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경영하라 - 인문학에서 배우는 성공 경영의 길
산티아고 이녜스 지음, 박선령 옮김 / 프롬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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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경영 환경은 속도를 요구한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 즉각적인 의사결정, 빠른 시장 대응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산티아고 이녜스가 제시하는 '철학으로 경영하라'는 명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설적인 제안을 던진다. 빠르게 결정하기 전에 깊이 사유하라는 것이다. 철학과 경영의 결합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는 추상적 사유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 실행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녜스는 이 둘이 실제로는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모든 경영 결정의 이면에는 가치관과 원칙이 자리하며, 이는 곧 철학적 입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무의식적 철학이 아닌 의식적 성찰을 통해, 우리는 더 일관되고 의미 있는 경영을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조직 윤리에 대한 중요한 경고를 제공한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평범한 관료였다. 현대 조직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위험이다. 개인이 조직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고,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 뒤에 숨을 때,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경영자는 효율 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도덕적 주체로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비드 흄 의 '흠의 포크'는 경영에서 마주치는 지식의 두 차원을 구분하게 한다. 아이디어에 기반한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사실을 혼동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예를 들어, 특정 전략이 과거에 성공했다고 해서(경험적 사실) 항상 성공할 것이라 는(논리적 필연성)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인과관계에 대한 엄밀한 사유는 경영자가 데이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다.

니체의 사상이 20세기 경영 이론에 미친 영향은 양가적이다. '초인' 개념은 탁월함을 추구하는 리더십의 이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지에 대한 무비판적 숭배로 왜곡될 위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니체가 강조한 자기극복과 가치창조의 정신이다. 진정한 리더는 기존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과 조직을 재창조한다. 짐 콜린스의'5단계 리더십' 연구는 겸손과 의지의 결합을 강조한다. 가장 성공적인 리더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 아니라, 조용히 조직의 성공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니체적 초인 이미지와는 다른, 더 성숙한 리더십 개념이다. 리더는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다른 이들이 빛나도록 하는 '조연의 역할'을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힘은 겸손에서 나온다. 현대 경영학이 강조하는 '감성 지능'이나 '서번트 리더십' 역시 철학적 전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강조한 자기통제와 타인에 대한 공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는 모두 오늘날 요구되는 리더의 자질과 맞닿아 있다. 철학은 이러한 덕목 들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계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연구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을 과학적으로 밝혀냈지만, 이러한 통찰은 이미 고대 철학자들의 관심사였다. 플라톤이 경고한 동굴의 비유,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모두 우리의 지각과 판단이 얼마나 오류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차이는 현대 심리학이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는 점이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 개념은 예측 불가능성과 극단적 사건의 영향을 강조한다. 이는 경영자가 가진 통제의 환상을 깨뜨린다. 우리는 과거 데이터를 아무리 분석해도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포착할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겸손과 준비성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한 '운명애(amor fati)'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되,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혜를 담고 있다. 경영자의 통찰력은 데이터를 읽는 능력만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이 능력은 기술적 훈련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폭넓은 독서, 다양한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성찰적 사유가 필요하다. 철학은 이러한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현상 너머의 원리를 탐구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 뒤의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이 바로 철학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길버트 하트먼의 '통 속의 뇌' 사고실험은 메타버스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질 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기업들이 가상공간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직원들이 아바타로 회의하는 시대에, 경영자는 '현실'의 본질에 대해 다시 사유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발전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의식 없이 학습하고 판단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인간 지능의 본질은 무엇인가?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경영자의 역할은 무엇으로 남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철학 없이는 적절히 다룰 수 없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가치판단에 달려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명제는 변화의 본질을 포착한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 문화, 나아가 존재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경영자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변해야 하고 무엇이 변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는 전략적 사고를 넘어 철학적 비전을 요구한다.


