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경영하라 - 인문학에서 배우는 성공 경영의 길
산티아고 이녜스 지음, 박선령 옮김 / 프롬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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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경영 환경은 속도를 요구한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 즉각적인 의사결정, 빠른 시장 대응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산티아고 이녜스가 제시하는 '철학으로 경영하라'는 명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설적인 제안을 던진다. 빠르게 결정하기 전에 깊이 사유하라는 것이다. 철학과 경영의 결합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는 추상적 사유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 실행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녜스는 이 둘이 실제로는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모든 경영 결정의 이면에는 가치관과 원칙이 자리하며, 이는 곧 철학적 입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무의식적 철학이 아닌 의식적 성찰을 통해, 우리는 더 일관되고 의미 있는 경영을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조직 윤리에 대한 중요한 경고를 제공한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평범한 관료였다. 현대 조직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위험이다. 개인이 조직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고,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 뒤에 숨을 때,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경영자는 효율 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도덕적 주체로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비드 흄 의 '흠의 포크'는 경영에서 마주치는 지식의 두 차원을 구분하게 한다. 아이디어에 기반한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사실을 혼동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예를 들어, 특정 전략이 과거에 성공했다고 해서(경험적 사실) 항상 성공할 것이라 는(논리적 필연성)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인과관계에 대한 엄밀한 사유는 경영자가 데이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다.

니체의 사상이 20세기 경영 이론에 미친 영향은 양가적이다. '초인' 개념은 탁월함을 추구하는 리더십의 이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지에 대한 무비판적 숭배로 왜곡될 위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니체가 강조한 자기극복과 가치창조의 정신이다. 진정한 리더는 기존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과 조직을 재창조한다. 짐 콜린스의'5단계 리더십' 연구는 겸손과 의지의 결합을 강조한다. 가장 성공적인 리더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 아니라, 조용히 조직의 성공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니체적 초인 이미지와는 다른, 더 성숙한 리더십 개념이다. 리더는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다른 이들이 빛나도록 하는 '조연의 역할'을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힘은 겸손에서 나온다. 현대 경영학이 강조하는 '감성 지능'이나 '서번트 리더십' 역시 철학적 전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강조한 자기통제와 타인에 대한 공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는 모두 오늘날 요구되는 리더의 자질과 맞닿아 있다. 철학은 이러한 덕목 들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계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연구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을 과학적으로 밝혀냈지만, 이러한 통찰은 이미 고대 철학자들의 관심사였다. 플라톤이 경고한 동굴의 비유,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모두 우리의 지각과 판단이 얼마나 오류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차이는 현대 심리학이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는 점이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 개념은 예측 불가능성과 극단적 사건의 영향을 강조한다. 이는 경영자가 가진 통제의 환상을 깨뜨린다. 우리는 과거 데이터를 아무리 분석해도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포착할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겸손과 준비성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한 '운명애(amor fati)'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되,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혜를 담고 있다. 경영자의 통찰력은 데이터를 읽는 능력만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이 능력은 기술적 훈련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폭넓은 독서, 다양한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성찰적 사유가 필요하다. 철학은 이러한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현상 너머의 원리를 탐구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 뒤의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이 바로 철학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길버트 하트먼의 '통 속의 뇌' 사고실험은 메타버스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질 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기업들이 가상공간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직원들이 아바타로 회의하는 시대에, 경영자는 '현실'의 본질에 대해 다시 사유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발전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의식 없이 학습하고 판단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인간 지능의 본질은 무엇인가?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경영자의 역할은 무엇으로 남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철학 없이는 적절히 다룰 수 없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가치판단에 달려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명제는 변화의 본질을 포착한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 문화, 나아가 존재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경영자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변해야 하고 무엇이 변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는 전략적 사고를 넘어 철학적 비전을 요구한다.


경영 윤리는 규정 준수나 법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 즉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원칙은 경영 결정에 강 력한 시금석을 제공한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가? 공리주의적 접근,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경영에서 중요한 윤리적 틀이다. 하지만 이는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 할 위험이 있다. 롤스의 정의론이 제시하는 '무지의 베일' 개념은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만약 내가 조직의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른다면, 어떤 정책을 선택하겠는가? 이러한 사고실험은 경영자가 더 공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 덕 윤리의 관점에서, 좋은 경영자가 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것처럼, 덕은 일회적 행동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성품이다. 정직, 용기, 절제, 지혜 같은 덕목은 의식적인 실천을 통해 내면화되어야 한다. 조직 문화는 이러한 덕목을 장려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하는가? 경영자는 자신뿐 아니라 조직 전 체의 도덕적 품성을 가꾸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즉 인간 번영의 개념은 현대적 행복 개념과는 다르다. 그것은 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실현이다. 경영의 맥락에서 이는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을 때, 조직도 진정으로 번영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하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쾌락을 강조했다. 순간적 만족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 상태(아타락시아)를 목표로 삼았다. 이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현대 경영에 대한 경고이다. 분기별 실적에 급급하다 보면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진정한 성공은 지속 가능한 번영이며, 이는 조급함이 아닌 인내를 요구한다. 스토아주의는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평정을 강조한다. 우리는 시장 상황이나 경쟁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겸손과 자기성찰을 잃지 않은 리더의 모범을 보여준다. 경영자는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 앞에서 동요하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보여준 극단적 간소함은 현대 경영에 직접 적용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불필요하게 욕망하는가? 미니멀리즘과 본질에 집중하는 경영 철학은 복잡성이 증가하는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덜어내는 용기가 때로는 더하는 능력보다 중요하다.


"경영은 행동하는 철학"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경영 결정이 암묵적으로든명시적으로든 특정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검토하지 않은 가정 위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철학은 이러한 가정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한다. 성찰 없는 행동은 맹목이고, 행동 없는 성찰은 공허하다. 철학과 경영의 결합은 이 둘 사이의 비옥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경영자는 실행해야 하지만, 그 실행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도록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철학은 이러한 질문을 위한 도구상자를 제공한다. 윤리학, 인식 론, 존재론, 미학까지, 다양한 철학적 도구들은 경영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21세기 경영자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후 위기, 불평등 심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 팬데믹과 같은 전지구적 위험 등은 기술적이거나 전략적인 해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조직을 성찰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 이것이 철학적 경영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일을 하는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문화. 실패를 처벌이 아닌 학습의 기회로 보고, 다양한 관점을 경쟁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이러한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리더의 지속적인 모범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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