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토샵 판타지 아트
JASON KIM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이야기로 기억하고, 이미지를 통해 감동한다. 우리는 매 순간 시각적 인지에 의존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는 기술의 진보 뿐만 아니라 인간 감각의 확장이다. 인스타그램의 정지된 아름다움, TikTok의 리듬과 속도, 그리고 유튜브의 감정이 응축된 짧은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문명은 이제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고 사고를 전개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텍스트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시각 중심으로의 전환이며, 기억을 이미지로 각인시키는 새로운 학습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경험의 방식에 혁명을 가져온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미지 생성형 AI다. 언어가 그림이 되고, 상상이 현실처럼 구체화되는 세상. 우리는 이제 "그릴 수 있는 사람"보다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력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으며, 이는 창작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캔버스와 붓 없이도,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현실처럼 구현할 수 있는 시대의 문 앞에 서 있다.
제이스 앨런이라는 게임 기획자가 ‘미드저니’를 통해 창작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그런 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누구도 그것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라곤 믿지 못했다. 너무나 정교하고, 서사적이며, 감정적으로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예술이 가진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신화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이 사례는 기술의 성취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창작 개념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든다. 예술은 과연 기술의 결과인가, 감성의 표현인가?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에서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 감동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어쩌면 창작의 본질은 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예술은 이제 의미가 없어지는가? 우리는 단지 AI에게 명령을 내리는 프로그래머로만 살아가게 되는가? 창작은 이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 AI는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하나의 도구일 뿐, 여전히 인간의 감성과 사유는 창작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AI는 재료가 될 수는 있어도,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포토샵과 같은 전통적인 디자인 툴을 배워야 하고, 그 깊은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읽어본 <포토샵 판타지 아트>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디지털 이미지 도구를 넘어서 세계를 창조하는 법을 알려주는 마법서에 가깝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합성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기술적 욕심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그것은 점차 나의 상상과 예술혼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체험으로 변해갔다. 이 책은 사용자에게 도구의 기능을 전달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도구를 통해 어떻게 나만의 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기술적 지식은 배경이고, 그 위에 펼쳐지는 예술의 상상력은 이 책의 진정한 힘이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친절함에 있다.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해 손을 내민다. ‘최적의 환경 설정’부터 시작해, ‘툴바’ 하나하나의 기능을 정리해 주는 그 자세한 설명은 마치 오래된 친구가 옆에서 천천히 이야기해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기술은 친절할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기술을 따뜻한 언어로 바꾸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작품이다. 단계별로 나뉜 설명은 포토샵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인터페이스의 구조, 레이어의 개념, 브러시의 활용, 마스크와 클리핑의 차이까지 꼼꼼하게 짚어주는 설명은 사용자의 이해를 확실히 도와준다. 책의 구성은 마치 하나의 정원처럼, 걷는 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를 세심하게 배치해두었다.
또한 판타지 아트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접근도 흥미롭다. 우리는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상상을 현실처럼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의 지도 위에 현실의 도구들을 정교하게 배치한다. 건물의 일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합성 기법, 초현실적인 배경과 인물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레이어 구성, 각각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를 구성해 나가게 된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이 책이 국내 작가에 의해 쓰였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디지털 아트 튜토리얼이 해외의 기준에 맞춰 구성되어 있어, 문화적 거리감이나 언어적 장벽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정서와 감각에 맞춰져 있다. 마치 ‘한국적인 판타지’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서사, 감정을 이끄는 색채 배치, 그리고 이야기의 여운을 남기는 연출까지. 이는 단순한 튜토리얼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성찰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이야기로, 이 디지털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 <포토샵 판타지 아트>는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 뒤에는, 내가 무언가를 창조해냈다는 자신감이 싹튼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다시 다음 장을 넘기게 하는 에너지로 바뀐다. 기본편을 익힌 후, 활용편에서 다루는 고급 합성 기법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마치 내가 성장했음을, 그리고 언젠가는 나만의 세계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실습 예제들이 매우 구체적이며 실용적이다. 이미지 효과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왜 이 구성을 선택했는지, 어떤 색감을 써야 감정을 유도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재미있는 구성의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