경영 윤리는 규정 준수나 법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 즉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원칙은 경영 결정에 강 력한 시금석을 제공한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가? 공리주의적 접근,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경영에서 중요한 윤리적 틀이다. 하지만 이는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 할 위험이 있다. 롤스의 정의론이 제시하는 '무지의 베일' 개념은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만약 내가 조직의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른다면, 어떤 정책을 선택하겠는가? 이러한 사고실험은 경영자가 더 공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 덕 윤리의 관점에서, 좋은 경영자가 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것처럼, 덕은 일회적 행동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성품이다. 정직, 용기, 절제, 지혜 같은 덕목은 의식적인 실천을 통해 내면화되어야 한다. 조직 문화는 이러한 덕목을 장려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하는가? 경영자는 자신뿐 아니라 조직 전 체의 도덕적 품성을 가꾸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즉 인간 번영의 개념은 현대적 행복 개념과는 다르다. 그것은 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실현이다. 경영의 맥락에서 이는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을 때, 조직도 진정으로 번영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하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쾌락을 강조했다. 순간적 만족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 상태(아타락시아)를 목표로 삼았다. 이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현대 경영에 대한 경고이다. 분기별 실적에 급급하다 보면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진정한 성공은 지속 가능한 번영이며, 이는 조급함이 아닌 인내를 요구한다. 스토아주의는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평정을 강조한다. 우리는 시장 상황이나 경쟁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겸손과 자기성찰을 잃지 않은 리더의 모범을 보여준다. 경영자는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 앞에서 동요하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보여준 극단적 간소함은 현대 경영에 직접 적용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불필요하게 욕망하는가? 미니멀리즘과 본질에 집중하는 경영 철학은 복잡성이 증가하는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덜어내는 용기가 때로는 더하는 능력보다 중요하다.


"경영은 행동하는 철학"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경영 결정이 암묵적으로든명시적으로든 특정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검토하지 않은 가정 위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철학은 이러한 가정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한다. 성찰 없는 행동은 맹목이고, 행동 없는 성찰은 공허하다. 철학과 경영의 결합은 이 둘 사이의 비옥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경영자는 실행해야 하지만, 그 실행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도록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철학은 이러한 질문을 위한 도구상자를 제공한다. 윤리학, 인식 론, 존재론, 미학까지, 다양한 철학적 도구들은 경영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21세기 경영자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후 위기, 불평등 심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 팬데믹과 같은 전지구적 위험 등은 기술적이거나 전략적인 해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조직을 성찰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 이것이 철학적 경영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일을 하는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문화. 실패를 처벌이 아닌 학습의 기회로 보고, 다양한 관점을 경쟁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이러한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리더의 지속적인 모범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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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슈퍼사이클 - 지금, 한국을 사야 하는 결정적 이유
신동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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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 세대를 지배했던 투자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강남 불패', '부동산 신화', '전세 레버리지'로 대변되던 부의 축적 방정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30년간 한국 가계 자산의 85% 이상을 차지했던 부동산은 이제 일부 프리미엄 지역을 제외하고는 정체 국면에 진입했다. 반면 오랫동안 '대주주만 배불리는 시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자본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2025년 10월, 코스피가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한 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이 구조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신호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앞다투어 코스피 5,000에서 6,000까지의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은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오히려 뒤늦게 한국 시장의 본질적 가치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외국인 자본의 대규모 유입, 정부 주도의 제도 개혁, 기업 지배구조 개선,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들이 한 지점에서 교차하며 임계점을 넘어섰다. 문제는 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여전히 과거의 프레임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자산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신동국님은 이러한 한국 주식의 슈퍼 사이클에 대해 상세히 분석 설명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을 둘러싼 구조적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신뢰의 회복이다. 한국 시장은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다. 낮은 배당성향, 불투명한 지배구조, 소액주주 경시 풍토가 만들어낸 신뢰 결핍이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을 짓눌렀다. 그러나 최근 상법 개정 논의와 자사주 소각 확대, 배당 정책 강화 움직임은 단순한 정책 변화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주주 가치 제고를 경영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2024년 말까지 관망세를 유지하던 글로벌 자본이 2025년 들어 사상 최대 규모로 한국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JP모건과 피델리티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장'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제도 개혁의 진정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뢰가 자본을 부르고, 자본이 다시 신뢰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둘째는 가치의 재발견이다. PBR 1.2배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시장은 선진국 대비 50% 이상 저평가되어 있었다. 이는 기업의 실질 가치와 시장 가격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글로벌 밸류에이션 체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결코 낮지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배터리 시장에서, HD현대중공업은 조선 시장에서 각각 글로벌 톱티어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경쟁력이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평가는 곧 상승 여력이다. 시장이 정상화 국면에 진입하면서 가치와 가격 간의 갭이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강세장 시나리오에서 코스피 4,200포인트를 제시한 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밸류에이션 정상화를 가정한 계산의 결과다.

