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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4년 8월
평점 :
이번에 199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뒤 약 2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전국 도서관에서 특정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져 뜯겨 나간 채 발견된 소설로 입소문이 나며 마침내 현지에서 재출간되었다는무라야마유카의재출간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른바 역주행을 한 소설이다. 무라야마유카는 일본 문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놓이지만, 그 논란은 단순한 자극이나 충격에 그치지 않고, 문학의 깊이를 탐구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그녀의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이러한 그녀의 예술적 여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무라야마유카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그녀의 작품이 일본 문단에 미친 파장은 상당했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기존의 문학적 틀을 깨고, 금기시된 주제들을 다루며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녀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며,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그녀의 이러한 여정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여성과 청소년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복잡한 감정과 내면의 갈등을 다룬다..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청량한 바다와 햇살은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과거의 방황과 아픔, 성장통을 담아낸다. 무라야마유카는 독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문체는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괴롭지만, 결국 독자들은 이러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무라야마유카의 가장 큰 특징은 그녀가 기존의 문학적 고정관념을 깨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심리를 탐구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다른 작가들이 전통적인 서사 구조나 문학적 기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 반면, 그녀는 그러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 한다. 그녀의 작품은 종종 논란을 일으키는데, 이는 그녀가 금기와 불온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읽혀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과 고통을 마주하게 하며, 이를 통해 성장과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소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답고 평온한 마을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후지사와 에리와미쓰히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에리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동성 친구에 대한 사랑을 숨기며 고통받고, 미쓰히데는 아버지의 죽음과 존엄사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두 인물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후지사와 에리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착한 아이, 모범생으로 비춰지지만, 그들의 내면은 전혀 다르다. 에리는 성별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녀는 동성인 단짝 친구에 대한 사랑을 자각하게 되면서, 그 관계가 위험해질까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에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녀는 파격적인 결심을 하게 된다. 에리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지만, 그로 인해 괴로움이 커진다. 그녀의 고민은 단순히 성별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의 갈등으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에리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고, 그녀의 결단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긴장감을 높여 준다…
미쓰히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핑부가 있는 고등학교의 대표 서퍼이다. 그는 수업 시간 외에는 항상 바다에 뛰어들며, 겉으로는 아무 걱정 없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아버지의 암 투병이라는 무거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며 존엄사를 원하고, 미쓰히데는 이러한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미쓰히데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이러한 고민이 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에리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에리와 미쓰히데는 서로 다른 배경과 갈등을 지닌 인물들이지만, 요코하마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에리는 고민 끝에 감행한 행동을 미쓰히데에게 목격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에리는 자신의 행동이 학교에 소문이 날까 걱정하며 미쓰히데에게 위험한 거래를 제안하게 되는데 ….
작품은 청춘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를 다루고 있다. 에리와미쓰히데의 갈등과 성장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겪는 아픔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각자의 고통을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가 잔잔해진 후의 고요함처럼, 진정한 자기 수용의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작가는 두 인물이 겪는 고통이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이야기 한다. 에리와미쓰히데의 만남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각자 자신을 더욱 깊이 있게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청춘의 복잡한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내용은 독자에게 때로는 불편한 감정을 안기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픔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에리와 미쓰히데를 통해 독자가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하고, 이를 통해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무라야마유카만의 독창적인 역량이 발휘된 작품으로,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청춘의 위태롭고 날카로운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이 소설은 독자에게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길 것이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