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
강남호 지음 / 정독(마인드탭(MindTap))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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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기술, 환경, 경제,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대전환의 물결이 인류 문명을 재편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대전환은 단일한 현상이 아닌 서로 연결된 여러 차원의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복합적 현상이다. 우리는 지금 AI와 딥테크로 대표되는 기술적 대전환, 기후위기로 상징되는 환경적 대전환, 감염병 팬데믹이 초래한 사회적 대전환,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특히 기술적 대전환의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현대 AI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의성, 사고, 예술, 의사결정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2025년 다보스 포럼에서 '지능화 시대를 위한 협업'이라는 주제가 다뤄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가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닌 현재의 현실이 되었음을 방증한다. 전 세계는 이러한 AI 기술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전쟁은 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세계 질서의 재편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 견제 정책은 이러한 기술 패권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인공지능과 딥테크 혁명은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UN 개발 프로그램의 휴먼 로봇 혁신 대사 '소피아'가 언급했듯이,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보다 더 효율적인 리더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주장은 인간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질문이다. 로봇이 편견이나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과연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신을 닮아가는 인간,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초월적 존재에 가깝게 만들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고유성을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는 환경적 대전환의 한가운데 있다. 2024년 다보스 포럼에서 전문가들이 꼽은 인류 최대의 리스크 1위는 '극한의 날씨'였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는 이제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닌 현재의 위기다."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이제 석유가 있어도 석유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명제는 생존을 위한 인류의 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탄소중립과 ESG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경제로의 전환은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불가피한 여정이다. 에너지 대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구조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자원 독점과 불평등 구조를 해체하고 보다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에너지 생산 및 소비 체계를 구축할 기회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은 사회 변화의 강력한 촉매제였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가 봉건 사회를 무너뜨리고 근대 시민사회의 태동을 이끌었듯이, 코로나19 팬데믹은 21세기 사회구조의 대전환을 촉발했다. 코로나19는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재고를 촉구했다. 대면 접촉의 제한은 온라인 플랫폼의 급속한 확산으로 이어져, 교육, 근로, 상거래, 의료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었다. 더불어 팬데믹은 성장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안전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은 이윤제일주의와 성장제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 기준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기술, 환경, 사회 구조의 대전환은 필연적으로 국제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위치한다. 이는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이다.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은 기존의 다자주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며, 국가 간 협력보다는 경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에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더불어 디지털 경제의 부상은 통화 패권과 기축통화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은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국제 경제 질서의 새로운 판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다중적 대전환은 자본주의 자체의 변화로 이어진다. 전통적인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기업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기업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기업들은 이제 재무적 성과 뿐만 아니라 환경 영향,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 비재무적 성과에 대해서도 평가받는다. 이는 기업 활동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하는 변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자본주의의 대전환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표면적인 수사에 그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진정한 대전환을 위해서는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근본적인 가치 전환이 필요하다.

대전환 시대는 교육과 인재 양성에도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AI와 자동화가 루틴한 업무를 대체함에 따라,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업 능력, 감성 지능 등에서 찾아야 한다. 교육은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 평생 학습 능력,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라는 인식이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더불어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포용적 교육이 중요하다. 디지털 접근성, 기술 리터러시, 재교육 기회 등이 모든 계층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새로운 인식의 눈으로 '새로운 기준과 표준'을 이해할 때, 우리는 과거가 아닌 '뉴노멀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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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인에게 억만장자가 되는 법을 배웠다 - 찰리 멍거 덕질하다가 진짜 부자가 된 한 남자의 인생 역전
앤드루 윌킨슨 지음, 조용빈 옮김 / 갤리온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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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사람과 이미 성공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 나는 오랫동안 전자가 되려 노력했지만, 앤드루윌킨슨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진정한 혁신은 때로 훌륭한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앤드루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특별한 재능도, 끝없는 자본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남다른 관찰력과 끈질긴 호기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거인들—찰리 멍거, 워런 버핏,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세심히 연구했다. 팬심을 넘어 그들의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우리는 종종 성공한 사람들을 '선택받은 소수'라고 여긴다. 마치 그들만이 특별한 DNA나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그러나 앤드루의 여정은 달랐다. 그는 '선택한 소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열등감이나 두려움에 굴복하는 대신, 자신이 존경하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철저히 분석하고 응용했다. 내가 깨달은 첫 번째 교훈은 여기에 있다. 성공은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라 체계적인 과정이다.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성장 방식이다.