셋째는 정책의 방향성이다. 한국 시장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정부 정책이 산업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예산 확대는 풍력과 태양광 섹터를, 국방비 증액은 방산주를, 원전 정책 전환은 원자력 생태계 전체를 움직인다. 2025년 이후 정부가 주주권 강화와 기업 가치 제고를 정책 기조로 설정하면서, 시장은 정책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는 과거 경기 지표 중심의 투자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정책의 방향을 읽는 것이 곧 산업의 미래를 읽는 일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가 구체화될수록, 시장의 신뢰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번 랠리를 과거의 유동성 장세나 테마주 열풍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실적 기반 성장'이다. 주가 상승의 배경에는 기업들의 실질적인 이익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와 AI 섹터는 가장 명확한 수혜 산업이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수주잔고가 수년치에 달한다는 것은 단기 호황이 아니라 장기 수요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다. 이 인프라를 장악한 기업들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이차전지 산업 역시 전기차 시대를 넘어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과 그리드 안정화라는 더 큰 시장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초기 전기차 보급 단계에서의 가격 경쟁은 치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력과 안정성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 한국 배터리 3사가 글로벌 시장점유율 30%를 넘어서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제조업체가 아니라 에너지 패권의 핵심 플레이어임을 의미한다.

조선과 해양플랜트는 침체기를 지나 다시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LNG 운반선과 해양 풍력, 부유식 생산저장하역설비(FPSO)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며 수주잔고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중국 조선소들이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잠식하려 했지만,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기술력이 압도적이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제조국'으로서의 한국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방산 산업은 지정학적 긴장이 만들어낸 구조적 수혜 산업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 중동과 동남아의 무기 수요 증가는 한국 방산 기업들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K-9 자주포와 천궁 방공시스템, FA-50 경전투기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으며, 한국은 방산 수출국 순위에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원자력은 에너지 전환 시대의 전략 자산으로 재부상했다. 탄소중립 목표와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받으며, 원전 생태계 전체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한국은 원전 건설과 운영 노하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동과 동유럽으로의 수출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K-뷰티와 엔터테인먼트는 문화 자본이 경제 가치로 전환되는 대표적 사례다. 브랜드와 경험을 수출하는 산업은 물리적 한계가 없다. 한류의 글로벌 확산은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 산업의 성장은 한국 경제의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구조적 변화 앞에서 투자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질문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배분은 수익률 정체와 유동성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주식시장은 변동성은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물 경제의 성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자산이다. 첫 번째 원칙은 자산 배분의 재설계다. 전통적으로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 비중은 부채 규모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실질 순자산은 '집 한 채'에 집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의 정체와 금리 상승이 맞물리며, 이러한 구조는 자산 증식이 아니라 자산 동결로 이어지고 있다. 향후 30년간은 부동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금융자산, 특히 주식의 비중을 늘려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부동산을 전면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주용 자산과 투자 자산을 명확히 구분하고, 투자 자산의 중심을 주식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ETF를 활용한 분산 투자다. 개별 종목 선택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높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특히 한국 시장처럼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섹터 ETF나 지수 ETF를 활용한 분산 투자가 효과적이다. 코스피200 ETF는 시장 전체의 상승을 추종하고, 반도체·배터리·방산 ETF는 특정 산업의 슈퍼사이클에 올라탈 수 있게 한다. 세 번째는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흐름을 읽는 능력이다.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매매 패턴은 단기 변동성보다 중장기 추세를 더 잘 반영한다. 외국인이 지속적으로 순매수하는 섹터는 글로벌 자본이 가치를 인정한 영역이다. 이들의 움직임을 추종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장기 투자와 리밸런싱이다. 슈퍼사이클은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단기 매매로 타이밍을 맞추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대신 분할 매수로 포지션을 구축하고, 정기적으로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 시장이 과열되면 일부를 차익실현하고, 조정 국면에서는 추가 매수하는 역발상적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자세다. 테마주의 유혹, 미래 산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 정치 테마주의 함정은 반복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겼다. 에코프로와 수젠텍, NFT와 신풍제약, 새롬기술과 삼천리자전거는 모두 열광 뒤에 찾아온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슈퍼사이클은 실적과 구조적 변화가 뒷받침될 때 지속된다.


