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윤리는 규정 준수나 법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 즉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원칙은 경영 결정에 강 력한 시금석을 제공한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가? 공리주의적 접근,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경영에서 중요한 윤리적 틀이다. 하지만 이는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 할 위험이 있다. 롤스의 정의론이 제시하는 '무지의 베일' 개념은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만약 내가 조직의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른다면, 어떤 정책을 선택하겠는가? 이러한 사고실험은 경영자가 더 공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 덕 윤리의 관점에서, 좋은 경영자가 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것처럼, 덕은 일회적 행동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성품이다. 정직, 용기, 절제, 지혜 같은 덕목은 의식적인 실천을 통해 내면화되어야 한다. 조직 문화는 이러한 덕목을 장려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하는가? 경영자는 자신뿐 아니라 조직 전 체의 도덕적 품성을 가꾸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즉 인간 번영의 개념은 현대적 행복 개념과는 다르다. 그것은 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실현이다. 경영의 맥락에서 이는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을 때, 조직도 진정으로 번영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하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쾌락을 강조했다. 순간적 만족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 상태(아타락시아)를 목표로 삼았다. 이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현대 경영에 대한 경고이다. 분기별 실적에 급급하다 보면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진정한 성공은 지속 가능한 번영이며, 이는 조급함이 아닌 인내를 요구한다. 스토아주의는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평정을 강조한다. 우리는 시장 상황이나 경쟁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겸손과 자기성찰을 잃지 않은 리더의 모범을 보여준다. 경영자는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 앞에서 동요하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보여준 극단적 간소함은 현대 경영에 직접 적용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불필요하게 욕망하는가? 미니멀리즘과 본질에 집중하는 경영 철학은 복잡성이 증가하는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덜어내는 용기가 때로는 더하는 능력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