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트리플 26
단요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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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인 이 작은 소설집을 처음 받은 순간 '후루룩 읽기 좋은 사이즈다!'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여러 번 시간을 들여 읽어야만 했던 책.
세 개의 이야기를 오가는 내내 책을 읽는 건지 누군가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건지 혹은 내 머리 속의 이야기인지, 혼란하고 흥미로웠다.

"젠장, 내 목을 잘랐다고? 난 동의한 적이 없는데."
통 속의 뇌 상태로 일평균 다섯 시간 동안 목향의 몸을 빌려 살고 있는 제약사 회장 건록.어느 날 건록은 목향이 저지른 살인 현장 앞에서 눈을 뜨게 된다.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오랜 전쟁 끝의 세상.신흥 종교에 빠져 가족을 버리고 떠난 누나의 부고를 받은 '나'는 누나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교단을 직접 방문하게 되는데.
"모두가 진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게 진실임을 믿지 못하고, 상상과 거짓말을 마취제 삼는 땅. 땀과 피마저도 누군가의 여흥에 불과한 땅. 그 마취제는 개척자들이 지구를 잠재운 방식이었을까, 아니면 인류가 스스로 원했던 것일까."
-제발!

"세상은 나를 속이지 않았으며, 오직 나 혼자만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의 좌절감을 떠올리면 아직도 숨이 턱 막힌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세 번째 이야기는 요약할 수 없다. 가끔 나는 이어지는 꿈 속에서 꿈 속의 과거와 꿈 밖의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그 순간의 기묘한 감각을 소설을 읽으면서도 받을 수 있구나 감탄했을 뿐이다.
"나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는데 저 인간들은 저래도 정상인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Called or Uncalled

이 기묘한 이야기들은 현실을 닮아있지만 비현실적이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면서도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동일한 시대에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읽다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득당하는 지경에까지 다다른다.어쩌면 내가 너무 과몰입을 한 것일수도.

"달리 말하면 나는 현실의 각 요소를 잘라낸 다음 조각보를 만들듯 적절한 규칙하에 다시 붙임으로써 ,철저히 현대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아닌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에세이 토끼-오리가 있는 테마파크
#한개의머리가있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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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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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 이렇게나 든든한 여주인공이라니!
아포칼립스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
할머니의 김장 김치 담그는 법을 꼭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까지도 너무 사랑스러웠던 책. 좀비가 들끓는 상황에서도 '그래서 하다네 오늘 저녁 메뉴는 뭘까?'가 궁금해지는 내 자신에게 웃음이 났다.

"할머니, 내가 꼭 지켜 줄게."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갑작스레 공격성을 보이며 좀비화되는 사태에 격리된 도시,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도시에 남기를 선택한 소녀 '강하다'.
평범한 일상을 살 때는 늘 까칠하게만 보였던 하다지만 할머니와 함께 남은 상황에서 어쩐지 하다는 늘 다른 사람을 돕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싶지도 않고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가 누군가를 위해 좀비 사이를 뚫고 나갔다 오다니 신기하긴 했다.나에게도 오지라퍼인 할머니의 피가 흐를 줄이야."

<달리는 강하다>는 어쩌면 사람이 제일 무서울 수 있는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 남겨진 '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강하다와 할머니로 시작해서 한명한명 늘어나는 식구(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함꼐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한다. 바깥 세상의 그 어떤 집단보다도 끈끈하고 정이 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다. 65세 이상인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세상에 남았지만, 65세 이상인 할머니 덕분에 만난 그들은 그래도 행복하기만 하다.

사랑스러운 이야기지만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달리는 강하다>는 우리에게 생각할 숙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65
세 이상인 사람을 격리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한곳에 모아 생활하게 한다면 65세 미만인 사람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아아, 이것이야말로 정말 리얼한 좀비물이 아닌가? 인간은 살아있다면 누구나 65세 이상이 된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미래는?
작가의 말처럼 '아기로 태어나 노인이 되는' 세상에서 아기와 어린이와 노인과 장애인을 배제하는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런 적이 없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이기적으로 살아남는다면 결국 우리의 미래는 아포칼립스에 다름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와 함께 읽었다. 하다 누나처럼 씩씩하고 멋진 사람을 만나라...
따뜻한 이야기를 써주신 김청귤 작가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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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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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습지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곳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돌아왔으나, 자연과 야생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느끼는 기쁘에 점점 날카로워지는 고통이 섞여든다는 사실을 그 뒤로 수년 동안 배웠다. 지금 이 세기에는 삼림파괴 점점 사라지는 호박벌과 물푸레나무, 산호초와 해초 숲의 상실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

습지가 있었다. 도시가 생길 때부터 담을 쌓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그 습지에는 겨울이면 두루미 한 쌍과 백조떼, 기러기떼, 오리떼들이 찾아와 쉬어가곤 했고 습지 위로는 말똥가리와 매들이 원을 그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쌍안경으로 본 습지가 그러했으니 봄여름의 습지는 얼마나 충만했을까!