한국 주식 슈퍼사이클은 주가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국 사회의 부의 축적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이다. 부동산이 부의 독점 수단이었던 시대는 저물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모든 변화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글로벌 경기 침체, 지정학적 긴장 고조, 금리 재상승 등 외부 변수들은 여전히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 시장이 과거와 달리 구조적 개선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가 바뀌고, 기업이 변하고, 투자자의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자산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역사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 이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사람과 과거에 머무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부동산의 시대가 만들어낸 불평등을 주식시장이 모두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주식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정보 접근성이 높으며, 소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민주적 자산이다. 코스피 5,000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한국 자본시장이 신뢰받는 시장으로 거듭나고, 기업들이 주주 가치를 존중하며, 투자자들이 장기적 관점을 갖추는 것이다. 슈퍼사이클의 진정한 가치는 주가 상승 그 자체가 아니라, 건강한 자본시장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자본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제 선택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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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도쿄 : 요코하마·가마쿠라·하코네·가와구치코·사와라·가와고에 2026-2027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 외 지음 / 타블라라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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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트렌드와 숨은 명소를 모두 담아낼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현지인의 생활과 문화, 계절별 추천 코스까지 세심하게 안내해 줄 것이라 생각하니 마치 도쿄를 미리 걸어보는 듯한 설렘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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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역사 - 과거의 세계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조민호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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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잘못 배워왔다. 학창시절 외웠던 연도와 사건들,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려도 무방한 지식의 더미. 역사는 그렇게 박제된 과거로, 추억의 앨범으로 취급되어왔다. 하지만 로먼 크르즈나릭이 제시하는 응용역사의 관점은 전혀 다른 지평을 연다. 역사는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이자, 위기를 돌파하는 기술이다.

21세기 인류는 전례 없는 복합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인공지능은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진화하고, 민주주의는 피로에 지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불평등은 심화되고, 소비주의는 지구의 한계를 무시한 채 질주한다. 이 모든 위기의 공통된 뿌리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 중심주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만 매몰되어, 과거로부터 배울 줄도 모르고, 미래 세대를 위해 책임질 줄도 모른다. 이러한 시대에 크르즈나릭은 과감한 제안을 한다. 미래학이 아니라 응용역사학이 필요하다고. 중세 알안달루스의 관용, 에도시대 일본의 순환경제, 18세기 커피하우스의 공론장, 엘리너 오스트롬이 발견한 공유지의 지혜. 이것들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 해법의 설계도다. 역사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의 전환은 근본적이다. 역사는 예언자가 아니라 상담자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주지는 못하지만,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괴테의 말처럼 삼천 년 세월을 쓰지 못하는 자는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과거의 인간들이 어떻게 위기를 넘어섰는지, 어떤 시스템이 작동했고 어떤 것이 실패했는지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발명하는 세대가 될 수 있다.


