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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평점 :
"나는 그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습지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곳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돌아왔으나, 자연과 야생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느끼는 기쁘에 점점 날카로워지는 고통이 섞여든다는 사실을 그 뒤로 수년 동안 배웠다. 지금 이 세기에는 삼림파괴 점점 사라지는 호박벌과 물푸레나무, 산호초와 해초 숲의 상실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
습지가 있었다. 도시가 생길 때부터 담을 쌓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그 습지에는 겨울이면 두루미 한 쌍과 백조떼, 기러기떼, 오리떼들이 찾아와 쉬어가곤 했고 습지 위로는 말똥가리와 매들이 원을 그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쌍안경으로 본 습지가 그러했으니 봄여름의 습지는 얼마나 충만했을까!
"봄의 습지에 사는 생물들의 다양성과 수만 봐도 아주 멀리에서부터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함성이 일었을 것이다. 그때는 미래를 몰랐다. 인류가 너무 많이 늘어나 지구의 수용능력을 걱정할 지경이 되는 동안 습지는 농경지와 택지로 변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담장 안으로 보이는 습지는 점점 높게 쌓인 흙더미로 변해갔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엇을 위한다는 말도 없이 습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는 나의 습지처럼 이렇듯 '쓸모없는 빈 공간'으로 치부당해 사라져가던 습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며 우리에게 습지가 품고 있는 오랜 역사와 수많은 비밀과 가치에 대해 알려준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의 습지 용어는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일 수 있다. '펜', '보그', '스웜프'는 토탄이 생성되는 습지이지만 토양의 성격, 수원, 수심, 생태계에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들로 생긴 각각의 역사가 무척 흥미로운데 '인간으로 인해' 파괴당하고 사라지는 부분은 결국 같았다. 오래 전 습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충분히 삶을 이어갔던 사람들은 습지를 지킬 수 없어 떠나야만 했고 현재에 이르러도 역시 습지를 관찰하고 지켜보며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의 습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힘겹기만 하다.
"주민들은 변화에 반대했으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펜에 대해 개발자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는데도 주민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차츰차츰 싸움에 패배했다."
책은 농경의 역사와 예술 작품, 그리고 전쟁 속의 습지까지 이야기하며 흥미롭게 습지를 파헤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습지 속에 숨겨져왔던 수많은 것들과 그것들의 가치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쓸모없는' 땅을 '쓸모있게' 만들기 위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경고한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라는 제목처럼 습지에서 그치지 않고 전지구적 '안부'를 묻게 되는 책. 내 주변에 습지, 강, 바다를 떠올린다. 물이 없는 습지, 흐르지 않는 강, 막힌 바다...인간으로 인한 이 어리석은 행위들이 이제는 제발 멈춰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