멍거의 "역발상으로 사고하라"는 조언은 앤드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흔히 우리는 무엇을 얻을지에 집중하지만, 때로는 무엇을 피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내 인생에서도 가장 큰 발전이 있었던 순간들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달았을 때였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인간관계, 가치 없는 프로젝트, 성장을 방해하는 습관들. 이것들을 과감히 포기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앤드루가 경영에 흥미가 없음을 인정하고 다른 이들에게 맡긴 결정은 얼마나 현명했던가.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

​인생에서 실패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모든 실패가 동등하게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앤드루의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똑똑하게 실패하는 법'이었다. 그의 고양이 가구 사업 실패와 쇼피파이 프로젝트의 대성공은 운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위험을 분산시키고, 실패로부터 배우며, 다음 도전에 그 교훈을 적용하는 지혜였다. 나도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한다. "이 실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인가? 다음에는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앤드루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Never Enough(절대 만족하지 마라)'라는 말은 얼핏 듣기에 탐욕스럽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앤드루의 맥락에서 이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장기적 투자 관점, 해자가 있는 저평가 기업에 대한 투자 전략,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용기. 이 모든 것은 단기적 만족보다 장기적 성취를 중시하는 마인드셋에서 비롯된다. 나 역시 종종 당장의 성과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앤드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높은 산을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오늘의 성공에 취해 미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라고.

​앤드루의 여정에서 가장 깊은 통찰은 마지막 부분에 숨어 있다. 그가 꿈꾸던 '억만장자 되기'라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는 예상치 못한 공허함을 마주했다. 허영과 사치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관계와 내면의 평화를 위협했다. 워런 버핏의 조언이 앤드루에게 새로운 인생 목표를 제시했듯이,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성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부와 명성인가, 아니면 의미 있는 삶과 관계인가?“ 앤드루가 말한 '상어'가 되기보다 '인간'으로 살기로 한 결정은 얼마나 용기 있는 선택인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되, 자신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

앤드루의 이야기 그것은 자신만의 '거인'을 찾고, 그들로부터 배우며,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나도 내 인생의 거인들을 찾아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이들, 그들의 성공이 아닌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이들을.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거인이 될 수 있기를. 나의 경험과 지혜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성공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앤드루 윌킨슨의 여정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 거인들의 방법을 훔치되, 자신만의 길을 걷는 법. 똑똑하게 실패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되,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잊지 않는 법. 부와 성공은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승리는 그 여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고, 타인과 함께 성장하는 데 있다. 오늘도 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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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 불확실성의 시대를 읽어내는 경제학
에드 콘웨이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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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 때 배웠던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중요한 저작으로,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원리를 제시하며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776년에 발표된 이 책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감정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스미스는 경제적 활동이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움직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를 형성하며,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스미스의 이론은 국가의 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분석하며, 노동의 분업과 생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경제적 번영이 자원만의 축적이 아니라, 국민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충분히 공급받는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에도 경제학자들이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트럼프 2.0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전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시대에 “아담 스미스와 같은 경제학자 처럼 생각하면 이 위기를 벗어 날 수 있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해본다. 불확실성을 완전히 벗어 날 수 는 없겠지만 최소한 미래를 향한 명확한 기준은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물질의 세계>로 유명한 에드 콘웨이의 경제 관련 담론을 담은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였다. 콘웨이는 그의 재치 있는 문체를 활용하여 경제학적 이론과 사고 그리고 실물 경제의 사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딱딱한 경제학 숫자나 미시 경제학 또는 거시 경제학과 같은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경제학 용어와 그 적용 사례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개념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경제학은 또한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이론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경제학적 사고는 개인의 행동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이 이루어지는 제도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제도적 맥락은 경제적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교우위론과 같은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국가 간의 무역이 어떻게 상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론적으로, 각 국가는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이를 교환함으로써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국가 간의 관계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역의 이점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문화적 교류와 국제적 협력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비교우위론은 또한 경쟁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경쟁이란 승자와 패자만을 가르는 게임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전체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경제학적 사고가 수치적 분석을 넘어,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경쟁은 또한 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다. 케인스주의는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설명한다. 그러나 케인스주의 정책은 통화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정부의 개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의심하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의 시차를 문제 삼는다. 이러한 논의는 경제학적 사고가 이론적이지 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데 필수적이다.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데이터와 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케인스주의의 핵심은 경제가 자연적으로 안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공황 시기 정부의 재정 지출이 경제 회복에 기여한 사례는 케인스주의의 유효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는 경제학적 사고가 이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결정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해보는 피드백 루프와 같은 개념은 경제의 동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피드백 루프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다. 자산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소비자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주식 시장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투자자들은 더 많은 자산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이는 다시 주가를 더욱 상승시키는 긍정적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 반대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고, 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피드백 루프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경제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피드백 루프는 또한 경제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가 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면,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가 회복되고, 이는 다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잘못 설계되거나 시기적절 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도한 통화 공급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소비자 신뢰를 저하시켜 경제를 침체시킬 수 있다. 따라서 경제학적 사고는 이러한 피드백 루프를 분석하고, 정책의 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하는 데 필수적이다.