역사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점진주의의 한계다. 기후위기나 AI 윤리, 민주주의 회복 같은 시급한 문제들은 느린 개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급진성'의 역할이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역사는 급진파가 파괴자가 아니라 진보의 촉매임을 보여준다. 수십 년간의 사회운동 연구가 밝혀낸 사실은 놀랍다.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한 성공적인 투쟁들은 급진적 조직이 주도할 때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다. 급진파는 극단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온건파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른바 오버턴의 창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토론의 조건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멸종반란과 같은 불복종 운동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행동은 과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온건한 환경운동가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급진파가 없었다면 온건파조차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변화의 메커니즘이다.

크르즈나릭이 제시하는 '위기-운동-사상의 삼각고리'는 이러한 역학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위기가 사회운동을 낳고, 운동이 새로운 사상을 만들며, 사상이 다시 법과 제도를 변혁시킨다. 이 순환 속에서 시민의 집단행동은 정부를 결정적 의사결정 지점으로 밀어붙인다. 고대 그리스어로 '크리시스'란 바로 그런 전환의 순간을 의미했다. 하지만 급진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역사가 또한 가르쳐주는 것은 연대의 힘이다. 14세기 이븐 할둔이 말한 '아사비야', 즉 집단 연대는 사회의 내구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알안달루스 왕국에서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이 공존할 수 있었던 것, 케랄라와 핀란드에서 평등 투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오스트롬이 발견한 공유지 관리 시스템이 작동한 것. 이 모든 사례의 중심에는 협력과 연결이 있었다. 접촉 이론은 이를 뒷받침한다. 서로 다른 집단이 평등한 조건에서 접촉하고 협력할 때, 편견과 분열은 감소한다. 500건 이상의 연구 중 94퍼센트가 이를 확인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다. 문제는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 경쟁을 강요하고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장 실천적인 통찰은 '설계'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에도시대 일본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산업화 이전 일본은 제한된 자원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했다. 어떻게? 소비자 선택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했기 때문이다. 에도 경제는 재생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파괴적인 선택지는 애초에 메뉴에 없었고, 순환적이고 지속가능한 선택지가 기본값이었다. 이것이 바로 '설계에서 배제'와 '설계에 포함'의 전략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와 같은 근본적 재설계다. 커피하우스의 사례도 설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18세기 유럽에서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공론장이었다. 인쇄술이 정보를 민주화했다면, 커피하우스는 대화를 민주화했다. 신분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모여 신문을 읽고,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이 공간의 설계 자체가 민주적 문화를 만들어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쇄술이 종교전쟁을 부추기는 증오의 도구로 악용되었듯, 소셜미디어도 분열과 극단화를 조장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작동하는 구조와 공간의 설계다. 우리는 디지털 공론장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경청과 숙의를 장려하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분노와 즉각성을 증폭시키는 구조에 머물 것인가? 오스트롬의 공유지 연구 역시 설계의 문제다. 그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통념을 반박했다.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공동체가 공유 자원을 성공적으로 관리했다. 어떻게? 민주적 자치 체제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시장도 국가도 아닌 제3의 길, 협력적 거버넌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AI와 유전공학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술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기술이 누구의 소유이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고, 누가 혜택을 받는지는 설계의 문제다. 조너스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를 거부하며 "특허는 없습니다"라고 선언한 것, 협동조합과 분산 소유권 모델이 한 세기 이상 작동해온 것. 이것들은 우리에게 다른 설계가 가능하다는 역사적 증거다.


