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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 열하 1
임종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묵직한 두권의 책이 손에 잡힌다. 책을 읽기 전 역사소설을 떠올리기 보다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를 먼저 생각했다. 너무나도 화려한 미사여구와 칼라풀한 사진들에 유혹당할 수 밖에 없는 여행기를 많이 읽었던 탓일까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던 열하일기가 당시 재미와 흥미로만 소설을 주로 읽던 내게 연암을 잘 모르고 그의 독특한 문체에 익숙치 않았던 탓에 큰 감흥을 주지 못한채로 읽힘을 당했었다는 기억이 강해 지루함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나라를 여행하며 문화 정치 사회 그리고 풍광까지 묘사하는 연암의 기행기는 대단한 평가를 받을 만큼 훌륭하지만 선입견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주저하고 있는 나를 책 속으로 이끈것은 책 첫머리에 있는 몇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자금성, 건청궁, 눈덮힌 만리장성,이화원, 천단공원 팔달령의 장성까지 홀로 베이징을 여행하며 지도를 보고 하나하나 찾아가던 그 느낌이 너무 생생히 떠올라 펼쳐든 책은 1780년 청나라의 영원불사를 위해 건륭제가 숨겨 놓은 네개의 열쇠를 찾기 위해 일어나는 숨가쁜 사건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한다.
열하일기 속의 감추어진 비밀을 연구하던 송지명 교수의 의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소설은 현재와 1780년 청나라와 조선의 미묘한 갈등이 고조되던 1780년대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1780년 건륭제의 고희연을 축하하기 위한 조선축하사절단에게 숙소 당직관의 의문의 살인사건이라는 위기가 찾아온다. 사절단의 일원인 정진사는 음모가 숨어있는 듯한 사건 해결을 위해 연암 박지원과 함께 동분서주하지만 오히려 또 다른 살해누명을 쓰고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08년 현실속에서도 송지명 교수의 손녀인 송민주와 우연히 그녀와 함께 중국여행을 하게 된 정진탁이 계속되는 살해 위협속에서도 열하일기속에 감추어진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게 된다. 과거와 현실이 이어질 듯 하면서도 정확한 연관관계가 보이지 않는 미궁속에서 각각의 사건은 전개되고 두개의 다른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사건은 기막힌 반전을 이끌어 내며 마무리를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인 팩션이다. 물론 많은 고증과 조사속에 탄생했을 이 소설안의 내용이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모르나 읽으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던 정조가 건륭제에게 제안했던 조선과 청나라의 연대에 대한 밀약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 덕분이었다. 민족의 자존감을 지키며 거대국에 조금도 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정조의 혜안덕분이었다. 또한 지금은 한족에게 그 중심의 자리를 내어준 만주족이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한 때 가지던 거대한 제국과 위상이 안타까워 <흥만회>를 통해 다시금 중흥을 꿈꾸나 현실에 부딪쳐 조용히 자리를 지키게 됨은 근래 티벳이라는 나라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커다란 벽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저희들은 지금 중국의 거대한 판도 속에 강제로 편입되어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청제국이 편입시킨 그 지역들은 사실 독립된 국가들과 자유로운 민족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치구라는 미명아래 중국정부의 불평등한 간섭과 굴욕적인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독립을 주장하면 중국 정부는 바로 무력으로 진압해 버립니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만들어낸 책임이 청제룩에 있고 청제국은 우리 조상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이제 그 책임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P394
숨가쁘게 달려왔다. 사건과 사건이 책을 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 한 편의 영화처럼 200년의 시공을 넘나드는 스펙타클하고 광대한 여정이 끝이 난다. 왜 책을 읽으며 과거보다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강대국에 끼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화가 나는 것을 뒤로 하고 더욱 현명한 그리고 노련한 외교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