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오늘의 체크 포인트’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을 챙기는 사람처럼, 오늘 내가 어디를 지나 어떤 풍경을 만날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준다. 공부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무게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차분하고 기대 어린 하루가 시작된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이 책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프랑스어 학습을 시작하며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정확한 문법보다 이런 격려의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망설임과 두려움이 동반되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 모른다.
‘오늘의 학습 내용’으로 들어서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섬세하게 손질된 보석처럼 다가온다. 문법을 설명하는 방식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정할 수 있을까? 보통의 문법 설명은 메마른 공식처럼 느껴지지만, 『주미에르의 처음 프랑스어』 안에서는 그것이 삶의 언어로, 살아 있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개념들이 이 책 안에서는 놀랍도록 쉽게 이해된다. 동사의 활용이나 성별에 따른 형용사의 변화 같은 부분도, 딱딱한 설명이 아닌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스며든다. 예문들 또한 기계적인 조합이 아니라, 마치 프랑스 어느 골목길에서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단어들이 정적인 기호가 아니라 움직이고 살아 있는 생명처럼 다가오니, 그 여운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그리고 회화. 이 책의 ‘처음 회화’ 코너는 작지만 강한 울림을 준다. 프랑스어 발음을 녹음한 원어민의 목소리는 한 편의 짧은 영화처럼 귀를 간질이고, 억양 하나하나에 숨은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한다. 발음을 따라하다 보면 단어의 뜻을 아는 것 이상의 감정이 전달되는 순간이 있다. 어투, 리듬, 멜로디. 단순히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음악성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말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말이라는 것이,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과 삶을 나누는 통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외국어를 진짜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은 어쩌면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
‘Quiz’와 ‘종합 연습문제’ 코너는 이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쉼표와도 같다. 마치 오늘 하루의 여행을 마친 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길을 돌아보는 기분이랄까. 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실수를 했더라도 괜찮다는 듯이, 책은 조용히 다음 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채찍 대신 나지막한 칭찬으로 나를 다음 단계로 이끈다. 한 번 실수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속 걷는 것, 언어라는 긴 여정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Talk talk!’ 코너. 이것은 이 책의 진정한 보석 같은 순간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회화 표현들을 입으로 뱉는 연습을 하며, 마치 내가 프랑스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에 생활의 온도가 배어 있는 듯해서, 말이 단순한 기호의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향한 징검다리처럼 느껴졌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조차, 이 책에서는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Bonjour. 그 한마디 속에는 아침 햇살과 잔잔한 인사, 그리고 미소가 담겨 있다. 언어는 결국 마음의 풍경을 말하는 도구이기에, 그 표현이 감정으로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책은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 안에는 말의 소리, 감정,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스며 있다. 책은 다정하게 말한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감성적인 언어를 감성적인 책으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