궁극적 질문은 윤리적이다. 우리는 어떤 조상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도덕적 수사가 아니라,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다. 소크 백신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백신을 인류와 미래 세대를 위한 선물로 여겼다. 보눔 코무네, 즉 공동선을 지향했다. 개인의 선택을 확장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돕기 위한 기술이었다. 이것이 좋은 조상의 태도다. 케랄라와 핀란드의 평등 투쟁도 세대를 넘어선 비전을 보여준다. 그들은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극심한 빈곤에 맞서 싸웠다. 끊임없이 조직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먼저 쏴라"고 외쳤다. 그들의 투쟁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세대가 더 평등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바이오필리아, 즉 생명애는 이러한 윤리의 확장이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재통합하는 것.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생명에 대한 본능적 친밀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문명의 내구성을 높이는 궁극의 윤리다. 우리가 다른 종과의 연대를 느낄 때, 지구의 생물리학적 한계를 존중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문명이 가능하다. 네이트 하겐스가 말하는 '거대한 단순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문명은 지속될 수 없다. 파티가 끝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부러질 것인가, 구부러질 것인가? 아사비야와 바이오필리아는 우리가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질 수 있도록 돕는 두 기둥이다. 집단 연대와 생명애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좋은 조상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결정을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점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경제·교육·기술의 선택을 할 때마다 물어야 한다. "후손이 이 결정을 감사할 것인가?" 이 질문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현재 중심주의에 갇혀 있다는 신호다.


저자의 응용역사의 아름다움은 추상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실천될 수 있고, 실천되어야 한다.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일상에서부터 문명 회복의 패턴을 연습할 수 있다. 사유 루틴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루 한 번, 오늘 마주한 문제를 역사 속 사례와 연결해보는 것이다. 환경 문제라면 에도의 순환경제를, 갈등 상황이라면 알안달루스의 관용을, 정보 과부하라면 커피하우스의 공론장을 떠올려본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시간의 관점을 훈련하는 습관이다. 연대 루틴은 협력의 감각을 몸에 새기는 실험이다. 작은 팀이나 가족 단위로 공유지 프로젝트를 시도해본다. 공동정원, 공용서가, 에너지 절약 챌린지. 이런 작은 실험들이 오스트롬이 말한 협력적 거버넌스의 씨앗이 된다.

소비 루틴은 설계를 체화하는 과정이다. 한 달간 에도노믹스 챌린지를 해본다. 순환소비, 제로웨이스트, 로컬푸드. 지속가능성은 거대한 운동이 아니라 생활의 패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론 루틴은 디지털 소음 대신 숙의의 공론장을 복원하는 시도다. SNS 대신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소규모 토론을 조직한다. 시간을 제한하고, 근거 중심으로 말하며, 경청하고 요약하고 제안하는 3단계 대화를 연습한다. 이것이 18세기 커피하우스가 만들어낸 민주적 문화의 현대적 번역이다. 윤리 루틴은 기술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내가 사용하는 플랫폼과 서비스의 소유 구조와 윤리 기준을 점검한다. 가능한 한 협동조합형, 공공형 플랫폼을 선택한다. AI와 인간의 거리두기를 실천한다. 기술이 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성을 회복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진리를 거듭 확인시켜준다. 인간은 부러질 수도, 구부러질 수도 있다. 부러짐은 붕괴이고, 구부러짐은 혁신이다. 로마는 부러졌고, 비잔틴은 구부러졌다. 마야 문명은 부러졌고, 중국은 여러 번 구부러졌다. 21세기 인류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후위기, AI, 불평등, 민주주의의 피로. 이 모든 위기는 우리를 부러뜨릴 수도, 구부러지게 할 수도 있다.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응용역사의 지혜를 얼마나 동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크르즈나릭이 말하는 근본적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인간들이 반복적으로 붕괴를 넘어섰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다. 해법은 시스템이 아니라 연대에 있었고, 기술이 아니라 협력에 있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응용역사는 과거를 능동적으로 동원해 미래를 발명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는 세대가 아니다. 과거의 지혜를 현재의 행동으로, 현재의 행동을 미래의 유산으로 바꾸는 세대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역사의 실험실로 들어가 문명 회복의 도구를 꺼내들고, 일상에서 연대와 생명애를 실천하며, 모든 선택을 후손의 관점에서 점검하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조상이 될 때, 비로소 근본적 희망은 현실이 된다. 부러지지 말고, 구부러지자. 그것이 응용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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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라 걷는 거야
박동기 지음 / 작가와비평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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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중에'라는 말에 익숙해졌을까.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고,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건강이 허락할 때, 돈이 충분히 모일 때,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그렇게 조건을 나열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후회만 쌓여간다. 한 여행자의 기록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진정한 황금기는 외부의 인정을 받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저 없이 실행에 옮길 때 찾아온다는 것을. 퇴임 후 세계 곳곳을 걸으며 자연과 마주한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알프스의 준봉에서부터 히말라야의 고원까지,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그가 얻은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스스로를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도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내면의 자유였다. 여행은 때로 우리에게 불편함을 요구한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 몸을 맡기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며, 체력의 한계를 시험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화면으로 보는 풍경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직접 올라선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나이에 따른 역할과 행동방식을 암묵적으로 규정한다. 은퇴 후에는 손주를 돌보거나 여유롭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해외 원정 트레킹을 떠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몸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 위험하지 않겠느냐, 굳이 그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진정한 노년은 숫자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멈추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고, 자신을 제한하는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둘 때 비로소 늙음이 시작된다. 반대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배우며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해발 사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를 걸으며 고소증과 싸우고, 험준한 암벽 사이를 통과하며, 낯선 문화권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은 도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성취감과 자기 확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가 아닌, 순전히 자신을 위한 도전이기에 더욱 값지다. 체력적 한계에 대한 걱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체력은 키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준비를 갖춘 사람은 없다. 작은 산책부터 시작해 점차 거리를 늘려가고, 가까운 산을 오르며 호흡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고,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몸을 적응시킨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용기와 꾸준히 이어가는 의지다.