"봄의 습지에 사는 생물들의 다양성과 수만 봐도 아주 멀리에서부터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함성이 일었을 것이다. 그때는 미래를 몰랐다. 인류가 너무 많이 늘어나 지구의 수용능력을 걱정할 지경이 되는 동안 습지는 농경지와 택지로 변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담장 안으로 보이는 습지는 점점 높게 쌓인 흙더미로 변해갔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엇을 위한다는 말도 없이 습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는 나의 습지처럼 이렇듯 '쓸모없는 빈 공간'으로 치부당해 사라져가던 습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며 우리에게 습지가 품고 있는 오랜 역사와 수많은 비밀과 가치에 대해 알려준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의 습지 용어는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일 수 있다. '펜', '보그', '스웜프'는 토탄이 생성되는 습지이지만 토양의 성격, 수원, 수심, 생태계에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들로 생긴 각각의 역사가 무척 흥미로운데 '인간으로 인해' 파괴당하고 사라지는 부분은 결국 같았다. 오래 전 습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충분히 삶을 이어갔던 사람들은 습지를 지킬 수 없어 떠나야만 했고 현재에 이르러도 역시 습지를 관찰하고 지켜보며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의 습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힘겹기만 하다.

"주민들은 변화에 반대했으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펜에 대해 개발자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는데도 주민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차츰차츰 싸움에 패배했다."

책은 농경의 역사와 예술 작품, 그리고 전쟁 속의 습지까지 이야기하며 흥미롭게 습지를 파헤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습지 속에 숨겨져왔던 수많은 것들과 그것들의 가치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쓸모없는' 땅을 '쓸모있게' 만들기 위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경고한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라는 제목처럼 습지에서 그치지 않고 전지구적 '안부'를 묻게 되는 책. 내 주변에 습지, 강, 바다를 떠올린다. 물이 없는 습지, 흐르지 않는 강, 막힌 바다...인간으로 인한 이 어리석은 행위들이 이제는 제발 멈춰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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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생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2
듀나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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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외계인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지구. 하지만 1999년에 태어난 에스퍼들의 뛰어난 전투 능력으로 반격을 시작한다. 그리고 2023년, 또 다른 특별한 세대가 탄생한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라고? 그게 과연 멀린의 소년 십자군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하찮은 능력 몇 개 생겼다고 중학교를 간신히 마친 아이들을 사지로 모는 종족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듀나의 소설<2023년생>은 신일숙의 만화 <1999년생>의 세계를 이어가지만 분명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만화를 읽지 않아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가 있다. 여전히 젠더갈등, 폭력, 전쟁이 존재하는 미래 사회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저마다 능력이 다른 초능력자들이 팀을 이루어 문제를 해결하고 정의 실현(!)을 위해 돌진하는 모습은 실로 짜릿하다.

하지만 만화를 읽은 이들이라면 분명 이 '소설'을 읽으며 그리움과 반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소녀도 주인공도 아니지만 2023년생의 세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1999년생 정수정(크리스)처럼, 신일숙의 순정만화를 읽던 소녀들 역시 이 소설 세계의 바깥에 여전히 독자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충격적이던 그 결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야기 속에 살아숨쉬는 그녀를 보며 우리는 그녀의 마지막 뒷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2023년생>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그들 모두에게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는 희망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이제는 그들이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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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오목눈이 성장기 너는 나다 - 십대 2
오영조 지음 / 자연과생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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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스러움, 용감무쌍함 등을 내세워 예찬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관찰 과정만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남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목눈이가 살아가는 여정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작은 새가 얼마나 놀라운 생명체인지를요. "
-저자의 말

4년 동안 오목눈이를 집중 관찰한 기록을 엮은 책.오목눈이 커플이 둥지를 짓는 것부터 시작해서 육추,이소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담았다. 새들이 육추 기간에 얼마나 많은 곤충을 잡는지, 이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고 육추와 이소를 돕는 헬퍼의 존재와 역할이 놀라웠다.

언젠가 강의를 통해서 박새가 육추 기간동안에 얼마나 많은 곤충을 잡는지, 그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는지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오목눈이를 관찰한 이 책을 통해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보통 부모새들이 몇 마리의 곤충을 한꺼번에 물고 둥지로 돌아가는 걸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곤충을 잡는걸 알 수 있었다.
새들이 새끼를 낳고 기르는 시기가 각종 곤충(성충과 애벌레!)이 창궐하는 시기와 겹치는 걸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자연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영조 선생님만큼은 못 미치지만 올해 처음으로 새들의 육추과정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제초와 수목소독 시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곤충이 머물 공간인 풀들이 베어지고 선제적인 수목소독을 시행할 때 주변의 새들에게 미칠 영향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제초와 수목을 할 때도 이런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시기를 조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또한 새들의 이소 과정이 무척이나 신중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 되서 무척 놀라웠다. 새들이 부모를 따라 이소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헬퍼의 도움까지 받아 연습을 통해 반경을 넓혀가며 결국 둥지를 아주 떠나가는 과정은 감격적이기까지 했다. 아기새들이 서툰 날개짓으로 나무 사이를 옮겨다니는 게 안쓰럽기만 했는데 하물며 부모새의 마음은 어땠을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4년동안의 기록이란 실로 어마어마하다.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이셨을지, 부모새들이 육추를 시작하고 새끼들이 떠나갈 때 의 작가님 마음까지 상상이 간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통해 더많은 이들이 이 작은 새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자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오전 5시 30분에 하루를 열고 오후 7시가 지나야 날개를 접는다. 하루 14시간 가까이 일해야 새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
오늘은 오전 5시 4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약 800분 동안 336번 먹이를 날랐다. 2.4분마다 한 번씩 먹이를 물고 나르는 꼴이다."
-도시 오목눈이 성장기(오영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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