 20세의 날라리 양아치 노무라 가즈야는 도박으로 한탕을 노리는 아니 매일의 소일거리로 삼아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한탕거리로 시작한 톨루엔 탈취가 야쿠자와 엮여 인생 이상하게 꼬여가기 시작한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망가져 가기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가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의 사회 상황과 맞물며 힘겹게 사는 우리와 그리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쩜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이웃이었는데 그들에게서 악다구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씁쓸해 지는 것이다.
진짜로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실제 상황인 거 맞아........?
세 사람의 이야기가 반복되며 이어지는 이 한 권의 책은 영화였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 접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한장 한장은 영화의 컷이 되어 지나가고 세 사람의 독백은 메아리가 되어 퍼져간다. 이크 없는 극한 상황으로 자신들을 몰고 가는 지금 이 상황은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다.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기대는 상처가 되어 돌아오고 정답이 없는 인생속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얽히고 섥힌 인간 군상들의 삶속에서 나 하나 없어지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막연한 상상 속의 불안감은 흐르는 대로 맡기려다 보니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져 간다. 왜 이토록 사는 것이 힘든 것일까?
" 안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야. "
" 네? "
" 내 나이쯤 되면 안 좋은 일 조차 없어. 워낙 갈 곳이라야 병원하고 도서관하고 은행밖에 없거든. 그런 곳을 빙빙 돌아봤자 무슨 일
이 생기겠나? 이번 연휴 때는 정말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더라니까. 뱡원도 도서관도 은행도 죄다 문을 닫아버렸으니. 겨우 연휴가
끝나서 아휴, 잘 됐다 했네. 그래서 냉큼 은행으로 갔더니만 자네가 안좋은 얼굴을 하는 거야."
" 저, 정말 죄송......"
" 아니, 그래도 내가 오해 했다는 거 알고 나니 참 마음이 놓이는 구먼."
" 네."
" 아무튼 안 좋은 일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거 보다는 나아."" p218
오쿠다 히데오 이번엔 너무나도 잔잔함 속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매력덩어리를 생산해 내었다.기존의 그의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다. 개성넘치는 이라부도 엉뚱한 미유라 간호사도 없다. 평범한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선을 사로잡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꼬리를 무는 사건들은 책을 놓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인생이 돈만으로 여유로울 수 없고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도 시바타 노인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거 보다는 어떤 일이라도 터져주는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일일까. 100년도 되지 않는 우리의 일생안에 신지로 미도리 가즈야의 모습처럼 편안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 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우울해진 마음을 커피로 달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