도시에서의 삶은 인공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에어컨이 온도를 조절하고, 조명이 밤을 밝히며, 포장된 도로가 우리의 발걸음을 안내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계획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리듬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예상보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생각보다 긴 거리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연속되고, 우리는 그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운다. 자연은 우리에게 놀라운 보상을 준다. 땀을 흘리며 오른 산정상에서 마주하는 일출의 장엄함,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설산의 위용, 고산 호수가 반사하는 에메랄드빛 물빛. 이런 순간들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동시에 이 광대한 우주의 일부로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자연 속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운동이나 관광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다. 발바닥으로 느끼는 흙의 감촉,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 코끝에 스치는 나무와 풀의 향기, 귀에 들리는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 오감이 깨어나고 존재 자체가 선명해지는 경험. 이것이 바로 트레킹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많은 사람이 '언젠가'를 말한다. 은퇴하면, 아이들이 다 크면,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은 오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가 부족하고, 항상 어떤 이유로 미룰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미루던 것들은 영원히 실현되지 못한 채 후회로 남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히말라야를 꿈꾼다면 먼저 근처 산을 올라보라. 장기 여행을 꿈꾼다면 주말 여행부터 시작하라. 큰 배낭을 메고 떠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가벼운 당일치기 산책으로 시작하라. 첫걸음을 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돈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여행은 반드시 럭셔리할 필요가 없다. 소박한 산장에서의 하룻밤, 현지 시장에서 사 먹는 간단한 식사,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 이런 것들이 때로는 고급 호텔보다 더 진정성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행하느냐다.

여행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들이 없다고 해서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경험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저 출발하면 된다. 길은 걸으며 만들어진다. 모든 답을 알고 떠나는 여행은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 계획에 없던 만남들, 생각지도 못한 감동들. 이런 것들이 모여 우리만의 독특한 여행이 된다. 완벽하게 준비된 여행보다 불완전하지만 진심 어린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책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그곳에 서서 느끼는 것은 천지 차이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공기의 맛, 영상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공간의 스케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의 감동. 이런 것들은 오직 직접 가야만 알 수 있다. 마음따라 걷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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