앞으로도 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사회의 복잡성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경제학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트럼프 2.0 시대에는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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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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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지금 역사적인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 2500년 전 공자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듯이,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물결 속에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질문은 같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기술 문명이 급변하는 시대마다 인간은 스스로를 재정의해왔다. 철기의 등장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을 때 공자는 그 변화 속에서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찾고자 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의사결정을 보조하며, 심지어 창작 영역에서도 활약하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공자는 인간다움을'인(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도리를 의미한다. AI 시대에 이 '인'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공감과 배려, 관계 맺음의 능력이야 말로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윤리적 판단의 책임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자는 "의로움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이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다.자율주행차의 트롤리 딜레마, AI 무기 개발, 개인정보 활용의 경계 등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문제들은 누군가의 용기 있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공자가 꾸짖은 '용기 없음'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솔직한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 소속된 집단과 다른 의견을 표하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히 지식인과 과학자들은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AI 개발자와 연구자들은 더욱 엄격한 윤리적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또한 공자가 강조한 '정명(正名)'—이름을 바로잡는 일—도 AI 시대에 중요하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 체제를 구축하면서 '유신(維新)'이라는 미명을 붙인 것처럼, 오늘날에도 AI 기술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혁신'이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기술의 본질과 영향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올바르게 이름 붙이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날 인간은 다른 인간 뿐만 아니라 기술, 기계, 정책과 같은 비인간적 요소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공자는 현대 과학기술을 알지 못했지만, 그가 강조한 '예(禮)'의 개념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예'는 상호 존중과 조화로운 관계 맺음의 원리다. 인간이 AI와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되, 인간이 AI에 종속되거나 AI가 인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적절한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AI 비서와 대화할 때도,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때도,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우리는 그 관계의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공자가 말한 '예'의 원리는 인간과 AI 사이의 건강한 관계 설정에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AI 시대에 '배움'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단순 암기나 지식 축적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를 분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며, 새로운 관점에서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특히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정확하고 적합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질문이 있어야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자가 강조한 '학이사(學而思)'와 '사이학(思而學)'의 태도와 연결된다. 배움과 사고는 분리될 수 없다. 지식을 얻는 동시에 그것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자는 또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메타인지 능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진정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 AI 시대에 이러한 메타인지는 더욱 중요하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정보가 항상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는 그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AI의 판단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AI와 인간의 균형점 찾기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중(中)'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중'이란 극단 사이의 중간점이 아니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의미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AI의 판단은 흔들리거나 오염되지 않을 것이므로, '중을 잡는' 일을 AI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적의 지점'은 성과나 이익만의 최대화되는 지점이 아니다. 설령 물질적인 손해를 볼지라도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AI를 통해 '중'을 모색하려면, 초기 단계부터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AI에 학습시켜야 한다. AI가 스스로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최적의 지점이라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초지능이 출현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인간을 위한 '중'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공자가 던진 질문—"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는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를 던져준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일수록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자가 AI 시대를 살았다면, 그는 기술의 발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기술이 '인(仁)'의 실현에 기여하는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우리도 AI 기술을 발전시키되,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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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우리 안의 트라우마 마주하기, 치유하기
김선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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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여러 현대전쟁을 겪으면서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현대 정신의학의 발전과 함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진단명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개인이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장기적인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PTSD는 전투, 폭력,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증상으로, 기억의 플래시백, 악몽, 불안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겪은 현대인은 트라우마가 반드시 장기적인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사회적으로도 널리 퍼진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중 다수가 PTSD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감소하거나, 처음에는 약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다가 나중에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에 대해서 해소하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에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학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김선현님의 <트라우마>였다. 트라우마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트라우마는 개인이나 집단이 경험한 심리적 외상으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증상과 감정적 고통이다. 이러한 외상 사건은 전쟁, 자연재해,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트라우마의 정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해왔으며,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그 개념이 구체화되었다. 초기에는 여성의 심리 장애인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이후 전투신경증과 가정폭력 연구가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은 트라우마가 개인만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트라우마의 치유는 피해자의 안전이 확보된 후, 기억하고 애도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생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래시백 현상은 트라우마의 임상적 특징 중 하나로, 특정 자극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발생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피해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있다. 많은 한국인은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이는 정서적 고립을 초래한다. 이러한 고립은 개인의 정신적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트라우마 치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청소년들은 성적, 진학, 친구 관계에서의 스트레스와 가정 내 문제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관계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접근 방식은 다양하다. 심리치료, 상담, 그리고 사회적 지지망의 구축이 그 예다. 특히, 상처를 입은 치유자라는 개념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한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유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치유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치유의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의 트라우마 치유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중요하다. 국가폭력과 같은 사건들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없다면, 사회는 지속적인 불신과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의와 회복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필요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치유 과정은 안전한 환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의 아픔을 인정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만의 치유를 넘어, 사회 전체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 치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불법 계엄으로 우리 사회는 또 한번의 커다란 국가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료하기 위한 과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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