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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는 윤동주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이다.
1943년 7월 교토에서 체포된 그는 1944년 3월 31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그가 생의 최후를 맞이한 바로 그 도시에서 지금은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매달 열리고 있다.(중략)
일본인들 앞에서 윤동주시를 한국어로 낭독한 일은 나에게 낯선일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드려다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드러나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39. 6
자화상은 돌아가고 다시 돌아서는 발걸음, 또한 미워하고 가여워하고 다시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우리말 단어에 기초한 윤동주의 시는 한구절 한구절이 쉽고 단순한 문장이 현대 한국의 독자들에게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 동시에 일본 독자들에게는 우리나라 감성을 전히기에는 역부족이다.
후쿠오카에서 읽는 자화상은 젊은 옛 시인과 후대의 우리들이 경헝하는 내면의 움직임을 말과 소리로 구현하는 시의 형식으로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다가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윤동주를 단순히 '민족 시인'이나 '저항 시인'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윤동주의 삶을 '경계'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여러 지역을 오가며 살아야 했던 시대적 상황, 민족과 국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시 속에 담긴 의미도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원고 노트를 중심으로 시가 수정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단어 하나를 바꾸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 문장을 여러 번 다듬은 자국들을 보면서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갔는지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완성된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창작 과정까지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책은 그 빈틈을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글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수정과 고민 끝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윤동주의 노트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분량은 다소 있는 편이지만 사진 자료와 원고 이미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았고, 문학 연구서처럼 어렵기보다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구성이었다.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한 명의 젊은 시인이 어떤 고민 속에서 작품을 완성해 갔는지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