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검색창에 질문 하나를 던지면 수십만 개의 답이 쏟아지는 시대다.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이 진부할 만큼, 우리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범람하는 숫자들 사이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이 커졌다. 키코 야네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가? 우리는 숫자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가? 우리는 데이터를 어떻게 보고 이해하고 분석해야하는 것일까? 책을 통해 알아본다 ^.^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는 정보의 집합을 넘어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기온의 변화부터 선거 결과, 감염병의 확산 패턴까지 모든 것이 숫자로 번역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누군가는 인간의 감정마저 계량화하려는 냉혹함이라 비판하지만, 야네라스는 오히려 그 차갑게 보이는 숫자 속에서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발견한다. 수학자 실베스터가 수학을 이성의 음악이라 불렀듯, 데이터 역시 세계의 복잡성을 담아내는 하나의 화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숫자는 객관적이라는 환상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 통계 자료를 앞세운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의도적인 선택과 배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야네라스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 즉 데이터 리터러시다. 단순히 숫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어떻게 생산되었고, 무엇을 말하려 하며,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몇 개의 사례만으로도 패턴을 발견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확신에 찬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이 속도가 문제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오류를 범하고, 편향에 빠지며, 착각을 현실로 착각한다. 야네라스는 우리의 직관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배신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작은 표본을 전체인 양 받아들이고, 우연을 필연으로 해석하며, 자신만은 예외라고 믿는다. 이른바 '나만큼은 다르다'는 착각이다. 타인의 실패는 능력 부족 때문이지만, 내 실패는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운이 좋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 기대하지만, 확률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몽테뉴가 500년 전에 통찰했듯,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가장 확신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런 편향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타인의 편견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은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팩트 체크'가 일상화된 시대에도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야네라스가 말하는 직관의 속임수는 단순히 인지적 오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 방식 자체에 내재된 한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확률적 세계에 던져진 결정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야네라스는 직관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의심하고, 보완하라고 조언한다. 통계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것 없이는 더 적게 볼 수밖에 없다. 데이터는 우리의 성급한 확신을 늦추고, 복잡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도구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의 편향을 성찰하는 태도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성은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합리적 사고로 사회를 개선해 나갔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이나 권위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성은 변질되었다. 목적과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효율과 성과만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야네라스가 보기에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인간마저 도구로 전락시켰다.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측정되고, 평가되고, 순위 매겨진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들은 무시되고, 계량화할 수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데이터의 시대가 가져온 역설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야네라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데이터와 인본주의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고 주장한다. 정량적 관점 없이는 인본주의가 공허한 관념에 머물고, 인본주의 없이는 데이터가 냉혹한 도구로 전락한다. 진정한 합리성은 숫자를 인간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통계 기법은 연관성만을 보여줄 뿐, 인과성을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야네라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데이터를 잘 다루는 기술적 능력만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겸손함이고, 성급한 결론을 유보하는 신중함이며, 숫자 너머의 인간을 보려는 따뜻함이다. 수학은 누군가에게만 주어진 재능이 아니라 학습으로 익히는 것이듯, 데이터 리터러시 역시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기꺼이 배우려는 의지와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다. 야네라스의 사유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일깨운다. 첫째,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 둘째, 그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완벽한 답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더 나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확신 대신 의심을, 단순함 대신 복잡성을, 속도 대신 신중함을 선택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이성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조금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야네라스가 숫자와 데이터라는 차가운 언어로 전하고자 하는 따뜻한 메시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